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전일빌딩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다시 시민들 앞에 섰다. 광주의 문화와 예술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 발신하는 역할을 하게 될 이 건물은 5·18민주화운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똑똑하게 지켜봤던 역사적 건물이다. 특히 많은 총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그대로 담고 있는 건물이다. 뿐만 아니라 리모델링을 하는 과정에서 벽면선을 기둥 하나 간격만큼 셋백(set back)을 하여 인도 폭을 더 넓게 한 금남로 최초의 도시공헌 건물이다. 이는 근래 선진도시들이 차도를 줄여서 인도 폭을 확장하여 보행자 쾌적성과 활동성을 증대하려는 경향과 맥을 함께 한다. 그간 우리 도시들에서는 인도의 기능을 보행으로 한정하면서, 사람 간의 유대와 활력을 만드는 공간기능은 소홀히 해왔는데, 전일빌딩이 공간기능을 갖도록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도와 차도가 분리된 가로공간에서 인도 폭을 넓히는 방법은 연도형 건물을 셋백해 넓히는 방법과 차도를 줄여서 넓히는 방법 등 2가지가 있다. 전자는 일본 요꼬하마의 모토마찌나 오사카 중심거리인 미도수지가 그러하며, 후자는 요코하마의 일본대로가 그러하다. 필자는 20여 년 전에 오사카의 도시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고 있는 현장들을 간 적이 있었다. 오사카 중심가로 공간인 미도수지 거리의 가이드라인에는 연도형 건물들의 폭과 높이, 건물간 간격 규정은 물론, 건축선에서 2m 이상 셋백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벽면은 쇼윈도우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었다. 당시 몇 개의 건물은 셋백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건물은 그러하지 않고 있었다.

함께 갔던 오사카 시청 공무원은 이 사업은 다음 세대까지 지속 될 것이라면서, 기존 건물들은 현재 벽면선에서 기둥하나 간격 정도의 셋백을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디자인에는 긴 인내와 적극적 사고가 필요함을 말해준 것이다. 요코하마의 일본대로는 차선을 크게 줄여서 인도를 확대했는데, 인도 폭 반 정도는 원래 차도였다. 과감하게 인도 폭을 확대하고 고정용 파라솔과 라운드 테이블을 놓아서, 지나간 사람들이나 세월을 낚는 사람들이 앉아서 쉬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망하도록 하여 인도를 보행 기능중심에서 공간기능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산업사회 도래 이후 도시들은 가로공간을 보행자 활동 중심에서 빠른 속도를 가진 기계 활동 중심으로 바뀌면서 도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조가 되었고, 보행자 권리는 크게 침해 받아왔다. 특히 도시와의 대면성을 약화시키면서 사람들의 활동이 건물 안에서 계층별로 이루어지게 함은 물론, 절연생활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선진 도시들은 인도를 차량 중심에서 보행 중심으로, 이동 공간중심에서 활동공간중심으로 재편해 온 것이다. 근래 자주 이야기되고 있는 보행 활성화 등의 장기적 정책을 수립 하기 전에 일시적 설계와 적용을 통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는 텍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 도 그러하다. 만약 전일빌딩에서 시작한 건물 셋백이 금남로 모든 연도형 건물로 이어진다면, 보행과 공간 활동은 더욱 증대할 것이다.

평생 걷고싶은 도시만들기에 주력했던 한양대의 고 강병기 교수는 도시연대 신입회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우리가 바라는 도시환경은 걷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는 그런 도시입니다. 걷고 싶어지고, 그래서 살고 싶은 그런 도시 말입니다. 살고 싶다든지, 좋은 도시라든지 하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는 기준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걷기가 쉽고, 걷기가 편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이런 점들은 남녀노소, 사회적 신분은 물론, 도시적 약자나 강자 모두가 가리지 않고, 모두가 쉽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걷는다는 것에 즐거움이 있지 않으면 공간적 활력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성훈 등은 “보행도시(아우리)”에서 보행은 움직이는 사람이 주변의 사람이나 사물, 사건들에 따라서 속도와 방향, 시야와 시선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걸으면서 도시환경의 질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행의 즐거움이 클수록 보행자들은 그 장소에 머무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도가 자전거나 오토바이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물건이 쌓여 있거나 인도의 단절로 흐름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인도바닥과 건물바닥이 일체화하는 건축과 도시공간의 연동도 있어야 한다. 공개 공지도 옆 건물과 연동해야 한다. 건물 1층 용도는 활력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건물의 높이나 입면적 등도 맥락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활력있는 거리가 되고, 골목길도 활성화된다. 나폴레옹 3세 시대에 파리 시장이던 오스만 시대를 연구했던 발터 벤자민은 파리를 거닐든 사람들을 보행자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라고 불렀다. 그는 보행자가 걷는 장소를 “그의 발자욱 소리가 가까이 들여오는 것만으로도 그 장소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라고 했다. 전일빌딩의 셋백이 그러한 활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물 셋백이 도시디자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금남로가 명실 공히 사람의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