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 <3> 여수 거문도
은빛 바다에서 낚고·걷고·먹고·쉬다
남해안 최초 근대식 등대·영해기점 섬·다도해 절경까지
자연·역사·미식·체험 어우러진 여름 빛나는 섬 여행지
입력 : 2025. 09. 22(월)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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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전경
거문도백도
유림해변
이금포해수욕장
영국군수병 묘지
거문도 등대
거문도뱃노래
<@7>여수의 최남단, 남해 바다의 한가운데 자리한 거문도는 ‘섬캉스’(섬+바캉스)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맑고 푸른 바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 울창한 동백숲이 어우러진 자연, 그리고 남해안 최초 근대식 등대와 근대사의 현장이 깃든 깊은 역사가 공존한다.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K-관광섬으로 선정되며, 전통과 현대,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섬으로 변모 중이다.

거문도는 올여름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특별한 섬 여행지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있다.



△청정한 다도해의 품에 안긴 섬

거문도는 고도, 동도, 서도 세 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대·소삼부도, 문도, 닭섬, 상·하백도 등 총 112개의 유·무인도로 이루어진 다도해의 보석 같은 섬이다.

섬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섬 사람들의 학문 실력이 높아 ‘거문(巨文)’이라 불렸다는 이야기, 또 하나는 울창한 숲이 한낮에도 어둡게 만들어 ‘검은 섬’에서 음차한 이름이라는 이야기다.

거문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백도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벽과 독특한 해식 지형으로 유명하다. 섬 전체가 하얀빛을 띠어 ‘백도(白島)’라 불린다는 설과 다도해에 섬이 백 개인데 하나가 모자라 ‘일백 백(百)’에서 한 획(一)을 뺀 ‘백도(白島)’라 불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현재는 국가 명승 제7호로 지정돼 있으며, 자연 보호를 위해 입도가 제한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멀리서 백도를 감상하며, 절경을 사진에 담곤 한다.

청정한 해역과 풍부한 어장은 거문도의 큰 자랑이다. 은갈치, 삼치, 고등어, 돌미역, 다시마, 해조류 등 각종 수산물이 섬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특히 ‘은갈치의 고장’으로 불리며, 맑고 찬 바닷물에서 잡히는 은갈치는 살결이 단단하고 맛이 깊어 전국 미식가들이 찾는다. 섬 식당과 민박집에서는 싱싱한 은갈치 회부터 고소한 구이, 짭조름한 조림까지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매년 여름 ‘거문도·백도 은빛 바다체험’ 행사가 열려 관광객들에게 낚시 체험, 특산물 시식, 해양 프로그램 등의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올해도 8월 1일부터 2일까지 행사가 예정돼 있다.

거문도의 또 다른 보물은 ‘해풍쑥’아다. 2012년 8월 정부 지리적 표시 제85호로 등록된 이 쑥은 청정 해풍과 비옥한 토양, 온화한 기후 덕분에 향이 진하고 영양이 뛰어나다. 거문도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아 내륙보다 한 달 이상 빠른 1월부터 쑥을 생산할 수 있다. 해풍쑥은 비타민A, 비타민C, 미네랄이 풍부하고 해열, 진통, 해독 작용에 좋아 여성 건강식으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차, 떡, 음료, 약재 등으로 활용 영역을 넓히며 섬 농가의 소중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거문도는 단순히 ‘예쁜 섬’을 넘어서, 섬사람들의 삶과 자연, 그들이 만들어온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 해풍에 쑥을 말리는 농민들, 마을 정자에서 뱃노래를 부르며 쉬는 노인들, 작은 학교 운동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아이들까지 섬의 일상은 그대로 거문도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따뜻하고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된다.



△역사가 켜켜이 쌓인 섬

거문도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이자,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생생한 흔적을 간직한 섬이다.

1885년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무단 점거했던 ‘거문도 사건’은 조선 후기 국제 정세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금도 섬 곳곳에는 영국군 묘지, 해저케이블 육양지, 국내 최초 테니스장 자리 등이 남아 당시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다.

