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1년 5월 어느 날로 기억한다. 5·18 민주화 운동이 지나고 1년 후, 효동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었던 필자가 교무실에 갔더니 동신중학교 시절 내게 국어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사모님과 함께 와 계셨다. 제자임을 밝히고 방문한 목적을 물었더니 딸과 아들을 서울로 전학시키려고 오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도 ‘교직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작가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이 선생님이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부친이신 한승원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절대로 매를 때리지 않으셨고, 화가 나시면 제자들에게 ‘호랑말코 같은 놈’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호랑말코란 법도 지키지 않고 멋대로 노는 오랑캐 호족(胡族)들의 남자(사내 랑 郞)들이 타고 다니는 큰 말의 코란 뜻으로 코가 대단히 세어서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노는 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사회규범, 윤리, 법도, 예절 등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욕할 때 쓰이는 말이다. 지난 12월 3일 밤에 발표된 비상계엄을 점잖게 표현한다면 호랑말코 같은 비상계엄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24년 10월 10일 밤 가짜 뉴스 같았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필자는 스승이셨던 한승원 선생님과 옆 반 학생이었던 한강 작가를 떠올리면서 몇 시간 동안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호랑말코 같은 12·3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나니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발표한 수상 이유가 떠올랐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을 남긴 한국 작가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 ‘소년이 온다’로 광주의 학살 현장을 고발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지 채 두 달도 안돼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그 잔인했던 비상계엄이 또 발표되다니 밤새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TV를 시청했던 기억은 나를 비롯한 온 국민들의 뇌리에 오래 남고 역사에 크게 기록될 것이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한다”고 말했는데 1980년 광주는 2024년 서울을, 대한민국을 돕고 광주의 죽은 자들은 2024년 서울의, 대한민국의 산 자를 구원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1980년 필자가 목격했던 광주의 피, 그들이 피를 흘리며 만들어낸 희생이 2024년 여의도 광장을 열고, 시민들이 폭력 없이도 나라의 주인이 주인으로서 의지를 관철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 고귀한 희생이 폭력을 쓰지 않고도 내란 세력을 무찌를 수 있는 여의도 광장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죽은 자들이 산자를 구원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제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계엄을 통해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호랑말코 같다. 필자는 현재 광주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여러 차례 선거현장에서 경험한 바 있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K-선거시스템은 매우 선진화돼 있는 시스템이다. 개표 현장에는 각 당의 참관인이 보고 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지난번에 낙선한 분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현 전산시스템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분이 이 같은 시스템을 부정하면서 계엄을 선포했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호랑말코 같은 비상계엄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 교수는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이롭다”고 말했다. K-pop, K-culture, K-economics, K-democracy를 전 세계에 뽐내던 우리나라의 명성이 12·3 비상계엄으로 무너진다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대통령을 탄핵한 여의도 혁명과 같은 민주주의 의식은 한국 경제의 초석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