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지켜본 광주를 작업"…서사 되새기다
오월정신 자취 사진에 투영 임채욱 작가展
4월 27일까지 은암미술관서…작품 27점
비상계엄은 작업 전환점…도록 300부도
입력 : 2025. 04. 01(화) 18:39
‘무등산’
지난해 12월 대인시장에서 우연하게 그를 만났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굉장히 차가운 곳에 오랜 시간 머물다 온 사람 같았다. 추워 보였기 때문이다. 소박한데 투박한 모습 그 자체로 그를 만난 후에야 그가 뭐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2023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등산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위해 머물거나 오갔다. 더욱이 그는 전라도 사람도 아닌, 경북 성주가 고향이다. 이런 그가 무등산과 광주, 5·18민중항쟁과 윤상원 열사 및 춘설헌을 늦게나마 두루 알겠다고 광주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 드디어 펼쳐진다.

주인공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뒤 사진으로 전향해 ‘지리산 프로젝트’ 등 사진가로서 꾸준하게 활동을 펼쳐온 임채욱 작가가 그다. 임 작가는 지난달 27일 개막, 오는 27일까지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무등산’이라는 타이틀로 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출품작은 영상 3점과 사진 24점.

그는 이번 전시에서 무등산이 주체가 된 시선에 바탕해 광주의 서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식과 구성으로 선보이는 가운데 무등산(광주의 역사를 지켜본 산), 무등산 의재길(차와 예술의 길), 무등산 오월길(5·18 민주화길), 그리고 엔딩에 해당하는 무등산 물들길(남도 정원의 길) 등 4가지 주제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무돌길이 아닌, 물들길로 명칭을 정한데는 광주정신의 면면한 흐름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배롱나무 꽃 떨어져 흘러갈 때 장노출로 촬영, 붉은 꽃이 떨어져서 흘러간다는 것을 표현했다.

‘무등산’
충장22 입주작가로 머물며 작업한 그는 먼저 무등산 촬영 작업과 관련한 소회를 들려줬다.

“제가 차도 없는데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그가 주말만 시간이 나서 그때만 촬영을 하는 것이 힘들었죠. 소쇄원 등 원거리에 갈 때는 난감했구요. 제게 촬영 전후 광주는 달라졌습니다. 무등산을 작업 하기 전에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바라보던 무등산이었거든요 .무등산 작업은 내가 바라본 무등산을 작업한 것이 아니라, 무등산을 지켜본 광주를 작업한 것이죠. ”

전시공간은 지난해 6월부터 물색, 은암미술관으로 정했지만 10월에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까지 국내 상황이 급변하면서 전시 진행이 불투명해졌다. 그는 비상계엄을 경험하지 못했으나 12·3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비상계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비상계엄 당시 그는 국회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다. 비상계엄을 뜻하지 않게 경험한 셈이다.

“계엄 전의 광주를 작업했는데 다시 이전 시대에서나 가능했던 계엄이 서울에서 발동된 거예요. 제 작업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이 돼 전개되더군요. 비상계엄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가 돼 버린 거예요. 그래서 다시 올 1월에 5·18민중항쟁의 상징적 공간인 전남대에서 그것을 잇기 위해 다시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남대에서 동백을 봤는데 날씨가 추워서 꽃은 피지 않았더군요. 전세대의 비상계엄이 대충 가을로 해서 종결됐는데 12월 이후 현재의 비상계엄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1980년 비상계엄 이후 45년만에 다시 계엄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무등산’
그는 동백이 상록수라는 점에서 김민기의 목소리 한 소절 또한 떠올렸고, 매해 피는 동백이기에 동백꽃으로 물드는 광주정신을 꽃 피는 것에 비유, 엔딩으로 꾸미는데 집중했다. 꽃이 떨어졌어도 다시 피우는 윤상원으로 마무리돼야 의미가 있기에 관객들이 꽃잎 한잎을 가지고 윤상원을 기리면서 떨어지더라도 광주정신이 계속 된다는 콘셉트로 방점을 찍도록 했다. 앞서 말한 김민기의 노래 한소절은 물론 자신이 최애로 삼은 말러 교향곡 ‘3번 6악장’을 영상에 삽입해 광주의 비장미와 숭고미를 배가시켰다. 그는 말러를 워낙 좋아해 앨범만 40∼50장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말러가 1911년 5월 18일에 사망했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 전시 때도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삽입했다. 올 하반기 전시 때는 말러의 '부활'을 생각 중이다. 말러는 그와 늘 함께 할 듯하다.

“무등산 작업은 타이밍적으로 운명적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무등산을 보면 인수봉이 떠올려져요. 인수봉이 서울을 바라보고 있다면 무등산은 광주를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극과 극의 타이밍을 탄 것 같습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그렇고, 현 정권의 비상계엄도 그렇구요. 상상할 수 없는 극과 극의 사태를 겪었다고 봅니다. ‘지금 작업을 안하면 언제 하냐’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어요. 무등산을 바라본 스팟이 드러나게 옛날부터 이어져서 현재의 5·18민중항쟁과 12·3비상계엄이 상황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고 보죠.”

윤상원 열사를 호출해 광주정신을 상기시키는 임채욱 작가
비상계엄 날 국회 앞에서 들은 윤상원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과거가 아닌, 현재 다시 불려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생각돼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는 그는 윤상원 열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오롯하게 새기도록 하기 위해 전시장에서 맨 마지막에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작품을 설치, 관람객들이 꽃잎 퍼포먼스를 하며 감상을 마무리하도록 하고 있다.

임 작가는 북한산 관련 도록을 3권 냈지만 전시를 열지 못했다. 북한산 관련 전시를 한 차례 열 생각이다. 이와함께 300부를 찍은 도록의 ‘무등산’ 글씨는 장불재와 입석대, 규봉암 등에 있는 바위(주상절리)를 하나씩 조합해 만들어 독창적이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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