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소설(小雪)을 맞은 지난 22일 오후 광주 북구 한 골목.
좁은 골목 끝자락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들이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골목길에 따뜻한 햇살이 내렸지만, 겨울날씨에 옷깃을 여며도 찬바람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한때 제조업 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던 베테랑 노동자였던 김모씨(63)가 폐지를 수집하게 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폐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몸이 나빠져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며 “저축한 돈도 병원비로 다 써버렸다. 다른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나이와 건강 때문에 어느 공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일도 안하고 집에만 있으니 건강이 나빠졌고, 우울증까지 생겼다. 매일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는 모습에 부모님과 갈등도 깊어졌다”며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용직 일이라도 하려고 건설현장에 나섰지만 몸이 버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할머니 한 분이 폐지를 줍는 것을 봤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이거 뿐이다라는 생각했다. 이제는 유일한 생계수단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점점 추워지는 날씨를 걱정했다.
김씨는 “겨울이 되면 길도 미끄럽고, 손발도 언다.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며 “울퉁불퉁한 길아 많이 눈이 쌓이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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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광주 북구 신안동 한 도로에서 폐지 수집하는 어르신이 손수레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
신안동 인근에서 폐지를 줍는 이모씨(78·여)도 같은 처지다.
기초연금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그는 기초연금과 월세 지원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폐지 수입은 식비와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그친다.
지난 겨울에 녹은 눈에 미끄러져 크게 다치기도 했지만, 수십년째 밀고 있는 손수레를 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시 너무 아팠지만 일을 안하면 수입이 없으니까 그냥 약 먹고 버텼다”면서 “지금도 미끄러운 길을 지날 때 마다 무섭지만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다”고 하소연했다.
폐지를 수집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현재 폐지가격은 1㎏당 120원 정도로,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도 3만원 남짓 밖에 벌지 못한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탓에 길에 놓인 폐지의 양도 예전만 못하다. 겨울에는 너무 추운 탓에 점심을 먹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다.
여기에 최근 폐지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어르신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장영철씨(61)는 “여름에 올랐던 폐지 가격이 다시 떨어지고 있다”면서 “폐지 3t 정도를 모아야 6만원 정도 나오는데, 그마저도 2~3일은 걸린다. 팔아봐야 딱 밥값 정도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폐지 수집 어르신 실태조사 결과 전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은 4만2000명으로 평균 연령은 76세에 달했다. 이들이 1주일에 6일, 하루평균 5.4시간 동안 주운 폐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15만9,000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