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문화수도 뮌헨 그리고 광주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 2025. 03. 20(목) 17:43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문화산책]독일의 뮌헨은 세계 여러 도시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며 언제나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다. 무엇보다 나의 고향 광주와 뮌헨 시민들의 문화의식과 정체성은 다른듯하면서도 묘하게 닮은 곳이 많다.
뮌헨은 독일 바이에른 주(州)의 주도(州都)이며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 세 번째 큰 도시로 인구는 약 150만명이다. 광주는 1896년부터 2005년까지 109년 동안 전남도청의 소재지였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5대 광역시 중 하나인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약 141만명이다.
뮌헨은 유럽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매년 계속되는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수년째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빅5’에 꾸준히 선정되고 있다. ‘바이에른 주’(州)는 BMW등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산업의 메카이며 ‘뮌헨’은 IT, 생명공학, 출판 등의 영역에서 독일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뮌헨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하고 있고 금융과 보험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과학과 연구의 중심도시로도 손꼽힌다. 바이에른 주립도서관(막시밀리아네움 Maximilianeum)은 60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럽 최대의 도서관이며 독일을 대표하는 종합대학인 뮌헨대학 등 고등 교육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광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8개의 시립예술단을 기반으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문화·예술의 도시’ 그리고 다양한 전통음식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맛의 도시’라 할 수 있다. 1995년에 시작된 광주비엔날레는 아트넷(Artnet)에 의해 세계 20대 비엔날레에 지속적으로 선정되고 있다. 비록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영남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되기도 했으나 현재 ‘AI’, ‘자동차’ 산업 등을 미래 중심 산업으로 선택하고 도시의 비약적 발전을 위해 집약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광주의 미래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2차 대전 기간 중 뮌헨은 1942년 6월에 결성되어 1943년 2월까지 활동했던 백장미단(白薔薇團) 결사대의 중심지였다. 백장미단은 나치에 대항하여 뮌헨 대학교의 대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수가 구성한 비폭력 저항 그룹이다. 1939년부터 나치는 유럽인의 유전자 풀(gene pool)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안락사 정책을 벌이고 있었다. 평범한 의대생 한스 숄과 그의 여동생 조피 숄은 나치의 안락사 정책을 비난하는 아우구스트 폰 갈렌 주교의 설교에 크게 감동받았다. 그들은 설교 전문을 복사하여 1943년 2월 18일 목요일 뮌헨 대학 교정에 뿌렸다. 게슈타포에 체포된 백장미 단원들은 체포된 지 단 4일 만에 형식적인 재판 후 항소 절차 없이 단두대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한스는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기 전에 큰 소리로 외쳤다. “자유여 영원하라!”(Es lebe die Freiheit!)
광주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민주와 평화, 인권, 저항의 도시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에 앞장섰던 도시라는 점에서 시민들은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인구수가 광주와 거의 같은 도시인 뮌헨에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비롯하여 뮌헨 필, 뮌헨 심포니 등 유명한 오케스트라만 해도 5개가 있으며 그 밖에도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단, 바이에른 방송합창단, 바이에른 뮌헨 발레단 등 유수의 공연 단체들이 월드클래스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예술의 도시다. 따라서 뮌헨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대단하며 독일의 문화 수도는 바로 뮌헨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베를린 필보다 낫다는 식이다.
수년 전 광주시향의 악장을 비롯하여 현악기 수·차석 급 단원 12명이 뮌헨에서 요셉 바스티안(현 뮌헨 심포니 수석지휘자)의 지휘로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멤버들과 연합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와의 기량 차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이것도 인연이면 인연이라 할 수 있겠고 창단 40여 년 광주시향의 연주력(演奏歷)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공연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작년 가을 광주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배출한 도시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거기다 국내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메머드급의 복합 문화 쇼핑몰들이 차례로 생기면서 이제 실질적인 삶의 질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으니 경제력으로는 아직 뮌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독일의 문화수도 뮌헨처럼 대한민국의 문화수도는 광주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뮌헨은 독일 바이에른 주(州)의 주도(州都)이며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 세 번째 큰 도시로 인구는 약 150만명이다. 광주는 1896년부터 2005년까지 109년 동안 전남도청의 소재지였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5대 광역시 중 하나인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약 141만명이다.
뮌헨은 유럽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매년 계속되는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수년째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빅5’에 꾸준히 선정되고 있다. ‘바이에른 주’(州)는 BMW등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산업의 메카이며 ‘뮌헨’은 IT, 생명공학, 출판 등의 영역에서 독일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뮌헨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하고 있고 금융과 보험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과학과 연구의 중심도시로도 손꼽힌다. 바이에른 주립도서관(막시밀리아네움 Maximilianeum)은 60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럽 최대의 도서관이며 독일을 대표하는 종합대학인 뮌헨대학 등 고등 교육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광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8개의 시립예술단을 기반으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문화·예술의 도시’ 그리고 다양한 전통음식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맛의 도시’라 할 수 있다. 1995년에 시작된 광주비엔날레는 아트넷(Artnet)에 의해 세계 20대 비엔날레에 지속적으로 선정되고 있다. 비록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영남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되기도 했으나 현재 ‘AI’, ‘자동차’ 산업 등을 미래 중심 산업으로 선택하고 도시의 비약적 발전을 위해 집약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광주의 미래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2차 대전 기간 중 뮌헨은 1942년 6월에 결성되어 1943년 2월까지 활동했던 백장미단(白薔薇團) 결사대의 중심지였다. 백장미단은 나치에 대항하여 뮌헨 대학교의 대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수가 구성한 비폭력 저항 그룹이다. 1939년부터 나치는 유럽인의 유전자 풀(gene pool)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안락사 정책을 벌이고 있었다. 평범한 의대생 한스 숄과 그의 여동생 조피 숄은 나치의 안락사 정책을 비난하는 아우구스트 폰 갈렌 주교의 설교에 크게 감동받았다. 그들은 설교 전문을 복사하여 1943년 2월 18일 목요일 뮌헨 대학 교정에 뿌렸다. 게슈타포에 체포된 백장미 단원들은 체포된 지 단 4일 만에 형식적인 재판 후 항소 절차 없이 단두대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한스는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기 전에 큰 소리로 외쳤다. “자유여 영원하라!”(Es lebe die Freiheit!)
광주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민주와 평화, 인권, 저항의 도시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에 앞장섰던 도시라는 점에서 시민들은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인구수가 광주와 거의 같은 도시인 뮌헨에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비롯하여 뮌헨 필, 뮌헨 심포니 등 유명한 오케스트라만 해도 5개가 있으며 그 밖에도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단, 바이에른 방송합창단, 바이에른 뮌헨 발레단 등 유수의 공연 단체들이 월드클래스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예술의 도시다. 따라서 뮌헨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대단하며 독일의 문화 수도는 바로 뮌헨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베를린 필보다 낫다는 식이다.
수년 전 광주시향의 악장을 비롯하여 현악기 수·차석 급 단원 12명이 뮌헨에서 요셉 바스티안(현 뮌헨 심포니 수석지휘자)의 지휘로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멤버들과 연합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와의 기량 차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이것도 인연이면 인연이라 할 수 있겠고 창단 40여 년 광주시향의 연주력(演奏歷)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공연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작년 가을 광주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배출한 도시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거기다 국내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메머드급의 복합 문화 쇼핑몰들이 차례로 생기면서 이제 실질적인 삶의 질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으니 경제력으로는 아직 뮌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독일의 문화수도 뮌헨처럼 대한민국의 문화수도는 광주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광남일보@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