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갈수록 그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디자인을 거쳐 생활미술이나 공예, 아르누보(장식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모던한 미적 감각을 익히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학졸업 후 사진으로 변화를 모색한 뒤 패션사진으로부터 출발한 그는 현재까지 카메라를 놓아 본 적이 없다.

더욱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에 진출해 도쿄에서 작품활동을 전개한 것만 보더라도 그가 예술에 대해 어떤 지향점을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직감할 수 있다. 그에게 일본은 그의 사진인생을 통틀어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던 시기다. 현지 갤러리에 소속돼 국제적 전시에서부터 개인전과 그룹전에 이르기까지 거칠 것 없는 활동을 펼쳤다 한다. 사진작가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그동안 화순에 뷰티 카페를 열어 운영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도 생계문제를 비껴가지는 못했던 탓이다. 이 사연의 주인공인 전남 나주 출생 사진작가 이설제씨를 지난 3월 중순 광주시 동구 제봉로 라프레스코에서 만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먼저 이야기에 앞서 그가 라프레스코에서 보자고 한 이유부터 밝혀본다. 이곳은 (재)광주비엔날레 사무동인 제문헌에 입주해 있던 라프레스코의 주인장이 새롭게 문을 연 곳이었다. 계약 만료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는 전언이다.

먼저 와 있던 이 작가가 안쪽에 앉을 것을 권한다. 그를 이미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그 반가움은 더했다. 이날 만남은 또 한명의 작가를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개인전만 벌써 10회, 그리고 단체전 50여회에 출품한 중견사진 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광주가 프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 맞춰보면 그가 사진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작다고만 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이 있듯 하루라도 피사체를 앵글에 담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것처럼 느끼는 일상을 살아간다. 늘 카메라는 자신의 분신처럼 챙겨가지고 다닌다. 착상이 떠오르거나 카메라에 담겨놓아야 할 상황이 언제 펼쳐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무언가를 담아내지 않으면 허전하단다. 그는 생활 속 사진을 방관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찍을 무언가가 있으면 그는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해온 세월이 ‘오늘의 이설제’라고 하는 작가를 존재하게 한 근거였을 터다.

앞서 언급했듯 오늘날 창작자들이 피해갈 수 없는 생계라고 하는 측면을 그도 떨쳐내기 어려워 선택했던 것이 뷰티 카페였다. 그는 이 일을 벌여놓은 탓에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작업을 못하는 대신 일로 오가며 찍어야 할 대상이 나타나면 그것들을 찍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한 그의 고육지책이었다.

‘나르시스즘1’

그는 최근 들어 올 하반기 개인전을 열고 싶은 생각 때문에 창작자로서의 삶으로 시계바늘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모호’와 ‘공존’이라고 하는 담론을 작품 안에서 펼쳤던 그가 요즘에는 동양적 주제인 ‘무아’를 작업 중이다. 이런 작업 기제를 잡아가는데는 그의 확실한 사유로부터 비롯된다.

“서양적인 것은 자기 것에 대한 ‘탈피’인데 반해 동양적인 것은 자기 소유로부터의 ‘해탈’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개념을 작품에서 탄탄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먼저 작업노트를 쓰고, 머릿속 이미지를 다잡아가죠. 생활 속에서 셔터를 누른다는 이야기가 이런 개념의 소스를 잡기 위해 이미지를 계속 모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물감으로 여러 색을 내듯이 여러 의미의 ‘무아’를 보여주기 위해 작업을 해가는 것이라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처럼 작업에 매진하며 자기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그는 사진이 상징적이지만 직설적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의 직설적 사진들은 ‘무아’에 모아진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냄새까지 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처럼 이것 자체를 ‘무아’로 인식한다. 실제로 있지만 없는 듯 하는 것 말이다. 이를테면 바람의 경우 분명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아도 이를 상징적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힘든 이치와 궤를 함께 한다. ‘무아’에 대해 그는 한참 동안이나 설명을 이어갔다.

이와함께 그는 ‘시간성’에 주목한다.

“안개가 처음 자신의 앞에 등장했을 때 분명 존재감이 있죠. 멈춰 있는 듯 하지만 늘 흘러가고 있는 게 안개입니다. 이 피사체를 통해 시간성을 포착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요즘 다층적 모티브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는 등 실험적 작업을 진행 중에 있어요. 기존 작업에 비해 다양성이 조금 결여되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가치를 찾는 것이 ‘무아’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그동안 얼마든지 아트페어 같은데에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품하지 않았다. 새로운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출품을 위해 옛 작품을 들고 나갈 수는 없어서다. 구태의연한 되돌림 같아서 싫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냥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동안 더 성숙되고 진화된 작품세계를 성취한 작품들로 전시를 열고 싶어한다.

“화선지에 먹 하나의 번짐이 여러 의미를 주듯 자신의 사진이 그런 존재성을 획득하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해요. ‘무아’가 결국 동양적이고 저의 철학일 수 있지만 흐림과 채움, 모호, 공존 등 간단한 키워드로 조명해 왔죠. 앞으로 이런 키워드를 모아 ‘무아’라고 하는 함축되고,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고 싶죠. 그래서 2014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개인전을 열지 못했고, 아트페어 같은데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모호(인연1)’

오늘날 사진계 웬만한 인사들은 그를 모두 인지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인 2008년 중국 송좡 국제미술제 한국관 초청작가로 선정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송좡 국제미술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작가로서의 반열로 올라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사진과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들려주던 작가는 광주 사진계의 현실에 대해서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지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기가 더 힘들죠. 회화 등 다른 장르에 비해 여러 인프라 구성이나 커넥션(connection)이 안되고 있어요. 광주 사진작가들은 불과 몇명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 작가들과 교류전을 열고 싶었는데 이런 부분이 굉장히 힘들더군요. 해외작가 교류전을 여는 동시에 작가들과 콜라보를 통해 활성화를 시도해 봤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국한적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일본을 위시로 인도, 뉴욕, 그리고 UN 특별전시 등에서부터 백제예술대와 순천대, 조선대 등 출강까지 다채로운 해외전과 대학에서의 후학 양성을 거쳤다. 그리고 강경대 열사(1972∼1991) 등 1989년부터 1992년까지의 학생운동 현장의 취재 등 다채로운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온 그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사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사진은 제게 심장소리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심장이 멈췄을 때죠. 심장은 가슴에서 뛰지만 저는 손끝에서 또 하나의 심장이 뜁니다. 손끝으로 셔터를 누르는데 그 셔터 소리가 제게는 심장소리와 같습니다. 작가에게 죽음은 창작이 없을 때가 아니겠어요. 제가 아직 셔터를 누르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