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난 2018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미투’(me too)운동은 공직사회는 물론 문화예술계, 대학가, 종교계 등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여기저기 폭로가 이어지면서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도마 위에 올라 전 국민을 깊은 충격에 빠트렸다.

이러한 ‘미투’가 4년 만에 광주연극계에서 다시 터져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는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인 배우들이 광주연극계에서 상습적인 성폭력 범죄를 당해왔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 2명은 신인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부터 수차례 성폭력과 성희롱 등을 당해왔다. 지목된 가해자는 광주 모 극단 대표 A씨와 그의 아내이자 연출가 B씨, 또 다른 극단의 대표 겸 배우 C씨 3명이다.

이들은 모두 지역 연극계에서 대표, 연출, 배우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이끌어 온 이들이라 더욱 충격적이다. 피해자들은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5·18이나 정의에 대한 공연을 올리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고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내가 너를 키워줄 수 있다’ 등의 말로 피해자를 압박하며 성폭력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약자에게 범죄를 가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인 것이다.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가해자를 쉽게 거절할 수 없을 뿐더러 당한 일을 주위에 알리는 것도 무척 어렵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용기를 내지 않는 이상 범죄는 드러날 수 없는 구조다.

예술인 대부분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어떤 법적 보호도 없이 예술을 향한 간절한 꿈을 안고 집단 안에 들어간 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죽이면서까지 버텨왔고 지금도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 사건은 어느 집단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다. 지역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썩은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면 다른 뿌리도 함께 썩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