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1월 말이 되면 사람들의 옷은 두꺼워지고, 지갑은 얇아진다.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열리는 블랙프라이데이(Black-Friday) 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오래 전 미국에서 시작돼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최대 규모의 쇼핑 행사인 만큼 큰 폭의 할인을 받을 수 있기에 사람은 이 시기 꽉 차 있던 찜 목록과 장바구니를 비워내곤 한다.

하지만 사실 블랙프라이데이는 잘 벼려진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높은 할인율이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를 돕기도 하지만, 동시에 충동 구매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보이는 ‘지금 안사면 가격 올라가요’나 ‘1년 중 최대 할인’과 같은 조바심을 자극하는 광고들은 소비자에게 ‘사는 게 이득’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착각에서 비롯된 충동구매는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충동구매로 인한 과소비는 단순히 소비자의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경 오염의 강력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수많은 주문 내역은 곧 공장으로 전달돼 대량 생산으로 이어진다. 이 대량 생산이 자원 고갈과 탄소배출, 폐기물 증가 등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블랙프라이데이와 환경 오염의 관계를 구체적 수치를 통해 알아보자.

가격 비교 웹 사이트 머니 닷 유케이(Money.co.uk)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배송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약 42만9000t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영리 환경기구인 BAN(Basel Action Network)은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버려진 전자 폐기물량이 연간 5000만t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결국 블랙프라이데이는 지금 당장의 소비자에게는 최고의 행사일지 몰라도, 그 외 모든 생물과 미래 세대에게는 최악의 금요일이 될 수 있다. 대량 생산 체계에서 블랙프라이데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환경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길어진 여름과 때아닌 폭설같은 이상 기후를 통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근거를 제시해 보면 올해 지구 기온은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한 해로 기록될 예정이며,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기온 상승 폭은 1.55도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극한의 상황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블랙프라이데이가 지구를 얼마나 더 뜨겁게 할지,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 ‘그럼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좋은 기회를 눈 앞에 두고 아무것도 사지 말라는 말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네, 그럼요’이다.

여기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BND)’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날은 말 그대로 소비를 멈추는 하루를 의미한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블랙프라이데이의 시작일과 같은 추수감사절의 다음날로, 현대인의 과도한 소비 습관과 소비지상주의가 초래하는 위험성과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시작된 캠페인이다. 현재 65개국 이상이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날이 되면 신용카드 자르기나 빈 카트를 좀비처럼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쉬운 참여방법은 역시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그저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대 사회에 ‘이제는 합리적 소비보다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할 때’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조바심과 소비욕구를 조금만 참고 견뎌보면 블랙프라이데이가 가지는 허상은 금방 깨진다. 블랙프라이데이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고 해서 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지구에게 필요한 일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큰 발걸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음으로는 블랙프라이데이보다 훨씬 합리적인데다가 지속 가능하기까지 한 구매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중고 거래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중고 제품을 구매해 보자. 운이 좋으면 블랙프라이데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그 방법으로는 중고거래 앱 사용이나 굿윌스토어와 같은 중고 거래 매장 이용이 있는데, 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물건을 찾는 재미가 쏠쏠해 많은 이들이 이미 이용 중에 있다. 중고 거래를 통해 지갑도 지키고 자원 순환을 실천하는 의미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블랙프라이데이는 앞으로도 돌아올 것이고, 소비지상주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경제는 2선으로 물러나고, 환경이 세상을 움직여야 할 때다. 부디 내년의 추수감사절 다음 날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그로써 지속가능한 금요일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