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청룡의 해를 앞두고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1.10∼3.24 주제 ‘용의 신화, 무한한 사랑’)이 성사되면서 작업한 새로운 해 용의 기운을 투영했던 신작 ‘용의 부활-무등의 신화’가 이탈리아에 진출을 앞두고 있어 현지에서 어떤 평가를 이끌어낼지 미술계 안팎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용과 여인, 그리고 부석사 설화를 작업 모토로 연필 드로잉을 통해 독창적 화폭을 구현, 북경과 뉴욕, 유럽 및 서울과 광주를 위시한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광주 출생 박소빈 작가가 2019년 베니스 첫번째 초대전 이후 5년 만에 두번째 초대전을 베니스 현지에서 갖는다. 이 전시는 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과 주중한국문화원, 그리고 작가가 국내에서 10년만에 전시를 진행했던 광주시립미술관이 협력기관으로 참여한다. 이번 초대전은 광주에서 선보였던 대표작들이 이탈리아 현지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용의 부활-무등의 신화’는 광주 어머니산인 무등산 줄기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영혼으로부터 신화, 이를테면 여기 광주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부활이라는 신화를 창조한다는 스토리를 담기 위한 작업이었다. 광주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무등의 서사를 담는 작업이자 시도여서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때 관람객들이 집중했던 작품이다. 용과 여인, 그리고 부석사 설화는 그의 작업 출발선상에서 따로 분리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고향 광주의 자연에서 가장 상징적인 심볼인 무등산과 동양인의 삶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는 용의 담론이 만났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2019 베니스비엔날레’ 당시 라보토리움 갤러리에서 열렸던 첫번째 베니스 초대전 때는 ‘새로운 여성 탄생’과 ‘깊은 꿈’ 등을 선보였지만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을 깊이있게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다. ‘새로운 여성 탄생’에서는 작가의 작품 기조를 이뤘던 용이 달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깊은 꿈’에서는 생명이나 탄생을 망라해 여성성의 에너지가 응축돼 투영된 바 있다.

하지만 5년 만에 다시 마련된 베니스 초대전에서는 무등의 서사가 이탈리아 현지인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여서 관심이 집중된다.

‘용의 부활-무등의 신화’

‘용의 부활-무등의 신화’는 전제 조건이 용과 물이 상통할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등산과 빛고을을 관통하는 광주천이다. 미르는 용의 의미로 물의 고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과 물이 상통한다는 시각에 맞춰보면 광주천과 연계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천에 물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농경시대에 미르가 물과 비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수신이자 농경신이었기 때문이다. 화단에서 광주와 관련해 담론에 기반, 용의 서사를 끄집어낸 사례로 향후 광주천의 서사와 연계시 늘 언급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젊은 화가들 몇몇은 자기만의 시각으로 광주천의 서사를 묶어내려 시도하고 있어 이번 ‘무등의 신화’가 산파 역할을 하는데 중요 역할의 한 축을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민들의 젖줄인 광주천이 아직은 예술의 범주에서 그 어떤 서사와도 연결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박 작가에게 작업방향의 전환의 물꼬가 될 수 있을 이번 베니스 초대전은 앞으로 작품의 형태나 장르, 내용, 소재 등의 측면에서 작업 폭을 좀더 넓히는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앞서 만난 박소빈 작가는 이번 초대전에 대해 ‘현지에서 한국관 역할을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전시를 위한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베니스에 안가고 작업만 하고 싶은 점이 솔직한 심정이고, 담담한 느낌이다. 다만 베니스 전시에서 제 작품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면서 “그리고 국내외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제 작업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140년 역사를 자랑한 이탈리아 베니스 한국문화원 박소빈 초대전 포스터

전시는 오는 16일부터 11월 24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스파지오 SV 산비달아트센터(www.spaziosv.com)에서 ‘용에 들어가다’라는 타이틀로 열린다. ‘용에 들어가다’는 절권도를 창시했던 전설적 무술배우 이소룡이 주연한 영화 ‘엔터 더 드래곤’(ENTER THE DRAGON)에서 차용했다.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용쟁호투’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전시장 1층에서는 연필박스를 포함해 소품이, 2층 전시장에서는 10m 규모의 ‘새로운 신화 창조’와 6m 규모의 ‘용의 부활-무등의 신화’, 4m 규모의 ‘부석사설화-선묘여인’ 등 대작들이 출품된다. 더욱이 이탈리아와 수교 140주년을 맞아 열리는 것이어서 기념해볼 수 있을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는 중국과 뉴욕 전시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 뉴욕을 연고로 활동을 펼쳐온 저명한 큐레이터 탈리아 브라초포울로스(Thalia Vrachopoulos·존제이대학 교수) 등 세계적 기획자와 비평가 및 미술관계자들이 다시 한번 전시장에서 조우한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주중한국문화원의 러브콜로 중국 북경에서 ‘용의 부활-무등의 신화’ 등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들과 ‘무등의 신화 무한한 사랑’ 영상이 문화원 내 예운갤러리에서 그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개인 성격의 전시를 여는 것이 아니라 중앙박물관 등의 전시를 선택하는 것이 관례인데, 광주시립미술관의 박소빈전을 간판전시로 선택했다는 점 역시 의외로 평가된다.

때마침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베니스 특별전’이 ‘마당-우리가 되는 곳’이라는 타이틀로 오는 4월 18일부터 11월 24일까지 221일 동안 이탈리아 베네치아 일 지아르디노 비안코 아트 스페이스에서 진행되기에 함께 연계될 경우 광주미술에 대한 외연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작가는 9일 출국, 30일까지 베니스 현지에 머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