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이 연말이면 선정하는 한해의 키워드로 올해는 ‘부동산 투기’가 꼽히지 아닐까 싶다. LH 임직원들의 개발예정지 사전 땅 매입으로 촉발된 부동산 투기 문제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는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이 오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실물 자산이나 금융 자산을 구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생산활동을 동반하는 투자와 구별된다.

또 일반적인 매매는 실제의 필요성에 의해 이뤄지는 반면 투기는 가격의 오르내림의 차이에서 오는 이득을 챙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땅을 구입할 때 그곳에 공장을 지어 상품을 생산할 목적을 지닌 경우는 투자가 될 수 있지만, 땅값 인상만을 노려 일정 기간 후에 이익을 남기고 다시 팔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에는 부동산 투기다. 투기는 속성 자체가 비생산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 사회적 이윤을 착취하는 것이어서 사회악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서울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던 70년대 말이다. 이 때부터 부동산 투기는 늘 사회악으로 취급돼왔지만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폐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는 ‘재테크’라는 허울을 쓰고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부동산을 매입해 생산활동에 관여하지 않고 단지 일정 기간 시간을 보낸 뒤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재테크라면 단지 부동산 투기일 뿐이다.

오랜 시간 관행화된 부동산 투기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공직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LH사태 이후 광주전남에서도 사전정보를 이용한 공직자들의 투기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광주경찰은 개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땅을 매입한 전 광산구 국장 A씨와 전 서구 과장 B씨를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알선수재 등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광주시청과 종합건설본부, 서구청, 광산구청 등 행정기관 4곳과 A씨의 자택 등 개인 주거지 2곳에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A씨가 광주시의 도로 개발 계획과 관련된 내부 정보를 사전에 입수, 2017~2018년 해당 부지 인근 수십 억원 규모의 부지 3개 필지를 사들여 시세 차익을 챙긴 정황을 확보했다. A씨가 사들인 토지는 실제 개발로 이어지면서 일부 보상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A씨 외에도 퇴직 공무원들의 광산구 산정지구를 비롯한 지역 부동산 투기 의혹 10여 건에 대한 제보를 받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전남에서도 공직자들의 투기혐의 수사가 잇따르고 있다.

전남경찰은 정현복 광양시장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지난 13일 광양시청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정 시장은 자신과 자녀가 소유한 땅에 도로가 개설되고 부인 소유의 땅에 개발이 진행돼 이해충돌 논란을 빚고 있다.

강진군도 공무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경찰은 강진군청 소속 공무원인 C씨가 부당하게 부동산 투기를 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C씨는 가우도 관광단지 개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일대 부동산을 사들인 혐의(부패방지법 위반)를 받고 있다.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해 취득한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명백한 중대 범죄행위이다. 공직자들이 내부정보로 투기에 나선다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이에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따가운 여론 속에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적폐’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찰청 내에 부동산 투기전담 수사반 구성, 국토교통부 내 부동산거래분석기획단 출범, 공직자와 공직자 가족의 부동산 거래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일부 개정안 발의 등이 모두 공직자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이다.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만 막아내도 우리 사회에 만연된 투기 문제를 상당수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돈이 돈을 벌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근절하는 대책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