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에게 일상이다. 일상이라는 틀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나와 가족과 우리 공동체에게 직면한 중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고 별다른 사고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외로 같은 사건과 논쟁에 관해 교포들이나 유학생들의 반응과 관심은 한층 깊고 심각한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이슈와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담아내는 어느 작가에게 언제부터 이런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유학시절 친구들의 한국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유럽에서 유학을 했는데, 자신은 학교 구성원 중 소수에 해당하는 동양인 인데다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온 사람이었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낸 매우 대단하고 특이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의 질문에 자신은 명쾌하거나 깊이 있는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조국 한국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작품에까지 반영됐다고 한다. 어쩌면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 그리고 사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나아가 한국에 대해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부끄러워진다.

담양에 예사롭지 않은 부부가 살고 있다. 60년대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던 뉴욕에서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계에 데뷔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세계적 무용가가 된 홍신자 선생이 살고 있다. 게다가 독일 보훔대학과 함부르크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한 석학 베르너 삿세 선생이 함께 살고 있다.

오늘은 유럽 내 한국학의 선구자인 베르너 삿세 교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푸른 눈과 큰 키의 전형적인 서양 미남인데다 늘 소년처럼 웃는 얼굴이 편안한 베르너 삿세, 게다가 한국말이 유창하고 전라도 시골밥상의 참맛을 아는 반전이 있는 서양인이다. 학자라는데 기타를 치며, 먹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여기(餘技)를 즐기던 옛날 선비의 모습이 연상된다. 베르너 삿세를 보며 어떤 이는 “전생에 담양 어딘가에서 살던 ‘배’씨 성을 가진 한국 사람이 독일에서 환생한 게 아닌가 싶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삿세는 자신의 이름을 한자 사(思)와 세(世)로 표기한다.

그는 어찌하여 한국과의 인연이 이리도 깊은 걸까? 그는 1966년 개발원조사업 차 추진된 나주 비료공장에 기술강사로서 들어오게 된다. 1970년 독일로 돌아간 후 한국을 향한 관심과 애정으로 당시 유럽에서는 생소한 한국학을 공부하게 된다. 1975년 독일 보훔대학에서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 방언에 대한 논문으로 당시 서독 최초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신라 향가에 대한 두 권짜리 저작으로 교수 자격을 얻는다. 독일 보훔대학(1975~1992)과 함부르크대학(1992~2006)에 한국학과를 개설하여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독일에 5·18 광주의 진상 알리기에 앞장섰으며, 2002년에는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가사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제자 안정희 교수와 함께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독일어판 ‘월인천강지곡’은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중세 국어의 어휘·어법 등 언어학적 연구 성과를 망라한 저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정웅미술관에서는 한국을 사랑한 독일인, 베르너 삿세의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학자로서 연구결과물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삿세의 수묵화를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삿세의 수묵화는 기존의 수묵화 제작 방식과는 다른 그만의 방식, 즉 자유로운 형식이 있다. 수묵화인데 수묵화가 아닌 재미있는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파란 눈의 서양인이 한국의 자연과 마주하며, 자신의 삶과 마음에 대한 성찰과 대화 속에서 만들어낸 자유로운 몸짓과 같은 진실함이 있다.

익숙한 것은 가장 편한 것이며, 가장 친한 것이기에 그 틀을 깨기가 어렵다. 그 익숙함이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베르너 삿세의 삶과 예술세계, 한국문화에 대한 견해는 익숙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진짜 우리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하고,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시작의 계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운 6월, 하정웅미술관에서 한국을 사랑한 독일인, 베르너 삿세와 만남의 시간 갖길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