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들 시집선’ 발행 시작…1번에 이대흠 시인
제2·3시집서 작품 엄선 ‘동그라미’ 출간
현실에의 시적 대응력…서정시 묘미 탐색
현실에의 시적 대응력…서정시 묘미 탐색
입력 : 2025. 03. 20(목) 17:44

이대흠 시인

시집 ‘동그라미’ 표지
이번 시집은 시인의 제2시집 ‘상처가 나를 살린다’(2001)와 제3시집 ‘물속의 불’(2007)에서 골라 엮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동그라미’는 그의 시 중 교과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시이다. 첫 시집의 제목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라는 구절은 양가적이다. 여성성(눈물)과 남성성(고래)이 혼재한다. 이번 시집을 읽고 나면 이 제목이 왜 더욱 필연으로 읽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특히 5·18민중항쟁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20여년 전 절판돼 아쉬움이 크다고 생각하던 중 문학들의 제안으로 출간돼 의미가 깊다는 게 이 시인의 설명이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 이후 제3시집에 이르는 그의 시적 경향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언어를 조탁하고 압축해 노래에 이르게 하는 서정시의 묘미가 먼저 돋보인다. ‘ㄹ’을 활용해 강물과 아버지와 전라도 곧 자연과 인간과 삶의 터전을 하나의 가락으로 노래한 ‘남도’, 북소리와 춤을 통해 흐름과 멈춤 곧 삶의 절정의 순간이나 지점을 노래한 ‘춤꾼 이씨’ 등이 그렇다.
‘강물이 리을리을 흘러가네/술 취한 아버지 걸음처럼/흥얼거리는 육자배기 그 가락처럼’(‘남도’)이라거나 ‘아라리가 났네 하먼/아라리 뒤쫓지 말고/먼첨 아라리가 나부러사써//귀로 듣는 아라리에 몸 맞추지 말고/이녁 몸속 아라리가/막 터져 나오는 것이제’(‘춤꾼 이 씨’)라고 노래한다.
다른 하나는 신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1980년 광주 ‘오월’의 아픔 곧 현실(역사)에 대한 시의 대응력을 탐색하는 시들이 눈에 띈다. ‘물속의 불’ 장시와 ‘지나 공주’ 연작이 그것이다. 이들 시편은 신화적 상상력과 어머니(누이)로 표현되는 모성(여성성)의 프리즘으로 현실 세계의 모순을 해석하려는 다소 실험적인 시도로 읽힌다. 이번 시집에서는 읽기 편하게 제목을 달고 분리해 제2부와 제3부에 실었다.
‘총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폭도를 죽이는 소리/총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간첩을 잡는 소리’(‘나는야 혁명군 새 나라 건설의 전사 - 위대한 탄생 4’)라거나 ‘이제 보니 간첩이라는 말은/적이 보내 내정을 염탐하는 자가 아니구나/민중들의 가슴에/수신기 대고 청진기 대고/상처를 도청하는 자로구나’(‘이제 보니 - 붉은 심장을 가진 나무 6’), ‘시체들은 썩어가고/파리 떼만 끓는다네//춤을 추던 나는 사금파리 밟았네/사각사각 나를 먹어 대는 사금파리/천천히 나를 먹는/나의 창녀 지나 공주’(‘소풍-지나 공주 1’)라고 읊는다.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은 1994년 ‘창작과비평’에 ‘제암산을 본다’ 등 7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를 통해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남성적 톤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전라도 입말의 특장, 남도만의 유장한 가락을 살린 빼어난 서정시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육사시문학상과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조태일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 다수 수상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