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신화로 만들었는가…‘화가 이중섭’을 다시 읽는다
(재)광주비엔날레 윤범모 대표 ‘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 출간
탄생 110주년·사망 70주년 맞아 출생부터 요절까지 등 재조망
다양한 자료·사료 제시 독자들 깊이있는 이해 도와…13부 구성
입력 : 2026. 10. 11(일)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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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를 최근 선보인 광주비엔날레재단 윤범모 대표이사.
1950년 종이에 유화물감으로 완성됐던 ‘황소’는 굵고 거친 선과 강렬한 붓질로 소의 생동감과 기세를 포착한 대표작이다. 지난 2010년 35억 6000만원에 낙찰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남긴 소 작품 연작들은 여럿이다. 대중들에 널리 알려진 작품은 황소다. 이 황소를 위시로 싸우는 소, 흰소, 움직이는 흰소, 소와 어린이 등을 남겼다. 그런데 소를 단순한 동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가 표현한 황소는 당시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민족적 상징으로 인식되던 사회 분위기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대중들에게 폭넓게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흔의 한 가운데 불운한 시대와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두 작품으로 녹여냈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서사가 녹아난 것이었다.

작가는 시대사적 불운과 기구한 개인사까지 겹체 부산 통영 제주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다. 그의 작품에는 소와 아이, 가족, 풍경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의 삶과 경험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그 단서를 조망할 수 있는 근가가 되고 있다.

특히 2021년 故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유족 측이 광주시립미술관(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미술관)에 은색 담배 종이에 그린 ‘은지화’(銀紙畵) 4점과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4점이 기증된 뒤 전시를 통해 공개하면서 그의 작품을 바로 눈 앞에서 접한 적이 있다. 화구를 살 돈조차 없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렸다는 그의 은지화는 일반적으로 1950년대 초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은지화 3점이 1940년대 작품이어서 은지화의 시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 그의 ‘엽서화’는 1940~1943년 연인에게 글자 없이 그림만 그려 보낸 것으로 현재 90여점이 전해오고 있는 가운데 기증된 ‘엽서화’ 4점은 이중섭 초기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는 국민화가로 불리는 평남 평원 출생 이중섭(1916~1956)의 작업과 작품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처럼 더욱 관심이 높아진 이중섭의 작품 이야기를 원로 미술사학자로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자 현 광주비엔날레재단을 맡고 있는 윤범모 대표가 ‘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예술시대 刊)라는 미술비평을 통해 전개해 눈길을 붙잡고 있다.

저자는 ‘국민화가 이중섭을 둘러싼 70년의 신화를 뒤집다’라는 모토로 올해 이중섭 탄생 110주년과 사망 7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천재 이중섭이 과연 진짜 이중섭인가를 묻는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가장 강력한 이름 가운데 하나인 이중섭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는 것으로, 책장을 넘기면 저자가 왜 이 미술비평을 꺼내들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왕성한 집필자가 맞다. 시집만 해도 벌써 네권을 선보였다. 지난해만도 ‘미술의 전통과 시대정신’과 시집 ‘화택 火宅’을 펴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사가 중 한명이다. 현역 등단 시인이기도 해 그는 이론과 현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간직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가 드민 이중섭의 키워들 역시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그의 해박한 식견이 군데 군데 투영돼 실핏줄을 들여보는 듯한 인상을 안겨준다.

저자는 1970년대 이후 이중섭의 비극적 생애와 요절, 순애보가 대중적 서사와 결합하면서 ‘천재 이중섭 신화’가 굳어졌다고 바라본다. 이것이 이 비평서에서 줄곧 제기한 문제의식으로, 신화를 해체한다고 해서 이중섭의 예술적 가치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아울러 그의 작품을 접한 대중들은 황소의 입술이 유독 빨갛게 표현된 의구심을 한 두번쯤은 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궁금증 역시 명확하게 풀어준다,

“대향(이중섭의 호)의 소 그림에 대한 소설가적 상상력은 흥미롭다. 하필이면 원산에서 부산으로 피란 와 배치받은 수용소가 식민지 시절의 우사牛舍였을까. 그것도 일제에 의한 물자 약탈의 현장에서 가족과 함께 견뎌야 하는 처참한 피란 생활의 첫 자리여야 했을까. 조선 소의 약탈 현장에서 대향은 끌려간 소들의 냄새를 맡으면서 소 그림을 생각했다. 인간을 위한 식용도 아니고, 노예 같은 노동도 아니고, 오로지 하늘을 향해 껄껄껄 웃는 소, 바로 자유와 해방의 소를 그리고자 했다. 부산 피란지의 외양간은 대향 가족의 집이었다는 점, 역설적으로 흥미로운 인연이다. 황소나 대향이나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 현주소의 공유, 정말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대향 공간에서 황소는 동행하는 도반道伴이었다…중략…통영 시절(1954년 추정)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몇몇 황소 그림은 종이에 유화 물감을 사용한 작품이다. 1954년 제작으로 추정되는 황소 머리 배경은 생략됐지만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 분위기에 소는 황색 기저에 빨간 선으로 강조하여 역동성을 제고시켰다.”(본문 55~56쪽 일부)

특히 그의 말년의 불우한 삶의 족적과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데, 인간 이중섭의 궁구한 시간들과 가족사, 미술계 안팎의 여러 관계들이 다양한 자료 혹은 사료들을 제시했기에 한눈에 조망이 가능하다. 이같은 그의 삶의 족적들이 그의 회화의 서사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신화적 시각에 빠지기 쉬울 수 밖에 없다. 다만 이중섭을 인간 이중섭 그 자체로부터 출발할 때 그의 신화적 시각에 빠지지 않고 인간이자 한 시대를 관통해간 한 화가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전제는 유효하다.

윤범모 대표는 프롤로그를 통해 “난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세월이다. 그래서 이중섭 예술의 순수성이 그리워 구리고 화공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집필하게 댔다. 마침 2026년은 그의 탄생 110주년과 사망 70주년의 해다. 이른바 꺾어진 해에 화가 이중섭, 아니 화공 대향을 위해 졸저를 헌정하고자 한다. 신화라는 아지랑이 같은 허울을 벗어내고 화가 자신이 즐겨 그린 알몸으로서의 ‘대향 정신’과 만나기를 희망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1부에서 13부까지 이중섭의 삶과 회화 세계 전반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말미에는 출생에서부터 요절까지를 망라해 그의 삶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보까지 수록돼 있어 그에 대한 독자들의 깊이있는 이해를 고양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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