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고부’가 한 무대에서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한다. 시어머니가 선창을 하면, 며느리가 이어 맛깔나게 후창을 잇는다. 이영애씨(62·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보유자)와 그의 며느리 국악인 박혜정(31)씨 이야기다.
고부로 연을 맺었지만, 이들은 원래 스승과 제자 사이다. 혜정씨가 중학생 때부터 이영애 선생 아래서 공부를 했으니, 그 세월이 벌써 17년이 넘어선다. 그렇다고 제자 혜정씨가 아들과 연분일지는 몰랐다는 게 이 명인의 설명이다. 그의 아들은 KBS공채 개그맨으로 활약하고 있는 장기영씨다.
그는 “우리 아들과 혜정이는 8살 차이가 난다. 제자 혜정이를 보면서 ‘참 착하고 참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차가 있기 때문에 며느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혜정이가 서울 중앙대에 진학하고, 그곳에서 연주활동을 하면서 둘은 연인이 됐다”며 “중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연을 이어오다, 이제는 한 가족이 됐으니 참 내게 귀한 인연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명인에게 혜정씨는 애제자 중 하나였다. 여리고 작은 친구였지만 연주를 할 때만 나오는 다부진 모습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리여리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에너지를 느낄 적마다 ‘뭘 해도 될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국악계 길을 걷는 후배이자 가족으로의 동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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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인은 “인내와 끈기가 없다면 갈 수 없는 게 국악의 길이다. 한 곡씩 완주해 가는 과정에서 오는 고난을 이겨내야만 최고의 예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은 짱짱한 국악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는데, 국악인 며느리를 맞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고 밝혔다.
이는 혜정씨 또한 ‘격하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혜정씨는 “오래 스승으로 모셔오면서 연주를 익혔고, 국악인으로서의 자세를 배웠다. 늘 제자들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어머니의 넉넉함을 존경해왔다”며 “사제지간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로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었던 데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깊은 애정 덕분일 것이다”고 언급했다.
고부의 연주 활동은 이제 시작이다. 지난 3월21일 전통문화관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선 첫 공식 무대였다. 아기를 출산한 지 100일 정도 된 혜정씨지만 남다른 의미의 공연인 만큼 곡 선정부터 무대 콘셉트까지 손수 결정해 꾸몄다.
이번 공연에서 둘은 ‘봄’을 테마로 ‘꽃 중의 꽃’, ‘내 고향의 봄’, ‘꽃타령’ 등을 선보였다. 특히 ‘꽃 중의 꽃’은 이 명인이 만든 곡인데 당시 혜정씨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완성해냈던 곡이라 그 의미를 더했다.
그런 이들의 가야금병창 공연에 관객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여줬다. “참 보기도 좋고 듣기에도 좋다”는 게 그것이다.
무대에서 이들은 찰떡호흡을 자랑한다. 눈빛만 마주쳐도 어떤 연주로 이어갈 지 그려진다. 수 백 번 함께 연주해 온 덕이다. 반 백년 내공의 시어머니가 든든히 받쳐주면, 젊은 감각의 며느리 혜정씨가 자유로이 연주 판을 노닌다. 특히 예스러운 시김새가 으뜸인 이 명인의 소리에다, 청아한 혜정씨의 음색이 더해져 오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앞으로 이들은 무대에서 계속 만날 수 있다.
이 명인은 마지막으로 국악인이자 아기엄마가 된 ‘워킹맘’ 혜정씨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그는 “국악인으로서는 강물 같은 예인이 되길 바란다. 크게 요동치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담고 가는 강물처럼 올곧고 깊은 연주를 하는 연주자로 커 나갔으면 한다”면서 “허나 육아를 하면서 연주활동을 잇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잘 안다. 무엇보다 본인이 행복해야만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 늘 곁에 든든한 응원군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에 혜정씨는 “제자로 지냈던 때부터 지금껏 어머니의 무대를 보면서 ‘꼭 영혼이 연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어머니의 깊고 진한, 전통의 맛을 제대로 전수 받고 싶다”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국내는 물론이고, 우리 국악의 진수를 알리는 해외 공연을 함께 기획, 투어를 떠나고 싶다”고 화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