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근에 정율성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경계인’이 개봉됐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정율성 선생 영화다.

정율성(1914-1976)은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잠시 화순 능주에서 살다 다시 광주로 올라와 남구 양림동과 舊 히딩크호텔 자리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릴 적 이름은 부은으로 율성이란 이름은 중국에서 만난 약산 김원봉이 지어주었다 한다.

그는 숭일학교와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녔는데 큰형 정남근과 둘째형 정인제 셋째형 정의은이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독립운동을 위한 중국행과 의혈단 입단, 사회주의 가담 등은 형들에게서 영향 받았다 추측할 수 있겠다.

중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 중 유독 사회주의자가 많은 이유는 그들이 사회주의를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삼은 까닭에서다. 영화 말모이의 실제 인물인 김두봉, 영화의 단골 소재인 약산 김원봉, 님 웨일즈 소설에 등장하는 김산 등은 사회주의 계열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사회주의 계열은 중국의 모택동 정부와 밀접했고 김구 등 상해임시정부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관계를 맺었다. 양쪽 진영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웠다.

일제 패망 후 소련과 미국은 북과 남으로 진주해 일본을 대신했으며 나중에 입국한 독립군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해방은 되었으나 입국은 개인자격으로만 허락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의 경우도 개인자격으로 입국해야만 했다. 광복을 자력으로 이루지 못한 까닭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만 했다. 지금도 강대국들의 이해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엇갈리고 있지 않는가.

정율성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가를 만들었다. 중국공산당 군대인 팔로군은 1934년 대장정을 전개해 장정이 끝난 후 9만의 군대 중 겨우 6000여명이 생존했다. 살아남은 6000여명의 전사들은 공산당의 통일 후 중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중국인들에게 팔로군은 인민의 군대로 긍지의 대상이었다. 정율성이 만든 노래들이 중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해방 후 정율성은 북한에 가서 조선인민해방군의 행진곡을 만든다. 한 사람이 중국과 북한 두 나라의 군가를 만든 것이다. 정율성도 고향인 남한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이북으로 간 것은 그가 팔로군 소속으로 당의 명령에 의해서였다고 그의 딸은 증언하고 있다. 정율성은 북한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였다.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에서 진 연안파가 몰락하였고 팔로군 중장 출신인 연안파 무정이 숙청되었다.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정율성을 아끼던 주은래가 그를 다시 중국으로 불러들였다. 중국으로 돌아간 정율성은 주은래의 비서인 정솔성과 결혼한다. 그는 남과 북에 정착하지 못한 채 중국여성과 결혼해 중국에 정착했다. 그렇게 ‘경계인’이 된 것이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밀레니엄 시대가 오기 전에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진 것도 오래전 일이다. 이제 지구상에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 베트남과 쿠바 정도다. 이들 나라도 엄밀히 말해 사회주의 국가라 보기 어렵다. 무늬만 사회주의 국가로 이들은 K팝을 듣고 소녀시대, 동방신기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지금은 BTS에 열광하고 있다. 세상은 인터넷망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미 한 마을이 된 지 오래다.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정율성은 중국의 영웅인 동시에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명문가 이회영 육형제는 조국이 망하자 가산을 정리해 마련한 600억원으로 서간도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한 장교들 대부분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다. 해방 후 우리는 이회영 육형제를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배웠다. 정율성 삼형제도 비록 노선이 달랐지만 이회영의 육형제와 같은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해방 후 75년이 흘렀다. 남북 정상이 만나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다. “민족의 이익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처럼 남과 북은 민족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서로 화해해야만 한다. 우리가 정율성을 기억하고 우리의 독립사에 그를 옮기려는 이유는 남북의 화해와 미래를 위해서다.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78년 만에 귀환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서울공항으로 마중 나간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