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믿고 의지할 어른도, 친구를 사귈 여유도 없었던 광주의 한 새내기 대학생이 2022년 어느 여름날 학교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학에 합격한 올해 초 아동보호시설을 나와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반년도 채 비티기 힘든 냉혹한 현실을 맞닥트리고 고민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자립준비청년(아동보호시설 등에서 퇴소한 청년)에 대한 안타까움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엿새 뒤에는 광주에서 비슷한 처지였던 다른 청년의 비보가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비극이 처음은 아니다. 자립준비청년 출신으로 이들을 돕는 한 사회적기업 대표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두 건은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광주 사건이 이례적 일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 국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호 대상 아동은 2만4000여명에 이른다. 이중 매년 2500여명, 광주에서만 100여명의 보호가 종료되고, 곧바로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해야 한다.

정부는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작년 7월 ‘보호종료아동’의 명칭을 ’자립준비청년’으로 변경하고, 보호 기간을 만 18세에서 만 24세까지로 연장했다. 광주시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자립정착금 1000만원과 월 35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LH주택 지원 등 이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거주지 마련, 생활용품 구입, 대학 진학 등 자립 초기에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보호종료 5년 이내 평균 기초생활수급률은 36.1%이며,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일반 청년보다 3배 높은 5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위기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받거나 조언을 구할 어른의 부재 등 사회적 지지 체계도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당장 취업을 하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단순 노무직이나 서비스업을 택했다가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은행 가는 것이 서툴고 부동산 계약을 잘 못 해서 사기를 당하는 일도 많다. 보이스피싱에 연루되거나 피해를 보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번 아프기만 해도 일을 못해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때문에 단기적 일자리보다는 안정감을 갖고 자립할 수 있는 실질적 취업 지원과 생활교육이 필요하다. 기업 등 지역사회에서도 이들 청년들의 취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는 시책을 더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광주시가 10개 유관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자립교육 강화, 핫라인 상담창구 개설, 주거 지원 확대 등 14개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지원 대책과 사회적 연대가 결실을 맺어 그들의 성장과 자립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장 시급한 건 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는 일이다. 그러려면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마주한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은 그들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거칠고 험하다. 좌절하기 쉬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시선이다. 주위에 혼자라는 생각으로 외로워하는 친구나 이웃이 있는 지 둘러보자.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만 관심 주는 눈길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들의 형제·부모가 되어주고 멘토나 후원자가 되어주면 좋겠다.

미국의 빈민가에서 마약에 중독된 부모나 폭력에 시달리던 아이들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고 자립에 성공했던 이유는 가족 중 할머니든 형제든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고아라서 끈기가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을까봐 보육원 출신이라는 말을 하려면 죽을 각오가 필요하다는 한 청년의 고백을 들었다. 이처럼 두려움 가득한 사회 구성원으로 첫발을 떼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는 ‘단 한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