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구례에 머물며 글쓰기를 구상하고 집필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장편 ‘빨치산의 딸’(전 3권)의 소설가 정지아씨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刊)를 펴냈다. 이 장편은 압도적인 몰입감과 가슴 먹먹한 감동, 그리고 작가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가 소설 전반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끝끝내 강인한 우리의 인생을 만날 수 있다.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는 평이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작가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이 장편은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로,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이어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이며,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소설가 정지아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박혜진 아나운서는 추천사를 통해 “배척과 갈등의 말, 금기어로 여겨져온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유령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의 세계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는 얽히고 설킨 사연들에 빠져들다보면 그들이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그저 저마다의 삶을 꾸려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밝혔다.

소설가 정지아씨는 중앙대 대학원을 졸업,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행복’과 ‘봄빛’, ‘숲의 대화’, K-픽션 ‘검은 방’,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어린이책 ‘유관순’, ‘선덕여왕’, ‘하늘을 쫓는 아이’ 등을 선보였다. 제7회 심훈문학대상과 제14회 김유정문학상, 제14회 한무숙문학상, 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소설상, 제7회 이효석문학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전공전담교수와 조선대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