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산맥’과 ‘웹진시산맥’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서울을 연고로 활동 중인 장흥 출생 문정영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술의 둠스데이’(달쏘 刊)는 작가가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인 시편들이 한데 모였다. 둠스데이는 사전적으로 최후의 심판일이나 판결일, 운명이 정해지는 날, 단죄의 날을 의미한다. 오늘날 건강한 지구가 아닌, 온갖 오염과 훼손으로 시달리는 지구의 문제들을 바라본 듯하다.

이상기온을 망라한 기후위기나 환경파괴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 지구촌에 놓인 현안들이 점점 광범위한 문제들로 남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삶에게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당장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런 동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시인의 시적 사유가 다음의 두 시편을 보면 가감없이 드러난다.

‘매일 술을 조금씩 먹고 자랐다/서른 마흔 나이 먹으면서, 좁은 이마에 띠를 두르고 달리기하면서/술병 뒤에 숨어 독작하였다/어떤 것이 사라질까 두렵지 않다, 술잔에 이야기하였다/폭음을 싫어한다는 말에 꽃잎이 혼자 웃었다/지구의 종말은 비둘기가 먼저 알 거야/…중·후략…’(‘술의 둠스데이’ 중에서)

‘뜨거운 도시를 다녀온 바람의 말을 들었어요/바람은 귀 가까이 소문을 내려놓았지요/당신의 음성을 들은 것이 어느 대륙이었는지, 몽상이었는지/가벼워서 날개밖에 없는 햇살을 당신은 카사블랑카처럼 입었나요/울음 주사를 맞은 내가 읽지 못하는 글자들 앞에 서 있네요/당신은 모나코에서 모르핀처럼 편지를 보내고/나는 다시 햇볕처럼 익네요/…후략…’(‘모나코 모로코 모르핀’ 중에서)

‘술의 둠스데이’는 오히려 절망적 지구의 미래를 직감할 수 있고, ‘모나코 모로코 모르핀’은 언어 유희를 노린 제목같지만 모르핀은 본래 양귀비에서 추출한 것으로 엔도르핀 유사체이며, 이런 엔도르핀 유사체를 통틀어 아편류(Opioid)라 칭한다. 바로 마약을 말한다. 물론 시적 서사로 읽히지만 울음주사로 인해 정상적 감성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절해야만 하는, 해독불가의 세상을 유추해내게 만든다. 햇볕처럼 익는다는 것이 강렬한 삶의 의지로 읽히지만 중독적 삶의 양태에 대한 시인의 시각은 투영돼 있는 듯하다.

이 시집은 4부로 구성, 계간지를 만드는 일 등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창작해온 40여편이 실렸다.

시인은 저서를 통해 “60여명의 시인, 평론가께서 짧은 감상글을 낮은음자리처럼 보내오셨다. 문장의 그늘까지 아름답게 파헤쳐졌다. 감사하다. 기후환경, 4차 혁명의 소재가 사랑, 이별의 감성을 만나 말랑말랑해졌고 슬픔도 때로는 빈 둥지 같은 내 눈동자를 닮아간다. 이번 생에서의 일복이 조각칼로 하나씩 나뉘는 순간에 쓴 작품들”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