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나무 잎사귀 하나가 가을을 알린다. 어떤 일의 신호탄을 의미하는 격언이다.

이태원 참사 후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이 사실을 비틀고 왜곡한다. 그 저의는 간단하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참사를 대하는 무책임성이 도를 넘고 있다.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국민들을 대상화시키면서 자신의 책임회피에 급급한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분노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무책임이 무능의 원인이다. 어떤 일에 책임을 질 일이 없는 사람은 열정을 쏟지 않는다.

재난과 안전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의 최고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을 지는 일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는 말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녹슨 솥에서 어떻게 하얗고 먹음직스러운 쌀밥이 지어지겠는가?

가장 값진 공부는 자신의 행위에는 그 만큼의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일이다. 사필귀정을 아는 것이다. 이제 우리 자녀들과 청소년들에게 무슨 낯으로 사필귀정을 가르치겠는가? 궤변이 난무하고 있는 사회에서 말이다.

애도와 추모의 시간에 나는 분노한다. 사람들은 마음에 존재하는 정답에서 너무 벗어나서 생뚱맞고 실망스런 장면에 직면했을 때 분노한다. 더 나아가 치욕스러움을 느낀다.

내가 정말로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무책임한 인사들의 표정이나 말보다는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그 가족,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이 보인다. 이태원 참사 그 자체보다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잘못된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다.

정부와 책임있는 사람들이 국민들과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믿는다면 이렇게 절망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희생자들에게 한없는 죄스러움을 가지고 유가족의 마음을 눈물로 어루만져 주었다고 느꼈다면 이런 분노는 안으로 삼켜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편에 서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를 너와 나의 다른 문제로 구분 지어버렸다. 그 속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잘못이 농도 깊게 자리해서 나오는 언행과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다.

정부는 희생자 및 그들과 같이 아파하는 국민들을 철저하게 대상화시켜 버렸다. 국민들은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나 사건을 경험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신체적 질병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어떤 때는 실직을 하고 대인관계에서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겪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와 사건들은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미국정신의학회는 ‘보통 인간의 경험을 넘어 대부분의 사람에게 명백하게 고통을 주는 사건’을 외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외상을 목격해도 외상 사건이 될 수 있다. 물론 외상 사건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촉발시키기도 한다.

고통과 곤란,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한다.

외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강점을 발견해 세상과 사람을 보는 관점이 변화한다. 다른 사람과 교류가 증가하기도 한다. 외상 후 성장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고통과 죽음 등 실존적 영적 물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을 포함한다.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나려면 누군가 트마우마 경험자와 동반자가 돼야 한다. 트라우마 생존자에게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외상 후 성장을 도우려면 트라우마 생존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을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세계관에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무책임과 궤변이 아니라 책임자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가족,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길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