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4년 12월 3일 사상 초유의 내란 사태 이후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장을 통과했다. 시민은 일상을 멈추고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촉구의 목소리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촛불에서 광장은 더 다양한 이들로 진화했다. 응원봉을 들고 나온 청년 여성이 이번 집회의 핵심 계층으로 주목받으며 미디어에서는 MZ집회 등의 단어로 젊은 세대를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집회에 참석했었다. 그렇게 바라던 탄핵이 가결됐으나 씁쓸함이 맴돌았다.

광장이 끝난 후 응원봉을 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광장의 딜레마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탄핵정국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으나 필자는 이번 사태를 보며 87년 체제(이하 87체제)가 저물어 간다고 느꼈다. 어쩌면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온 것일 수도 있다. 87체제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다. 87년 체제는 신군부에 맞선 대중적 사회운동인 6월항쟁의 결과 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핵심으로 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부독재 종식과 대통령직선제라는 빛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정치 민주화가 곧 경제와 일터의 민주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중도와 협치의 정치는 실종되고 강력한 진영대립이 매번 강하게 작동한다. 정치 시스템을 제외한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에는 87체제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하였을지도 모른다. ‘군부독재 종결’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해 가야만 했던 시대상에서는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한 번에 설계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독재청산과 평화적 정권교체가 운동진영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며 90년대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과 외환위기 등 정치·사회·경제적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대통령 총 3명이 탄핵(소추) 당했다는 것은 통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과도한 대통령의 권한, 대통령제에 대한 검토, 내각제, 선거법 개정 등과 같은 개헌 논의가 매번 피어오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정치적 민주화가 일상과 일터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양극화와 불평등 더하여 젠더, 기후위기 문제까지 사회의 불평등은 더욱 다원화되고 있다. 우리는 87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사회체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탄핵 집회에 참석했던 한 조합원이 뒤풀이 자리에서 ‘야당 정치인 대통령 만들려고 나온 건 아닌데…. 참 그렇네요’라고 말했다. 우리 세대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나는 이 광장이 끝나고 비적비적 올라오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이 말을 통해 다시 생각했다.

광장 이후의 씁쓸함이란 이런 것이다. 단일한 대오 아래 ‘윤석열을 탄핵하라’란 구호로 우리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으나 그것이 우리 일상의 민주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임을, 우리는 박근혜 촛불을 통해 경험 한 적이 있다. 광장의 촛불이 일상의 민주주의로 연결돼야 그것이 진짜 승리다. 2017년 탄핵 촛불 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지도자 한 명을 끌어내리는 그것만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마치 광장의 젊은이들에게 환호하고, 우리를 칭송하지만, 광장의 응원부대 이상의 수식어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22대 국회에서 청년으로 분류되는 40세 미만 의원은 4.7%로 OECD 평균인 18.8%에 한참 밑돌며 국회의원 평균 연령 56.3세다. 지난 21대 국회에 비해 0.8세 높아졌다. 선거 때마다 청년을 찾고 청년 유권자 민심잡기에 앞장서지만 정작 청년세대의 정치적 존재감만큼이나 권리주체로서의 청년의 입지는 아직 요원하다.

이는 비단 청년뿐 아니라 이 사회가 배제해 온 다양한 이들의 삶을 광장에 모인 하나의 과제로 퉁 쳐서는 안 된다.

윤석열 탄핵 이후의 세계는 어때야 하는가. 부의 양극화와 정치의 양극화, 일을 해도 가난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승자 독식과 기득권 독점사회. 이렇듯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들은 이렇게나 많다.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윤석열은 내란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출석에 불응하고 있다.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혐오와 대립만 남아버린 정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빼앗아 왔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경험했다. 지금 이 승리가 그저 정치적 승리로 끝나지 않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사회변화와 탄핵 정국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배제해 왔던 목소리들과 함께 구조적인 불평등과 총체적인 무책임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