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엿 멕이는 사회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입력 : 2025. 04. 02(수) 18:03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영팔이 아재는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다. 읽은 글에서 얻은 슬기를 베풀어준다. 논리의 바탕이 튼튼하고, 말의 순서에 짜임새가 있다. 옛글을 읽지만 요즘 상식의 흐름도 잘 잡는다. 읽는 것으로 치자면 노벨상 저리 가라다.
자칫 껍데기만 안고 잘난 체 할 수도 있으나 책에서 얻은 겸손을 놓지 않는다. ‘이런 얘기가 있어~’ 슬그머니 톡 치거나, ‘어려운 일을 그렇게 풀었더라고!’ 살짝 꼬투리를 던지기도 한다.
기하 아우는 기타를 잘 친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루면 좋다면서 기타를 가르쳐준다. 손가락이 짧으니 코드를 이렇게 짚고, 손의 움직임은 이렇게 하라며 꼼꼼하게 알려준다. 연주법은 가르쳐줄 수 있으나 강약은 가르쳐줄 수 없으니, 스스로 익히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옛날에 수레바퀴 깎는 늙은이가 있었다. 너무 깎으면 헐거워서 바퀴가 쉽게 빠지고, 덜 깎으면 조여서 들어가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설명은 할 수 있으나 가르칠 수는 없다. 다만 손으로 익힐 뿐이다. 기타 치는 것처럼.
성인의 깨달음을 글로 옮긴 책도 마찬가지다. 글로는 표현할 수 있으나 그 깨달음까지 심어줄 수는 없다.
아무리 읽어도, 머리로만 익히고 몸에 스며들지 않으면? 글 읽는 기술자일 뿐이다.
‘네스토링’이란 말이 있다. 존 올리버 네스토 박사는 고속도로에서 가장 왼쪽 차선을 규정 속도로만 달린다.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속도 제한이라는 법을 지키게 하려는 뜻이지만 도리어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
법 조문을 정확하게만 따름으로써 오히려 세상을 망쳐버리는 일을 ‘네스토링’이라 부른다.
법을 만든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글자만 그대로 해석함으로, 상식을 뒤엎고 원칙을 무너뜨릴 때 쓰인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사람을 ‘법 기술자’라 부른다. 교묘하게 법을 이용하여 제 잇속만 챙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오는 행정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시대에 발 맞추기 힘들고, 행정처리자들이 물려받은 관행의 낡은 일처리 방식으로는 변화의 때를 놓친다. 때를 놓친 일도 꽤 있다.
행정처리자의 개인 취향으로 K-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허가받은 권력이라고 제 고집만 부리면 안 된다. 작은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그걸 모른다는 게 탈이기는 하지만.
성공한 기업가들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상품 값어치는 점점 높여갔다. 목표는 두루뭉술한 논리로 세우는 게 아니라 숫자로 세웠다. 행정도 정치도 그러지 않을까?
정치는 권력을 얻으려는 몸부림이고 마음부림이다. 아닌 것 같지만 가정이나 회사처럼 작은 곳에서도 권력을 잡으려고 애쓴다.
정치는 우리 마음 속에 묻어있고, 우리 모두는 정치를 하며 산다. 의원이 되고자 하는, 도지사·시장을 노리는 사람만 꼭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제 한아비(조상)가 저질렀던 친일의 상식을 감싸다보니, 독립운동을 무시한다.
제 집안이 휘둘렀던 독재의 상식을 따르다보니, 민주 운동을 때려 잡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독립의 평안을 자신들이 이룬 것처럼 맘껏 누리고, 민주의 세상을 자신들이 일군 것처럼 제멋대로 누린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은 내 잇속을 먼저 따지면서 제 잇속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고, 정치‘가’는 공동체의 잇속을 따지며 바꿔간다. 대한민국은 정치인이 많은가, 정치가가 많은가?
지도가 바뀌었는데 옛 지도로 항해했다가는 침몰의 길로 들어서고, 멈추지 않은 탐욕을 앞세우다가는 모두를 파탄의 길로 이끈다. 탐욕을 치밀하게 포장해서 감추니까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노나메기란 말이 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해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산다는 말이다.
