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감성 투영해 작성…시대를 기록하는 거죠"
비상계엄일부터 탄핵시편 정리해온 박종화 작가
탄핵시집 60∼70편씩 묶어 3집까지 페북에 발표
개인 일정 흐트러지자 시위현장 누비며 창작 실천
탄핵시집 60∼70편씩 묶어 3집까지 페북에 발표
개인 일정 흐트러지자 시위현장 누비며 창작 실천
입력 : 2025. 03. 04(화) 18:46

박종화 작가는 “요즘은 휴대폰이 있으니까 웬만한 것은 시대를 기록할 수 있다. 감성이 풍부한 기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예작업 중인 박 작가.
“1980년 5월부터 싸우다 보니 기록을 보관하는 게 습관화되지 않았죠. 기록을 소홀히 해온 셈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이 있으니까 웬만한 것은 시대를 기록할 수 있어요. 감성이 풍부한 기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습니다.”
‘투쟁의 한길로’와 ‘바쳐야 한다’, ‘파랑새’ 등을 작곡했던 장본인으로 가수이자 시인, 서예가 등 다채로운 예술분야에 이름을 걸치고 있어 종합예술인 정도로 봐야겠지만 민중운동 특색이 희석되는 면이 있어 그냥 작가라고 불러달라 한다. 지역 민중운동판에서 그를 모르면 짜가다. 그는 광주를 연고로 1980년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엄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인물이다. 주인공은 올해 민중음악 작곡을 해온지 37년째에 접어든 민중음악가 박종화(62)씨가 그다. 앞선 멘트는 그가 탄핵정국에서 느낀 감회다. 2018년에는 민중음악 창작 30주년 기념음반을 발매했으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그해 5월 서예전을 열었다. 그를 민중음악으로만 한정해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그는 여러 시집과 다수 서예전을 연 바 있다. 그를 민중음악에 가둬둘 수 없는 이유다. 그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발동된 이후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은 탄핵시편들을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발표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에게 예술적 멈춤을 강요한 것은 비상계엄 시국으로, 모든 활동 일정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도 개인적으로 최근 예술활동이 더이상 일정 차질을 불러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다만 비상계엄 탄핵시국에 대한 소회를 시적 감성으로 담아왔다. 비상계엄일부터 거의 하루도 쉼없이 기록한다는 취지로 시적 감성을 정리해 왔다. 모든 시편은 페북에 소개했던 작품들이다. 탄핵시집 1집 ‘아무 것도 없다’는 지난 1월 3일에, 탄핵시집 2집 ‘그 나이에 그 나이에’는 지난 2월 8일에, 탄핵시집 3집 ‘시간’은 2월 15일에 각각 올렸다. 1집에는 비상계엄에 대한 충격을, 2집에는 윤석열 체포를, 3집에는 그 이후의 감정들을 정리했다. 시집에는 각각 60∼70여편을 한데 묶었다. 그의 이번 탄핵시편들은 현장감을 최대로 살려 한편의 시로 정리한 작품들이어서 솔직한 감성이 꿈틀댄다.
“한 인간이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며 시민들의 분노 등 감정선이 살아있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시들이 탄핵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이번 작품들은 완결성보다는 시대를 기록하는데 초점을 맞춰 한편의 시로 형상화했다고 보면 되죠.”
작가는 지난 2월에 소개한 2집에서 시간이 지나면 상당수 글들이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SNS를 통로로 시의성 있을 때 발표하는 것으로, 깊은 검토없이 올리니까 혹여 오자가 나오더라도 이해해주면서 읽어주기를 당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또 처음에 시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눈만 뜨면 페북에 공유했던 글들이 자연스럽게 시가 된 것으로, 쓴 순서대로 재배치를 해 한결 읽기가 수월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탄핵 과정에 집중하는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다른 일손이 잡히지 않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사실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현재적 기록이 아무 일을 안하는 것보다 나쁠 것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을 해서 시작했음을 인정했다.
그의 ‘유튜버 생방송’이라는 시편은 요즘 전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 유튜버들을 질타하고 있다. 그는 이 시편을 통해 ‘용산 건물이 아무리 제아무리 넓어도/사방천지 암흑천지일 것이다/볼 것이 없을 것이다//한 줄기 빛/수구 반동의 유튜브/그러나 꺼질 수밖에 없는 빛/희망이 없는 빛/타다 재로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질 빛//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은/꺼질 줄 알면서/대안도 없이/그 빛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그것도 아주 높은 곳에//그래/두 눈 부릅뜨고 꺼질 때까지 쳐다보거라//디질놈 소원 하나는 들어줄 법하다’라고 분노를 표출한다.
이어 ‘누구 없는가’라는 시편은 올해 초 대통령 관저 앞에서 탄핵된 윤석열의 체포를 촉구하는 시위 현장에서 유래됐으며, 밤샘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폭설과 추위 속에서 은박 담요를 덮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마치 키세스 초콜릿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착안해 이들을 부르기 시작한 ‘키세스단’을 상기시킨다.
그는 ‘눈 내리는 겨울/아스팔트의 노상 새벽을/온몸에 은박지를 두른 채 잘 수 있게 하는 힘은/어깨를 걸고 함께하는 동지의 뜨거운 핏줄에서 흐르건만//깜빡 눈 다시 뜬 아침/폭설에도 피할 생각 추호도 없이/아스팔트에 앉아 설풍찬 노숙으로/이 전쟁을 치르게 하는 동력은/전장의 선봉에서 나라와 동지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는/진짜 애국자들의 의로운 용맹이건만//도대체 이게 뭔가/저 몸뚱이 얼어버릴까 애간장 태우는 것이/바라보는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전부란 말인가’라고 묻고 있다.
이외에 시 ‘탕-실질심사’는 지난 2월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을 중심으로 남태령 고개 근처에서 경찰과 28시간 대치했던 집회로 널리 알려진 ‘남태령 트랙터 시위’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그는 ‘너릿재 넘고 남태령 넘고/마포대교 건너고 지하주차장으로 다시 내려가고//이러다간/백두산령도 넘겠다//애타는 마음들 속에 소리 들린다/탕’이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박종화씨는 민중음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시서화집 포함해 시집 4권과 초대전을 망라해 단체전 13회, 개인독집 5장, 개인발표회 10여회에 달할만큼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탄핵시집이 개인적으로 언제까지 지속될까에 대한 궁금증과 향후 예술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예술계의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풍향계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투쟁의 한길로’와 ‘바쳐야 한다’, ‘파랑새’ 등을 작곡했던 장본인으로 가수이자 시인, 서예가 등 다채로운 예술분야에 이름을 걸치고 있어 종합예술인 정도로 봐야겠지만 민중운동 특색이 희석되는 면이 있어 그냥 작가라고 불러달라 한다. 지역 민중운동판에서 그를 모르면 짜가다. 그는 광주를 연고로 1980년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엄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인물이다. 주인공은 올해 민중음악 작곡을 해온지 37년째에 접어든 민중음악가 박종화(62)씨가 그다. 앞선 멘트는 그가 탄핵정국에서 느낀 감회다. 2018년에는 민중음악 창작 30주년 기념음반을 발매했으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그해 5월 서예전을 열었다. 그를 민중음악으로만 한정해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그는 여러 시집과 다수 서예전을 연 바 있다. 그를 민중음악에 가둬둘 수 없는 이유다. 그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발동된 이후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은 탄핵시편들을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발표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에게 예술적 멈춤을 강요한 것은 비상계엄 시국으로, 모든 활동 일정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도 개인적으로 최근 예술활동이 더이상 일정 차질을 불러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다만 비상계엄 탄핵시국에 대한 소회를 시적 감성으로 담아왔다. 비상계엄일부터 거의 하루도 쉼없이 기록한다는 취지로 시적 감성을 정리해 왔다. 모든 시편은 페북에 소개했던 작품들이다. 탄핵시집 1집 ‘아무 것도 없다’는 지난 1월 3일에, 탄핵시집 2집 ‘그 나이에 그 나이에’는 지난 2월 8일에, 탄핵시집 3집 ‘시간’은 2월 15일에 각각 올렸다. 1집에는 비상계엄에 대한 충격을, 2집에는 윤석열 체포를, 3집에는 그 이후의 감정들을 정리했다. 시집에는 각각 60∼70여편을 한데 묶었다. 그의 이번 탄핵시편들은 현장감을 최대로 살려 한편의 시로 정리한 작품들이어서 솔직한 감성이 꿈틀댄다.

