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는 유명하다.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돼 있는 고려청자 24점 가운데 18점이 강진에서 만들어졌다.

무려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70%가 강진에서 만들어졌다.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도자기를 생산하고 공급했다. 무엇이 강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강진은 풍요로운 전라도 땅이다. 좋은 흙과 바람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훌륭한 도자기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역사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강진이 도자기를 생산하게 된 근거와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장보고의 청해진제국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도자기를 생산하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장보고 덕분에 중국의 당나라와 같은 시기에 생산, 전 세계에 수출했다. 중국산의 공급이 부족하자 장보고의 청해진제국이 그 공급을 대신했다.

그래서 장보고는 도자기를 만들 흙과 연료가 풍부한 청해진 부근 강진을 택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강진 대구와 마량이다.

장보고가 생산한 도자기가 한·중·일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페르시아 아랍권까지 팔려나갔다.

질 좋은 도자기 재료와 높은 화력을 낼 수 있는 황장목과 우수한 기능인력들이 강진과 해남에 모여 도자기를 생산해 장보고 선단의 배를 이용, 각국으로 수출한 것이다. 도자기 기술을 처음으로 한반도에 가지고 온 사람이 바로 장보고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

그러나 그 도공들은 아쉽게도 청해진제국이 851년 혁파되면서 장보고 청해진제국에 일조했다는 이유로 전부 김제 벽골제로 강제로 끌려가 저수지 및 방조제 축조공사에 투입돼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900년 후백제가 건국되고 견훤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을 다시 되돌려 보낸다.

끌려갔던 도공들이 강진으로 되돌아와 도자기를 다시 생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도자기를 전국에 내다 팔아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장보고 시절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강진만의 독특한 ‘상감’ 기법의 청자를 개발, 중국에 역수출하는 길까지 개척한 것이다. 그래서 기술을 인정받아 중국에 수출하게 된 시점을 고려 초기로 보고 고려청자라고 하고 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청해진제국의 기술을 한층 발전시킨 청자 즉, ‘제국청자’인 것이다.

국보115호 청자상감 국화넝쿨무늬 접시

청해진제국 시절 그 도공들과 후예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 청해진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가 오늘날 고려청자인 것이다.

강진에서 가마 온도를 1300도 이상까지 올리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한 연료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전라도에 풍부한 황장목이라는 소나무 덕분이다. 이 소나무를 때서 고려청자를 굽는 가마에서 철조차 녹아내리는 1500도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었다니 놀랄만한 당시의 신기술이었던 것이다.

강진의 정제된 고령토와 석질암석으로 소성해 만든 청자로 장보고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 신기술이었다.

제국의 꿈은 좌절됐지만 또 다른 꿈으로 새 세상을 개척한 것이다. 강진에서 만들어낸 고려청자 즉 제국청자만이 가진 독특한 상감기법, 강제노역에 억눌린 도공들의 피와 땀과 좌절을 넘어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작이자 꿈이었다.

그래서 장보고 시대의 도자기를 넘어 상감청자로 중국 송나라에 다시 수출길을 열었고, 이어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대량으로 유통 소비되고 강진은 청해진제국의 영화를 다시 재현, 남도의 풍요를 노래할 수 있었다.

고려 무신정권의 나팔수였던 이규보는 “열에서 하나나 건질까 말까한 명품이다”라며 강진청자 제작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은 “청자의 푸른색을 고려사람들은 비취색이라 하는데 근년에 이르러 그 제작기법이 더욱 정교하고 그 빛깔이 더욱 아름다워졌다”고 고려청자를 평하고 있다.

국보115호의 모양을 딴 부안청자박물관의 전경

청자의 색은 유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자기를 빚어 음각, 양각, 상감 등 문양을 넣은 다음 7~800도로 초벌을 구운 후 여기에 유약을 발라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다. 그러면 초벌 때만 해도 흙 색깔과 같은 색을 띠던 것이 재벌한 후에는 청자 본연의 비취색으로 완전히 색조가 바뀐다고 한다. 그 경과는 무어라고 딱 집어 공식처럼 말할 수 없지만 수많은 경험으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천년 이상을 지탱하고 있는 고려청자는 균열이 없고 색감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장인정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장인정신의 바탕에는 장보고 청해진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후예들의 정신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강진청자박물관에 가면 왜 강진인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강진은 고려시대 청자 가마터가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이다. 대구면 일대를 중심으로 현재 180여 군데 가마터가 발견됐는데 우리나라 전체의 60%에 달한다. 또 대구면 일대에서 중국 절강성 명주의 월주요 도자기와 매우 유사한 해무리굽 도자기 파편들이 수없이 발견돼 장보고 시대부터 강진의 자기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청자의 기원은 당연히 장보고 청해진제국시대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이성계는 1395년 현 광주공항 내에 병영성(兵營城)을 설치한다. 영산강의 너른 평야에서 나오는 식량과 전라도의 풍부한 물산을 옮기기 위한 조운창과 백성들의 그릇인 도자기를 지키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다가 더욱 적극적으로 지킬 필요가 있어 1421년 강진으로 병영성을 전진배치 한다. 지금 강진 병영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조선 이성계가 물산과 도자기를 지키기 위한 전진군사기지였다. 그 병영성에서 남도의 물산을 모아 한양 도성으로 물자를 공급하게 됐고 강진 병영은 이러한 물산과 도자기 덕분에 병상(兵商)이라고 하는 상인집단이 출현하게 된다.

북에는 개성상인, 남에는 병영상인이 있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과연 이들이 무엇을 팔았을까.

국보115호의 모양을 딴 부안청자박물관의 전경

여기에는 도자기가 있었고, 조하주와 어아주라고 하는 남도의 명품 비단이 있었다. 아침 새우의 수염 같은 매끈한 비단을 말하는 조아주와 물고기의 이빨 같은 새하얀 비단을 말하는 어아주이다. 생산이 적었다 뿐이지 품질은 세계 최고였다.

남도의 영암과 강진은 당시에 비단으로 유명했고 이를 유통시키는 행상(行商)이 원래부터 왕성하게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육로를 이용하는 육상(陸商)과 해로를 이용하는 선상(船商)이 있었는데 청해진제국은 원래부터 규모를 크게 한 선상이었다. 그래서 ‘북송상 남병상’(北松商 南兵商, 북쪽에는 개성상인, 남쪽에는 병영상인)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남도를 떠받드는 중요한 자원의 하나가 강진의 도자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난도 엄청 당했다. 왜구들이 출몰하여 남도를 초토화 시킨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도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의 국보 2호 도자기인데 바로 조선의 찻그릇이다. 왜구들이 약탈해간 조선의 찻잔이 일본의 유일한 도자기 국보로 존재하고 있다.

청해진제국의 밑바탕이 전라도를 중심에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고려청자에 이어 다음은 장보고가 이 땅에 전해준 차(茶)에 대해서 알아보자.

보물 344호 양각갈대기러기문 정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