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기의 여수·광양항 해법은? <2>경쟁력 부족한 항만시설
‘광양만권 활용’ 배후경제권 강화 시급
대형 선박 기항 제한 ‘여전’…부산신항과 물동량 격차 확대
항로 증심사업 필요…환적화물 유치 위한 야드 확장도 절실
입력 : 2025. 09. 22(월)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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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열 갠트리크레인은 4기밖에 안되고 나머지 15기는 모두 22열 갠트리크레인으로 하역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부두 전면 항로 수심이 -16m밖에 안돼 초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입출항할 수 없는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선진항만과 달리 화물량이 부족해 3-4단적재로 일관하고 있는 컨테이너부두 야드장


친환경 항만구축을 위해 청정에너지로 연료를 전환해야하는 야드장 하역장비들
△하역 장비 노후화와 생산성 한계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의 하역 장비는 대부분 지난 1998년 개장 당시 도입된 것으로, 20년이 훌쩍 넘은 장비들이 아직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비는 노후화되고 성능도 크게 떨어져 교체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항만 경쟁력이 결국은 생산성과 직결되는데, 핵심이 되는 하역 장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세계 항만 경쟁 속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경고다.

실제로 광양항은 2013년 선박 대형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24열 크레인을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총 4기에 불과하다. 그 사이 글로벌 항만들은 발 빠르게 초대형 선박에 최적화된 장비를 확보하며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크레인 수와 성능 모두에서 광양항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만 생산성과 직결되는 하역 장비는 갠트리 크레인, 트랜스퍼 크레인, 리치스태커, 야드트랙터, 야드샤시 등으로 구성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박에서 화물을 직접 싣고 내리는 갠트리 크레인이다. 현재 광양항에는 광양항서부터미널과 한국국제터미널을 합해 부두 길이 2550m에 총 19기의 갠트리 크레인이 설치돼 있으며, 이들의 적정 처리능력은 272만TEU 수준이다. 반면 부산신항 4·5부두는 같은 길이의 부두에 26기의 크레인을 갖추고 있으며, 적정 처리능력은 437만TEU에 이른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크레인 수가 7기나 많은 데다, 부산신항은 26기 전부가 24열 크레인으로 구성돼 있어 초대형 선박이 기항했을 때 하역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광양항은 19기 가운데 15기가 여전히 22열 크레인에 머물러 있어 대형 선박을 처리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동일한 부두 길이를 갖고도 장비 성능 차이로 인해 부산신항이 광양항보다 1.6배 앞선 하역 생산성을 기록하는 이유다.

광양항은 지난 2021년부터 광양항서부터미널을 시작으로, 현재는 한국국제터미널까지 24시간 운영 체계를 구축하며 국제 항만으로서 위상을 다져왔다. 그러나 정작 생산성 향상의 핵심인 하역 장비 보강은 이뤄지지 않아, 국제 경쟁력 강화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터미널 운영사들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장비 보강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기당 100억원에 달하는 갠트리 크레인 신규 도입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항만공사와 터미널 운영사들은 수년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하역 장비 공동사용’ 제도를 고안해냈다. 광양항 부두가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이점을 활용해, 선박이 접안했을 때 인접 터미널의 유휴 크레인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별도의 장비 도입 없이도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인 이 제도는, 특히 24열 크레인이 부족한 광양항의 초대형 선박 하역에 최대 4기까지 동시에 투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를 통해 하역 시간이 단축되고 작업 효율성이 높아져 전체 생산성이 지금보다 10% 가량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얕은 수심…대형 선박 기항 한계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 활성화를 가로막는 또 다른 현안은 부두 전면 항로의 수심 문제다. 최근 해운업계는 한 번에 더 많은 컨테이너를 운송하기 위해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세계 주요 항만들이 잇달아 항로를 깊게 파내며 대형 항만으로 탈바꿈하는 가운데, 광양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현재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 전면 항로의 수심은 -16m 수준이다. 이로 인해 1만8000TEU급 이상 대형 선박은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채로는 입항이 어렵다. 선박 하부가 해저에 닿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광양항을 찾는 선박들은 대기하다가 조수 간만의 차를 맞춰 입항하거나, 전 기항지에서 일부 컨테이너를 내리고 들어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해운 전문가들은 광양항의 안전한 선박 기항을 위해 현재 -16m인 수심을 최소 -18m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부의 제4차 항만기본계획(2021~2030)에는 -17m 증심 사업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초대형 선박이 기항하지 못해 스킵(Skip)이 늘어나면 항만 물동량 감소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머스크의 중남미 서비스 라인(AC3)은 지난해 상반기 26회 기항 예정 가운데 단 1회만 스킵해 4% 스킵률을 기록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같은 26회 중 8회나 스킵하며 무려 31%의 스킵률을 보였다. 그 결과 올해에만 7624TEU의 물동량이 감소했다.

