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항상 옳았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헬 박사가 만들어낸 로봇들을 하나 둘 쓰러뜨리는 그의 활약은 ‘정의’란 이름으로 행해졌기에 더욱 빛났다.

악당에게 세계를 넘겨줄 수 없다는 그의 정의감은 상대 로봇의 힘에 눌려 위기에 몰릴수록 강하게 불타올랐다. 그에게는 필살기 ‘브레스트 파이어(breast fire)’가 있었고 가슴에서 뿜어져 나가는 붉은 광선을 맞은 상대는 맥없이 주저앉곤 했다. ‘기운 센 천하장사/무쇠로 만든 사람/인조인간 로봇 마징가 제트/우리들을 위해서만/힘을 쓰는 착한 이…’ 주제가와 함께 당당하게 기지로 귀환하는 그는 얼마나 늠름했던가.

우리의 유년기는 텔레비전 속 쇠돌이와 함께 있었다. 마징가제트를 통해 ‘정의와 선(善)은 불의와 악(惡)에 맞서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명제를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불의와 악은 ‘목숨이 아깝거든/모두 모두 비켜’야 할 대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었다.

우선은 ‘마징가제트’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진 만화라는 사실이었고 가장 크게 간과한 것은 쇠돌이가 텔레비전 속 세상은 지켜냈을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까지 구원하기에는 힘이 벅찰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쇠돌이의 부재를 절실히 깨닫게 됐다. 원칙보다는 변칙이 우선이고, 때로는 반칙까지 서슴지 않고 자행되는 사례를 너무 자주 목도했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변칙이 원칙처럼 통용되고 심지어 반칙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눈살부터 찌푸려진다. 정치, 사회에서부터 경제, 교육, 법조계, 군(軍)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병폐가 확산 돼 있다는 느낌이다.

사회적으로는 학생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이 끊이지 않는 데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이유없이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갑질 문제는 또 어떤가. 백화점, 편의점에서부터 대기업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갑질 등이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비리와 연루된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석방,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잇단 영장 기각은 또 어떤가. 아무리 국민의 법 감정과 실제 법 적용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편의점에서 담배 두 갑을 훔친 죄로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정치도 예외일 수는 없다.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뜻으로 부결시키면서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특수활동비를 폐지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뚜렷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성적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시험지 유출 사건,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고,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사법부의 국정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법에 대한 국민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민은 우울하다.

개인의 범주에서 긍정적 가치와 미래를 찾기 어렵고 세상에서도 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맞닥뜨리는 경쟁체제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현실이 버겁다.

마징가제트는 이때 ‘짠~’하고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의나 적폐로부터 평범한 사람을 보호해 자유와 행복을 주고, 세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줘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마징가제트가 나타나 세상의 불합리, 부조리에 브레스트 파이어를 쏘아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마징가제트가 나타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징가제트를 잊지 않는 이유는 정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유년기의 학습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쉿, 혹시 그가 지금 누군가의 억울린 가슴 속에서 또 다른 필살기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