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순천 세계유산축전
천년 고찰과 살아 있는 갯벌, 세계인의 무대로
12일부터 22일간 개최…‘생명의 유산, 정원의 무대’ 주제
실감형 콘텐츠·템플스테이·백패킹·버스투어 등 프로그램
12일부터 22일간 개최…‘생명의 유산, 정원의 무대’ 주제
실감형 콘텐츠·템플스테이·백패킹·버스투어 등 프로그램
입력 : 2025. 09. 22(월)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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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습지 갈대밭

선암사

선암사 승선교

순천만 습지
전통문화의 깊은 향기와 디지털 기술의 최첨단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유산축전은 12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22일간 열린다. 순천시와 순천시 세계유산보존협의회가 마련하는 이번 축제는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며 미래세대와 공유하는 살아있는 참여형 축제로 기획됐다. 세계유산축전은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전국의 세계유산을 무대로 매년 개최해 온 국가 단위 문화 브랜드 행사다. 하지만 올해 순천에서 열리는 축전은 유난히 이목을 끈다. 사찰과 갯벌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세계유산이 한데 모여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잇는 독창적인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축제의 막은 12일 오후 7시 순천만 국가정원 내 그린아일랜드에서 오른다. 개막공연은 ‘생명의 유산, 정원의 무대’를 주제로 3000명의 관람객 앞에 선암사와 순천만이 간직한 생명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지역예술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화려한 미디어쇼와 내빈 인사, 판소리와 전통 무용, 합창이 이어지고 수십 대의 드론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마지막에는 퓨전밴드 ‘유희스카’의 축하 무대가 마련돼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단순한 개막 세리머니가 아닌, 순천의 정체성과 세계유산의 가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가 될 전망이다.
선암사 일주문에서 대웅전, 불조전, 무우전, 응향각, 설선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인 AR·VR 체험극 ‘만일(萬日)의 수행’의 무대가 된다. 관람객은 배우 수행자의 안내를 따라 사찰 공간을 걸으며 몰입형 체험을 한다. 불조전 뒤편에서는 VR 기기를 통해 고승들의 구법 이야기와 참선을 경험하고, 응향각에서는 깊은 명상의 순간을, 설선당에서는 AR 속 큰 스님에게 칠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단순히 전통 사찰을 ‘보는’ 차원을 넘어, 고요한 산사의 숨결을 몸으로 느끼고 수행자의 길을 함께 살아보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순천만습지 무진교 일원에서는 AR 미디어아트 공연 ‘갯벌의 사계’가 펼쳐진다. 흑두루미, 짱뚱어, 칠게, 농게 등 습지 생물이 캐릭터로 등장해 가을·겨울·봄·여름으로 이어지는 사계절 이야기를 풀어낸다. 퍼펫 공연과 음악극이 결합된 이 무대는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 인간과 생명이 공존하는 생태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람객이 즐기기에 적합한 동시에, 환경 보전의 가치를 관객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학습의 장으로 기능한다.
축제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선암사 심검당에서는 ‘산사에서 나를 찾다’를 주제로 한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참선, 발우공양, 전통 예불에 참여하며 빠른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를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순천만 안풍습지에서는 평소 출입이 제한된 갈대숲을 개방해 ‘갈대 백패킹’이 열린다. 참가자는 달빛과 바람, 별빛 속에서 1박 2일을 보내며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특별한 시간을 경험한다. 회당 40명 한정으로 운영돼 예약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또한 순천역을 출발해 선암사와 순천만습지를 하루 동안 둘러보는 ‘세계유산 버스투어’가 마련돼 사찰에서의 수행 체험과 습지에서의 생태 관찰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시인 정호승과 김인철 소장이 각각 선암사와 순천만습지를 무대로 인문학 강연을 펼치는 프로그램, 달빛과 새벽 풍경 속에서 습지를 즐기는 감성 투어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세계유산축전은 무엇보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어린이는 선암사 문화 해설을 듣고 네 컷 만화를 제작하는 ‘어린이 시선 웹툰·투어’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일반 시민은 전통 연등 만들기와 자연 소리 라디오 제작에 도전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기획한 ‘순천댁의 갯벌 이야기’, ‘순천만 뻘배림픽’, ‘갯벌 플로깅’, ‘새우잡이 캠핑’ 등도 축제를 더욱 살아있는 현장으로 만든다. 관람객이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축제의 주인공으로서 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주체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축제는 학술적 깊이도 더한다. 개막 당일 순천대 파루홀에서는 국내외 전문가 100여명이 참여하는 국제포럼 ‘기후와 세계유산의 동행’이 열린다. 기후변화가 문화유산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보존과 국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더불어 드론 촬영과 사진 자료, 12개 어촌마을 주민들의 구술 기록을 모은 아카이빙 사업이 진행돼 자료집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이는 유산을 단순한 현재의 체험이 아니라 미래 세대와 공유할 지식 자산으로 남기려는 시도다.
순천시 관계자는 “세계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특정 기관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라며 “이번 축전이 세대와 문화, 지역과 세계를 잇는 소통의 장이자, 유산의 현재를 함께 누리고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순천=박칠석 기자 2556pk@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