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푸른뱀의 해가 밝았다. 하지만 을사년은 우리 민족에게 가슴 아픈 해이다.

120년 전 을사년에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강제적으로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실질적 자주권이 사라지게 됐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야욕은 더욱 노골화돼 결국 우리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제3대 한국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형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쳐 한일병합조약을 통과시키고 우리 민족의 저항이 두려워 발표를 유보하다 8월 29일 조약을 공포한다.

한민족이 켜켜이 이어온 반만년의 역사를 자신들의 권력과 탐욕을 유지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소수의 위정자들이 백성의 뜻은 안중에도 없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

탐욕에 눈멀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소수의 위정자들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우리에게는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절개를 잃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그 비분을 이기지 못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신 ‘매천 황현 선생’, 금산군수로 개인의 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나라를 되찾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경술국치 당일 자결하신 홍범식 선생 등 경술국치 당시 자결·순국하신 분이 33인에 이른다.

이들은 나라를 빼앗기자 위정자들과 달리 우리 백성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 기간 동안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만주 벌판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져 갔던 이름모를 독립투사 등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영혼을 바치신 독립유공자분들이 너무나 많다.

결국 수많은 애국열사들의 피를 안고 우리는 1945년 광복을 맞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낳은 폐허 속에서도 전국민이 합심 노력해 산업 근대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또 자유경제 체제를 통해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는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모두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절개를 잃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역량을 이어받은 국민 모두의 힘 때문이다.

한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년의 수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다시 그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을사년을 시작하는 첫 달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열사가 있다. 바로 김상옥 열사다.

일본제국주의의 엄혹한 칼날 아래 나라사랑의 이정표로 귀감이 되는 의거가 있었으니 102년 전,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한민족의 염원이 담겨진 폭탄이 투척된다.

이 폭탄을 투척한 분이 바로 김상옥 열사다. 김상옥 열사는 1889년 1월 5일 서울 출생으로 집안이 가난해 고학으로 공부한 뒤, 동흥야학을 설립했다.

1912년 영덕직물점을 경영할 때는 일본제 물품을 배격하기 위해 말총모자를 만드는 등 국산품 생산에 힘을 기울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혁신단을 조직, ‘혁신공보’를 발행했으며, 한훈, 김동순 등과 암살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1920년 미국의원단이 내한한 기회를 틈타 일본인 암살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상하이로 망명한다.

열사는 의열단에 가입한 뒤 수차 국내로 잠입, 임시정부 의연금·독립자금 등을 모금해 상하이로 전달하기도 했다.

1923년 1월 12일에는 대한민국 한복판인 서울 종로에서 독립운동 탄압의 산실로 악명이 드높았던 종로경찰서에 삼천만 한민족의 염원이 담긴 폭탄을 던져 다나카 형사부장 등을 죽인다.

그 뒤 중으로 변장해 피신 중 1923년 1월 22일 일제경찰에 포위되자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였으나, 탄환이 떨어지자 일제에 의해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를 지키고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한다.

2025년 을사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한 종로경찰서에 애국의 폭탄을 던져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앞잡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을 눈꽃처럼 순결했던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정표로 삼아 나라사랑의 마음을 다진다면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