백기완 선생은 우리 함께 한뉘(인생)를 노나메기처럼 살자며 이 말을 자주 썼다. 노나메기는 어질고 올바르게 잘사는 세상이다. 천국의 우리말쯤이다. 노나메기를 그리는 정치가가 우리의 일상 속에 넘쳐나면 좋겠다.
자칫 껍데기만 안고 잘난 체 할 수도 있으나 책에서 얻은 겸손을 놓지 않는다. ‘이런 얘기가 있어~’ 슬그머니 톡 치거나, ‘어려운 일을 그렇게 풀었더라고!’ 살짝 꼬투리를 던지기도 한다.
기하 아우는 기타를 잘 친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루면 좋다면서 기타를 가르쳐준다. 손가락이 짧으니 코드를 이렇게 짚고, 손의 움직임은 이렇게 하라며 꼼꼼하게 알려준다. 연주법은 가르쳐줄 수 있으나 강약은 가르쳐줄 수 없으니, 스스로 익히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옛날에 수레바퀴 깎는 늙은이가 있었다. 너무 깎으면 헐거워서 바퀴가 쉽게 빠지고, 덜 깎으면 조여서 들어가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설명은 할 수 있으나 가르칠 수는 없다. 다만 손으로 익힐 뿐이다. 기타 치는 것처럼.
성인의 깨달음을 글로 옮긴 책도 마찬가지다. 글로는 표현할 수 있으나 그 깨달음까지 심어줄 수는 없다.
아무리 읽어도, 머리로만 익히고 몸에 스며들지 않으면? 글 읽는 기술자일 뿐이다.
‘네스토링’이란 말이 있다. 존 올리버 네스토 박사는 고속도로에서 가장 왼쪽 차선을 규정 속도로만 달린다.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속도 제한이라는 법을 지키게 하려는 뜻이지만 도리어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
법 조문을 정확하게만 따름으로써 오히려 세상을 망쳐버리는 일을 ‘네스토링’이라 부른다.
법을 만든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글자만 그대로 해석함으로, 상식을 뒤엎고 원칙을 무너뜨릴 때 쓰인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사람을 ‘법 기술자’라 부른다. 교묘하게 법을 이용하여 제 잇속만 챙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오는 행정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시대에 발 맞추기 힘들고, 행정처리자들이 물려받은 관행의 낡은 일처리 방식으로는 변화의 때를 놓친다. 때를 놓친 일도 꽤 있다.
행정처리자의 개인 취향으로 K-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허가받은 권력이라고 제 고집만 부리면 안 된다. 작은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그걸 모른다는 게 탈이기는 하지만.
성공한 기업가들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상품 값어치는 점점 높여갔다. 목표는 두루뭉술한 논리로 세우는 게 아니라 숫자로 세웠다. 행정도 정치도 그러지 않을까?
정치는 권력을 얻으려는 몸부림이고 마음부림이다. 아닌 것 같지만 가정이나 회사처럼 작은 곳에서도 권력을 잡으려고 애쓴다.
정치는 우리 마음 속에 묻어있고, 우리 모두는 정치를 하며 산다. 의원이 되고자 하는, 도지사·시장을 노리는 사람만 꼭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제 한아비(조상)가 저질렀던 친일의 상식을 감싸다보니, 독립운동을 무시한다.
제 집안이 휘둘렀던 독재의 상식을 따르다보니, 민주 운동을 때려 잡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독립의 평안을 자신들이 이룬 것처럼 맘껏 누리고, 민주의 세상을 자신들이 일군 것처럼 제멋대로 누린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은 내 잇속을 먼저 따지면서 제 잇속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고, 정치‘가’는 공동체의 잇속을 따지며 바꿔간다. 대한민국은 정치인이 많은가, 정치가가 많은가?
지도가 바뀌었는데 옛 지도로 항해했다가는 침몰의 길로 들어서고, 멈추지 않은 탐욕을 앞세우다가는 모두를 파탄의 길로 이끈다. 탐욕을 치밀하게 포장해서 감추니까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노나메기란 말이 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해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산다는 말이다.
백기완 선생은 우리 함께 한뉘(인생)를 노나메기처럼 살자며 이 말을 자주 썼다. 노나메기는 어질고 올바르게 잘사는 세상이다. 천국의 우리말쯤이다. 노나메기를 그리는 정치가가 우리의 일상 속에 넘쳐나면 좋겠다.
광남일보@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