[독자권익위원 칼럼]리더와 보스
이지안 잇다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입력 : 2025. 02. 12(수) 11:34

지난해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뉴스 속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울 한복판에 탱크가 지나가고, 계엄군을 태운 헬기가 국회의사당 잔디밭에 내려앉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들이 국회 출입문을 막아서고 국회의원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모습에 기함했고,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을 보좌관들이 맨몸으로 막아서던 모습을 보며 심장을 졸였다.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계엄군과 소화기를 뿌리며 그들을 막아서는 사람들 그리고 놀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국회 앞으로 몰려와 계엄 반대를 성토하는 시민들을 보며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조마조마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다칠까 봐, 무장한 계엄군 중 누군가가 발포할까 봐, 그렇게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현장을 마주하게 될까 봐.
이 와중에 비상계엄 해제 의결안을 위해 국회 담을 넘어서라도 들어가려는 국회의원이 있는가 하면, 소집 장소에 혼선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었다. 피 말리는 몇 시간이 지나고 결국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이 계엄 반대 표결을 거쳐 통과됐을 때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지못해 비상계엄 해지를 알리고 기자회견장을 떠나던 대통령의 뒷모습은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화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상계엄은 해지됐지만,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에게 분노한 국민은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며 비아냥거렸던 몇 년 전 어느 여당 의원의 말을 기억한 듯 이번에는 촛불 대신 야광봉을 든 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살을 에는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아스팔트 거리에 주저앉아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었다. 폭설이 내릴 때는 은박이불을 뒤집어쓴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함박눈을 뒤집어쓴 이들의 모습이 눈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고 우리 국민의 평화적 시위 모습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때, 강추위 속에서도 퇴진을 부르짖을 때 정작 당사자인 대통령은 어디 있었나? 거액의 세금으로 만든 관저에 숨은 채 국민을 외면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차치하더라도 여당 국회의원들은 어땠나? 관저에 숨어 나오지 않은 윤석열의 편을 들며, 오죽하면 계엄을 일으켰겠냐고 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라며 눈시울을 적시는 것도 모자라 백골단을 국회로 불러들여 기자회견까지 열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는 윤석열이 수감된 구치소 앞에서 큰절을 올리기까지. 분노한 민심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세상에 머물고 있는 그들을 보며 국민은 뒷목을 잡을 지경이다. 나라를 이끌도록 뽑아놨더니 자신들이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착각하고 국민의 머리 위에 앉으려고 든다.
어느 조직이나 피라미드형 구조로 이루어진다. 요즘에는 수평적 조직을 표방하며 직급의 호칭을 없애는 기업들도 많지만, 이런 곳조차 이들을 이끌어갈 누군가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당연히 피라미드 최상층에 있는 이는 한 사람만 존재한다. 이때 이 한 사람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조직의 색깔이 달라진다. 리더형이라면 ‘우리’가, 보스형이라면 ‘나’가 주체일 것이다. 리더는 구성원이 함께하기를 바라지만 보스는 무조건 자신에게 복종하고 따르길 원한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리더였다면, 시민들이 추위에 떨며 외치는 소리를 외면할 수 있었을까? 극우 유튜버들이 하는 말을 믿고 그들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었을까? 무장한 경호처 요원들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공수처 직원들을 향해 총이 안 되면 칼이라도 휘두르라고 지시할 수 있었을까? 법정에 서서는 모든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돌릴 수 있었을까?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반려견의 안위를 먼저 걱정할 수 있었을까? 그가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국민을 이끌어갈 리더였다면,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취임 초기부터 내란을 일으키고 법정에 선 지금까지도 그는 불통 그 자체며 폭력집단의 보스처럼 보인다.
국민이 추구하는 이 시대의 대통령상은 리더형이다. 옛 선조들도 권력자의 부당함 앞에서는 한마음으로 봉기했고 역사를 바꿔왔다. 야광봉을 들고 자의로 거리에 나선 이들이 그 뜻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리더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보스에게 복종하길 원하는가?
이 와중에 비상계엄 해제 의결안을 위해 국회 담을 넘어서라도 들어가려는 국회의원이 있는가 하면, 소집 장소에 혼선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었다. 피 말리는 몇 시간이 지나고 결국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이 계엄 반대 표결을 거쳐 통과됐을 때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지못해 비상계엄 해지를 알리고 기자회견장을 떠나던 대통령의 뒷모습은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화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상계엄은 해지됐지만,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에게 분노한 국민은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며 비아냥거렸던 몇 년 전 어느 여당 의원의 말을 기억한 듯 이번에는 촛불 대신 야광봉을 든 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살을 에는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아스팔트 거리에 주저앉아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었다. 폭설이 내릴 때는 은박이불을 뒤집어쓴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함박눈을 뒤집어쓴 이들의 모습이 눈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고 우리 국민의 평화적 시위 모습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때, 강추위 속에서도 퇴진을 부르짖을 때 정작 당사자인 대통령은 어디 있었나? 거액의 세금으로 만든 관저에 숨은 채 국민을 외면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차치하더라도 여당 국회의원들은 어땠나? 관저에 숨어 나오지 않은 윤석열의 편을 들며, 오죽하면 계엄을 일으켰겠냐고 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라며 눈시울을 적시는 것도 모자라 백골단을 국회로 불러들여 기자회견까지 열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는 윤석열이 수감된 구치소 앞에서 큰절을 올리기까지. 분노한 민심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세상에 머물고 있는 그들을 보며 국민은 뒷목을 잡을 지경이다. 나라를 이끌도록 뽑아놨더니 자신들이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착각하고 국민의 머리 위에 앉으려고 든다.
어느 조직이나 피라미드형 구조로 이루어진다. 요즘에는 수평적 조직을 표방하며 직급의 호칭을 없애는 기업들도 많지만, 이런 곳조차 이들을 이끌어갈 누군가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당연히 피라미드 최상층에 있는 이는 한 사람만 존재한다. 이때 이 한 사람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조직의 색깔이 달라진다. 리더형이라면 ‘우리’가, 보스형이라면 ‘나’가 주체일 것이다. 리더는 구성원이 함께하기를 바라지만 보스는 무조건 자신에게 복종하고 따르길 원한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리더였다면, 시민들이 추위에 떨며 외치는 소리를 외면할 수 있었을까? 극우 유튜버들이 하는 말을 믿고 그들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었을까? 무장한 경호처 요원들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공수처 직원들을 향해 총이 안 되면 칼이라도 휘두르라고 지시할 수 있었을까? 법정에 서서는 모든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돌릴 수 있었을까?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반려견의 안위를 먼저 걱정할 수 있었을까? 그가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국민을 이끌어갈 리더였다면,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취임 초기부터 내란을 일으키고 법정에 선 지금까지도 그는 불통 그 자체며 폭력집단의 보스처럼 보인다.
국민이 추구하는 이 시대의 대통령상은 리더형이다. 옛 선조들도 권력자의 부당함 앞에서는 한마음으로 봉기했고 역사를 바꿔왔다. 야광봉을 들고 자의로 거리에 나선 이들이 그 뜻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리더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보스에게 복종하길 원하는가?
광남일보@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