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봄바람, 민생에도 봄바람
이지애 광주 동구의회 의원
입력 : 2025. 02. 27(목) 18:05
이지애 광주 동구의회 의원
[기고]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세상이 혼란스럽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선량한 국민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으로 올라간다. 광주 동구의 풍경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주말 밤거리에 나가보면 불을 밝힌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고 온통 어둡고 장사도 안되고 죽겠다는 상인의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우리나라 경제가 호황이라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바닥이라고 느낀 때가 없었다. 계속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은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한다. 시장에 나가보면 5㎏ 짜리 귤 한 상자에 3만원이 넘어간다. 눈 내리는 겨울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구니에 담긴 귤을 까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젠 쉽지 않은 일이 됐다.

국가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얼마 전 정월 대보름을 맞아 경로당을 돌아보고 인사를 드리면서 받은 느낌도 예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 민족의 수없이 많은 세시풍속 중에서 명절 못지않게 중요한 날이 정월 대보름이다. 언제나 정월 보름날이 되면 각종 나물과 함께 찰밥을 지어먹고 부럼을 깨고 크게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우리는 기원한다. 경로당 어르신은 특히 더 그렇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기에 경로당에 나오는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울 리 없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은 한 달에 29만원 정도의 소득이 생긴다. 이 돈을 아끼고 쪼개서 생활하면서 무슨 날이 되면 자신의 것을 선뜻 내어놓고 나누며 서로를 배려한다. 어려운 형편에도 대보름을 맞아 음식 준비를 하는 이유는 세시풍속을 지키는 의미도 있지만 주변에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어르신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하니 경로당마다 상차림도 비슷비슷하다. 어떤 동네는 이 나물이 있고 어떤 동네는 이 나물 대신 저 나물이 있는 정도다. 예년 같았으면 오랜만에 하는 실력 발휘에 신나게 도마질을 하며 불고기도 만들고 고깃국도 끓였을 테지만 올해는 보름밥을 짓고 구운 김을 챙기는 것은 같지만 준비하는 음식에 도통 고기반찬이 보이지를 않는다. 작년에는 소고기뭇국이라도 끓인 곳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대부분 보름밥에 구운 김, 나물 몇 가지 그리고 콩나물국이 전부다. 소박한 식사지만 주변에 어렵게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함께 모시고 와 대접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은 찰밥을 조금씩 챙겨 드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내게도 어느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네신다. ‘또 밥 먹으러 와라! 다음엔 더 맛난 거 해줄랑게’ 그 한마디가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아프게 소용돌이친다. 그렇게 또 정월 대보름이라는 어떤 하루가 지나간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웃을 돌보려는 노력은, 그 어떤 정치적 해석이나 경제적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연대와 나눔의 의미이자 그 어떤 풍족함과 비교할 수 없는 진정성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성실하게 세금 내고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살피며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평범한 서민들이다. 서민들의 먹고사는 민생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들다. 말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요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먹사니즘’이니 ‘잘사니즘’이니 하는 말들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표현하는 2025년 대한민국 서민의 현실을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최근 3년 동안 우리의 민생은 끝없는 추락을 계속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이제 정치가 서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국회에서 민생회복 지원을 위한 추경 논의가 있다고 하니 참 반가운 일이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서민경제, 복지 정책, 그리고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올해는 경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들려온다. 정월 대보름을 지내는 경로당 어르신들의 소박해진 상차림에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줄일 것도 기다릴 시간도 없다. 경로당 어르신은 콩 한 쪽이라도 나누고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콩은 나눠줘도 자신들의 권력이나 이권은 절대로 나눠줄 수 없다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민생 회복을 위한 추경 논의가 각자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과 결합돼 여야의 정쟁거리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신속한 추경 집행으로 국민의 삶에도, 어르신의 상차림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기를 나는 소망한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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