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다인숲에서 사설시조집 첫번째권으로 ‘대명사들’을 펴냈던 이송희 시인이 시집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를 작가기획시선 35번째 권으로 펴냈다.
　
전남대에 출강하며 틈틈이 창작을 병행해온 이 시인은 시조집 ‘대명사들’에서 전통 사설시조의 흐름을 견지하면서 현대시조가 가지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담아낸데 반해 이번 시집에는 부조리한 시대 속 한 시민으로서의 소소한 단상들을 시인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차분한 어조로 시적 사유를 풀어헤친다.
　
오늘의 사설시조가 가져야 할 현실 참여적 미학을 보여준 시인이 사설을 통해 어두운 시대에 별빛 같은 질문을 던져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면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해학과 풍자, 역설의 방식으로 그려낸 것이 불과 6개월 전이다. 시인은 짧은 시간 속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와 휴머니티의 실종 속 관계들이 인위적이고 물질적으로 파편화됐다. 그래서 이 시집은 제목처럼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지 않는 현시대 풍조와 신문명으로 촉발된 관계들에 대한 고해같다.

　그의 삶은 단절이 횡행하는 현시대 속 연결고리를 찾는 서정이 돋보인다. 층간 소음이나 분리수거, 흡연, 애완견 등으로 인한 갈등 외에는 교류가 부재한 채 이웃들이 서로 관심을 끊은 풍경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웃과 어찌 저찌 연을 맺어가는 현시대 소통 방식과 헌신이 빠져나갔거나 설령 관계를 맺고 있다손치더라도 근원적 불안감을 달래주지 못한다는 설정 아래 모든 관계들에 대한 가상적 관계를 탐색해낸다.
　
‘문 앞의 택배 상자엔 강아지 사료뿐/벨을 힘껏 눌러도 반응이 없더군요/일면식 한 번도 없는 달력이 넘어가요/어디선가 흘러나온 아나운서 일기예보/내일의 날씨는 구름 가끔, 흐리다네요/여전히 모르는 얼굴이 이웃 추가돼 있네요’(‘서로 이웃’ 일부)라거나 ‘슬픔을 예약했어요/다음 주 토요일로/울고 싶은 날이죠/취소는 안 된대요/실연의 주인공을 따라/한강변으로 갈게요/추가된 옵션으로 웃음을 구매하면/자동으로 당신도 업데이트될 거래요/또 다른 감정들을 모아/장바구니에 담아둬요’(‘AI 쇼핑’ 일부)라고 노래한다.

또 물질적 관계의 허구 너머로 그가 유심히 들여다 본 것은 간격이다. 균등한 것 같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을 간격 속에서 살아가는 세태가 드러난다. 시인은 ‘우리는 약속처럼 간격을 유지했다/같은 곳을 향하여 꿈꾸는/은빛 창문/적당히 바람이 불고/그리움도 덜컹거려’(‘철길 위의 시간’ 일부)라고 읊는다.

　현대 사회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철저하게 목적성을 내재한다. 그러니 거기에는 휴머니즘이 스며있는 인간적 관계 맺기가 아니라 물질적 쓸모 여부에 따른 인위적이고 편리성에 따른 패턴일 뿐 그것 자체가 관계에 대한 구속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는 없다.

　이번 시집은 모두 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창작한 시편 총 64편이 실렸다.

　이정현 문학평론가는 "발랄한 시들을 읽으면서 희미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생의 필연적인 어긋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기억은 당신을 붙들지 못하고 이 세계의 질주를 멈추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자의 슬픔, 그것이 생의 비애다. 그것만이 남루한 생을 위로할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만 같다"고 밝혔다.

　이송희 시인은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 ‘이태리 면사무소’,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경계의 시학’, ‘거울과 응시’, ‘유목의 서사’, 연구서 ‘현대시와 인지시학’, 시론집 ‘눈물로 읽는 사서함’ 등 다수를 펴냈다. 가람시조문학상신인상과 오늘의시조시인상, 제20회 고산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