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남자 선생님이다~!”

두근두근 설레는 첫 출근을 한 임정섭씨가 들은 첫 마디였다. 아이들은 남자 선생님의 등장에 술렁였다. 처음엔 낯설어 주뼛대다, 동글 동글 인상 좋은 선생님에게 이내 마음을 내어준다. 아이들 곁으론 동료 선생님들이 손수 준비한 ‘환영합니다! 임정섭 선생님’이란 포스터가 붙여졌다. 모두의 축하 속 치러진 그의 새 출발이었다.

임정섭(28)씨는 광주 남구 방림유치원 교사다. 임씨의 출근이 이토록 이목을 끄는 이유는 바로 그가 광주 최초의 공립유치원의 남자 교사이기 때문.

임씨는 ‘2018학년도 공립유치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 시험 최종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것. 임용시험에 도전한 지 1년 여 만의 낭보였다.

유치원 교사로 새 출발을 시작한 임씨를 방림유치원에서 만났다. 새 학기라 정신없을 법도 한데, 그는 들떠 보였다. 그런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너무도 뻔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정말,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그는 웃으며, 그러나 단호히 응답한다.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 못합니다.”

그렇다.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은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정말 힘든 일이다. 아이 한 명 맡아 기르기 어려운 마당에 여러 명은 오죽할까.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어른들과는 다르다.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그 괴리만큼의 애정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터다.

임씨는 전남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유아교육 쪽으로 시선을 넓혀간 것은 군대를 전역한 이후다. 과 친구 한명과 유아교육학 복수전공을 신청했다. 남학생이 유아교육학을 복수전공하는 것은 학과 내에서 조차 흔한 일은 아니었다. 첫 해에는 미끄러졌고,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에 유아교육학을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배워보니, 학문적으로도 매력이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이를 배워가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유아교육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이내 보듬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임씨는 본격적으로 유치원교사 임용시험의 행렬에 동참했다. 남자 유치원 교사가 사실상 흔한 사례는 아니어서, 머뭇거릴 만도 했지만 그는 망설임없이 움직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성별은 중요치 않다는 신념이 그에겐 있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좋고,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이 좋았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교육학과에서는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기도 했는데, 유치원에서의 실습이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주 고된 일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까맣게 잊게 해줄 만큼 아이들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참 귀엽잖아요.”

본인 마음은 확고했으나 사실 주변의 반응이 더 걱정이었다. 남자 간호사도 흔하지 않다고들 하는데 유치원 교사는 더더욱 그 선례를 찾기가 어려워서였다. 이쪽에 관심 깊은 그마저도 “사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체육 담당 남자 교사는 있다고 들었다” 정도였다.

늘 그렇듯 누군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일은 두렵고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고민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용기있는 선택에 힘을 실어주었다.

부모님들은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았다니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친구들 또한 그가 얼마나 아이들을 좋아 하는지 알았기에 박수를 보내줬다.

지난 3월2일 임씨는 아이들의 입학식을 함께했다. 아마 그날의 입학생들은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었기에 뜻 깊었습니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입학생들을 맞겠지만 첫 발령지, 첫 출근지에서 만난 첫 아이들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유치원에서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기’다. 현재 임씨는 교담으로 각 반 자유선택 놀이시간을 맡는다. 아이들이 등원해 본격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임씨가 보살핀다.

임씨와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는’ 단계라 보면 된다. 원생이 110여명인데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교사의 기본이자, 친근한 선생님이 되는 첫 걸음이기 때문.

4월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씩 수업을 들어가게 된다. 그는 신체활동 위주로 수업 안을 짜고 있다. 이번 달 그의 수업 주제는 ‘나와 가족’이다.

“공을 활용해 자신의 신체를 두드려보는 거나, 가족들 안마해주기 등 체험활동을 재미나게 짜보고 있어요. 아직 실전으로 부딪혀 본 것은 아니라, 수업 중에 계획대로 안 되는 부분들도 있겠죠. 아이들의 생각은 저랑 분명히 다르고, 더 명확하니까요. 늘 여유를 두고 아이들을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도 ‘여초’(여성의 비율이 높은 현상)인 직장이라 애로사항은 없느냐 물었다. 첫 발령지이다 보니, 정신이 없기도 없지만 모두 따뜻하게 대해줘 괜찮다 한다.

실제 ‘남자 유치원 교사’의 첫 출근은 동료 교사들에게도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 다행인 것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과 후배가 근무하고 있어, 무리없이 적응 중이다.

그래도 교육계에 남자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각 가정에서도 엄마 그리고 아빠의 역할이 각각 필요하듯, 공교육에서도 남녀 교사가 힘을 합쳤을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자 교사들은 더 섬세하게, 예민하게 아이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타고난 촉이 다르잖아요. 반면에 남자 교사는 어린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걸 잘하죠. 몸으로 부대끼고 뛰노는 것은 남자들이 더 잘할 수 있죠. 하고 싶다면 ‘남자가 해도 되나?’ 이런 생각은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남자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말이 와 닿는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것. ‘교육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일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조언이다.

앞으로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가 물었다. 그러자 “지금 거창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다”고 한다. 차라리 꾸밈 없는 진심이 느껴진다.

“지금 주어진 제 역할에 일단 충실하고 싶어요. 아이들을 더 알아가고, 친해지는 단계라고 봅니다. 남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더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든든하고 친근한 아빠같은 교사가 되고 싶죠.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 바른 아이로 키우는 데 제 몫을 다하는 겁니다. 이곳에서 저와 만난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가고 또 나아가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가겠지요. 아이들이 제가 가진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돕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