광양항의 1만TEU급 이상 선박 입출항 실적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2년 177척(5.3%)이던 것이 2023년에는 231척(6.2%), 올해는 257척(7.5%)으로 증가했다. 반면 부산신항은 이미 지난 2017년까지 수심 -17m 증심 공사를 완료했으며, 일부 부두는 -18m 수심을 확보했다. 더 나아가 현재 건설 중인 부산·진해신항은 수심 -22m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항만 간 인프라 격차가 얼마나 빠르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환적 화물 유치 시급

광양항의 물동량 확대를 위해서는 환적 화물 유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 수출입 화물은 단기간에 늘리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을 유치해 제품을 수출해야만 화물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반면 환적 화물은 선사와 화주가 이용하기 편리하고 비용이 저렴하다면 곧바로 유치할 수 있다. 그러나 광양항의 환적 화물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줄었다. 2020년 30만TEU, 2021년 37만TEU, 2022년 30만TEU, 2023년 38만TEU였던 것이 2024년에는 27만TEU로 감소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12만TEU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5만TEU보다 22.1% 줄어든 수치다. 한진해운이 파산하기 전인 2013년 환적 화물은 54만TEU, 2014년 52만TEU, 2015년 58만TEU까지 기록했으며, 이 시기 광양항의 컨테이너 총 물동량도 200만TEU를 훌쩍 넘었다. 환적 화물이 줄면 전체 물동량 역시 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환적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프라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길이 1400m, 폭 600m의 컨테이너 야드를 확장하고, 현재 4단 미만으로만 적재하는 야드 컨테이너를 선진 항만처럼 7단, 9단까지 적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트랜스퍼 크레인, 리치스태커, 스트래들 캐리어, 야드 크레인, 탑 핸들러 등 다양한 야드 장비의 교체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항만 구축도 시급하다. 현재 광양항의 하역 장비는 대부분 경유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어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광양항은 지난 2021년부터 ‘친환경·스마트항만’ 비전을 내걸고 장비 전기화와 배출가스 저감장치 도입을 추진해왔다. 총 19기의 갠트리 크레인에는 이미 모두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부착됐으며, 지난 7월에는 전기 야드트랙터 10대를 처음 도입했다. 그러나 트랜스퍼 크레인 52기와 야드트랙터 91대 등 주요 장비는 여전히 절반 이상이 경유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도입된 중국산 장비들의 성능 검증도 미비해 운영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주저하고 있으며, 국가와 지자체 지원도 예산 변동성 탓에 안정적이지 못하다. 계획대로 2030년까지 친환경 항만을 완성하려면 정부와 전남도, 광양시, 터미널 운영사 간 보다 긴밀한 협력과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배종욱 전남대 물류교통학과 교수는 “광양항의 물동량이 정체된 가장 큰 이유는 인프라 취약성으로 인해 선사 유치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며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함께,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을 활용한 배후경제권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광양=김귀진 기자 lkkji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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