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직공원 내 시비(詩碑·문학비)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43년 제2호 도시 공원으로 지정돼 현재까지 광주시민들의 휴식처로 전통과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사직공원 내 총 11기의 시비들이 공원 숲 곳곳에 설치돼 있는 가운데 일부 시비의 기단부 균열이 점차 심화되고 있어 체계적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이수복 시인의 ‘봄비’ 시비와 박봉우 시인의 ‘조선의 창호지’ 시비는 확연하게 눈에 보일 정도로 기단이 몸체로부터 벌어져 있다. 방치가 지속될 경우 아예 떨어져 내릴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팔각정에서 관덕정 방향 150m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전남 함평 출생 이수복 시인(1924∼1986)의 ‘봄비’ 시비는 1994년 2월 당시 광주직할시에서 건립했다.

‘이 비 그치면/내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지껄이것다//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임 앞에 타오르는/香煙과 같이/땅에서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라는 시 전문이 새겨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비의 조각은 문옥자씨가, 글씨는 정광주씨가 각각 맡았다.

그러나 기단부의 균열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심각했다. 발로 건드려 봤더니 흘러 내릴 정도로 흔들렸다. 몸체와 틈이 상당히 많이 벌어져 있었던 것.

또 관리소에서 약 100미터 아래 배드민턴장 옆 절개진 언덕에 자리잡은 광주 출생 박봉우 시인(1934∼1970)의 ‘조선의 창호지’ 시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 창호지에/눈물을 그릴 수 있다면/하늘만큼 한 사연을......./눈물 흘리지 말고/웃으며/당신에게 드리고 싶은/하늘만큼 한밤을....../조선의 창호지에/눈물을 그릴 수 있다면’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시비는 1994년 2월 당시 광주직할시에서 건립했으며, 조각은 정윤태씨가, 글씨는 이돈흥씨가 맡았다.

기단부의 균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시비는 기단부 균열 외에도 구조적인 문제와 치밀한 관리 부재가 문제였다.

이수복 시인의 ‘봄비’ 시비는 기단부에 잡풀이 자라고 있었다. 기단부에 잡풀이 자란다는 것은 시비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시비의 뒤쪽은 나뭇잎이 쌓여있는 등 사각지대로 방치되다시피했다. 시비 가까이에 근접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박봉우 시인의 ‘조선의 창호지’는 언덕에 자리잡다보니 근접해 시비를 둘러보기 어려운 구조여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비의 앞면이 언덕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그 앞으로 진행되는 차도에 서서 봐야 하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언덕 위 시비를 올려다볼 수 밖에 없어 감상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시인의 약력과 건립연도 등이 새겨진 뒷면은 언덕 끝자락으로 돌아가서 봐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거기다 작은 나무를 식재해 울타리로 막으면서 시비에 대한 근접 감상이 아예 불가능하게 해 문제다.

이 두 시는 문학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점을 이루고 있는 시들로, 상징성이 작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현재 광주사직공원 내 시비는 조선시대 문인 등 위인들과 현시대 시인들로 나눠 구성됐다.

조선시대 위인들의 시비로는 눌재 박상(訥齋 朴祥·1474∼1530)의 ‘길은 산에 묻혀’를 비롯해 문정공 김인후(文正公 金麟厚·1510∼1560)의 ‘어화 버힐시고’, 충무공 이순신(忠茂公 李舜臣·1545∼1598)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백호 임제(白湖 林悌·1549∼1587)의 ‘청초 우거진 골에’, 면앙정 송순(宋純·1493∼1582)의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1587∼1671)의 ‘오우가’, 금남군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공산(空山)이 적막한데’ 등이다.

현대 시인으로는 이수복과 박봉우 외에도 이동주가 있다. 전남 해남 출생 이동주 시인(1920∼1979)의 시비에는 ‘강강술래’가 새겨져 있다. 시비에 새겨진 글자가 흐릿한 문제(보색)가 있다.

이에 따라 이 두 시비를 포함해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전면 보수를 통한 정비는 물론이고, 대개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구조를 바꿔 시민들이 더 가까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임원식 광주문인협회장(시인)은 “각 공원과 호수에 시화를 추진 중인데 광주가 문향이라고 하면서도 기존 문학자산들에 대한 허점이 있어 문제”라며 “문인과 문단은 물론이고 지자체에서도 더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 푸른도시사업소 관계자는 “사직공원이 넓은데다 예산이 걸린 문제라 손을 바로 쓰지는 못했으나 올해 안에 공원 내 시비들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비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