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최근 우리 사회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지역 간 의료복지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대명제는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였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예상치 못했던 벽에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 깊은 생채기만 남겼다.

정부가 지난 7월 당정회의를 통해 공공의료 체계 확대를 발표할 때만 해도 의료 사각지대인 전남은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에 곧 희소식이 들릴 것으로 믿었다. 동부권의 순천대와 서부권의 목포대는 일찌감치 의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위기 상황에도 파업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거세게 저항했다.

특히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들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원격의료 등 4개 의료정책을 원점 재검토 또는 철회하는 것이 의료개혁이라면서 진료 거부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국내 필수 의료 전문가가 부족한 이유는 전문의가 취업할 만한 병원이 없기 때문이며, 기피과 문제는 수가 정상화로 해결해야 하고,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지역의료 시스템 정비와 인프라 확충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의료개혁의 최대 수혜자가 돼야 할 국민보다는 의사 밥그릇 싸움에만 집착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의료=공공재’ 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의사 파업을 반대하는 이들은 ‘공공재’ 성격이어야 하는 의료복지가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에 좌절됐다며 맹비난한다.

이에 반해 의사들은 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은 국가가 비용을 부담해 의사를 양성하고 인건비와 일터를 책임지는 사회주의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논리라고 항변한다. 극히 일부 공중보건장학생이나 군위탁장학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의사들이 자비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후에도 자기가 알아서 취업을 하든가 개업을 하는데 무슨 공공재냐고 반문한다.

일부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더 극렬히 반발하는 이유가 향후 공공의대에서 배출한 의사들과 경쟁해야하는 가장 큰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공공의대 자질이 우려된다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정해진 ‘의료 파이’ 안에서 더 많은 상대와 경쟁해야 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논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먼저 최근의 일부터 되짚어보자. 정부의 이번 공공의료 확대 정책은 시기와 절차에서 적절치 않았다. 전염병 확산이라는 엄중한 시기에 깊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잘못이 크다. 의사들의 대응도 적절치 않았다. 어떤 경우에서든 환자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 ‘의사들이 환자를 버렸다’는 절대 다수 국민의 외침을 외면하면서 여론은 의사들의 행동을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했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행위가 훗날 스스로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의사들에게 도덕성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의사들의 요구를 ‘지역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전제로 접근하면 대화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의사들의 요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고 대화에 나서주길 바란다. 우리는 지난 10여개월 동안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극한의 고통을 참아가며 환자를 지키는 그들의 열정과 진정성을 보지 않았는가. 지금 의사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의협과 정부·여당은 지난 4일 ‘원점 재논의’ 합의로 잠시 미뤄진 시간 동안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의료 접근성이 전국에서 가장 취약한 전남의 요구에 가슴을 열고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전남에 의대를 신설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나 더 주라는 게 아니다. 없으니 채워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