김남주 시인 30주년 기념 시서사 창작콘서트 무대
작가는 지난 2월에 소개한 2집에서 시간이 지나면 상당수 글들이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SNS를 통로로 시의성 있을 때 발표하는 것으로, 깊은 검토없이 올리니까 혹여 오자가 나오더라도 이해해주면서 읽어주기를 당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또 처음에 시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눈만 뜨면 페북에 공유했던 글들이 자연스럽게 시가 된 것으로, 쓴 순서대로 재배치를 해 한결 읽기가 수월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탄핵 과정에 집중하는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다른 일손이 잡히지 않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사실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현재적 기록이 아무 일을 안하는 것보다 나쁠 것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을 해서 시작했음을 인정했다.
그의 ‘유튜버 생방송’이라는 시편은 요즘 전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 유튜버들을 질타하고 있다. 그는 이 시편을 통해 ‘용산 건물이 아무리 제아무리 넓어도/사방천지 암흑천지일 것이다/볼 것이 없을 것이다//한 줄기 빛/수구 반동의 유튜브/그러나 꺼질 수밖에 없는 빛/희망이 없는 빛/타다 재로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질 빛//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은/꺼질 줄 알면서/대안도 없이/그 빛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그것도 아주 높은 곳에//그래/두 눈 부릅뜨고 꺼질 때까지 쳐다보거라//디질놈 소원 하나는 들어줄 법하다’라고 분노를 표출한다.
이어 ‘누구 없는가’라는 시편은 올해 초 대통령 관저 앞에서 탄핵된 윤석열의 체포를 촉구하는 시위 현장에서 유래됐으며, 밤샘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폭설과 추위 속에서 은박 담요를 덮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마치 키세스 초콜릿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착안해 이들을 부르기 시작한 ‘키세스단’을 상기시킨다.

지난 2월23일 망월묘역에서 열린 5·18여전사 이윤정 선생 2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박종화 작가
이외에 시 ‘탕-실질심사’는 지난 2월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을 중심으로 남태령 고개 근처에서 경찰과 28시간 대치했던 집회로 널리 알려진 ‘남태령 트랙터 시위’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그는 ‘너릿재 넘고 남태령 넘고/마포대교 건너고 지하주차장으로 다시 내려가고//이러다간/백두산령도 넘겠다//애타는 마음들 속에 소리 들린다/탕’이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박종화씨는 민중음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시서화집 포함해 시집 4권과 초대전을 망라해 단체전 13회, 개인독집 5장, 개인발표회 10여회에 달할만큼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탄핵시집이 개인적으로 언제까지 지속될까에 대한 궁금증과 향후 예술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예술계의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풍향계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