1905년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남해안 최초의 근대식 등대로, 현재까지도 빛을 밝히고 있다. 높이 6.4m의 등탑은 백색 석조와 콘크리트로 쌓아 올려져 120여년 동안 남해를 오가는 수많은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거문도는 대한민국 영해기점 섬 23곳 중 하나로, 국가 해양주권 수호의 상징성이 깃든 섬이기도 하다.

섬의 역사와 문화는 주민들의 삶에도 깊게 배어 있다. 전남도 무형문화재 1호인 ‘거문도 뱃노래’는 어부들이 힘든 그물질을 하며 부르던 노동요로, 지금도 전수회를 통해 보존·전승되고 있다.

특히 거문도에는 독특한 민속신앙이 남아 있다. 바다의 신, 고두리영감을 모시는 ‘고두리영감제’는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로, 고등어 어획량이 줄어들 때면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린다. 이는 다른 지역의 당제나 용왕제와 달리 ‘고등어 신’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민속학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행정구역상 고도 지역에는 근대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조성된 상점 거리와 건물들이 아직 남아 있어, 섬마을의 오래된 상권과 생활사를 엿볼 수 있다. 오래된 목조 건물과 상점의 간판, 골목길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현재는 일부가 리모델링돼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거문도는 2022년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이 같은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섬 여행 활성화에도 힘을 싣고 있다.

거문도의 가치는 단순히 ‘놀다 가는 섬’을 넘어선다.

이곳은 배우고, 걷고, 느끼며,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섬이다.



△레저·체험·K-관광섬으로 변화

2024년 7월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항을 오가는 대형 여객선 ‘하멜호’가 새롭게 취항했다. 430명을 태울 수 있는 이 배는 시속 80㎞의 빠른 속도로 2시간 20분 걸리던 이동 시간을 2시간 이내로 단축시키며, 그동안 섬 주민과 여행객들이 느끼던 불편을 크게 줄였다.

운항 횟수도 하루 3회로 늘어나 주민들의 생업은 물론, 섬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더 자유로워졌다.

접근성이 좋아지자 거문도는 단순한 어촌을 넘어 해양 레저와 자연 체험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넓은 바다는 전국 낚시꾼들이 찾는 명소다. 선상낚시와 방파제 낚시에서 갈치, 고등어, 삼치 등 계절별 어종이 줄줄이 낚이며, 관광객들은 방금 잡은 생선을 바로 조리해 먹으며 ‘바다에서 먹는 신선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거문도는 울릉도, 제주도와 더불어 국내 3대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도 이름나 있다. 따뜻하고 맑은 바닷속에는 형형색색의 어류와 해조류가 살아 숨 쉬며, 해저 지형이 다양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스킨스쿠버 업체 4곳이 운영 중이며, 그중 3곳은 체험 프로그램과 장비 대여를 함께 제공한다.

육지에서도 거문도의 매력은 이어진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트레킹 코스는 동백나무 숲, 등대, 전망대, 인어해양공원까지 이어지며, 걸을수록 자연과 섬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다. 봄이면 동백꽃이 붉게 물들고, 여름이면 청량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여기에 섬마을의 작은 골목길, 오래된 가게들, 마을 주민의 따뜻한 인사까지 전해져 걷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다.

2023년 거문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K-관광섬 육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함께 행복한 산다이-거문도’를 슬로건으로 인간과 자연이 어울리는 지속 가능한 섬, 과거와 현재가 어울려진 조화로운 섬, 관관광객과 주민이 어울리는 행복한 섬 조성을 위해 주민과 함께 지속 가능한 관광지로 변화 중이다.

섬 주민들은 “우리 섬이 그냥 놀다 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며 보고 배우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섬이 되길 바란다”는 소박하면서도 깊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올해 7월부터 10월까지는 K-관광섬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국제 섬 워크캠프’가 열린다. 국내외 청년 30여명이 거문도를 찾아와 문화 교류, 섬 정화, 마을 꾸미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8월에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소규모 음악 공연, ‘산다이 EDM 페스티벌’도 예정돼 있어 더욱 다채로운 여름을 선사할 예정이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청정한 은빛 바다, 오래된 골목길,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세월이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있는 여수 거문도에서 낚고, 걷고, 먹고, 쉬며 자신만의 진짜 섬 여행을 만들어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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