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지정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기한(10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인해 협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을 잃어버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퇴진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내년 예산안에 대한 여야의 원만한 협상을 기대하긴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9일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예산을 추가 삭감하는 방안까지 논의하며 대여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지만 국민의힘은 추경호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한 데다 야당의 탄핵안 추진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예산안 추가 삭감 철회 얘기가 있었다”며 “열린 논의를 진행 중이고 오늘까지 협상할 예정”이라고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밝혔다.

이어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이미 의결된 예산결산특별위 감액안을 오는 10일 본회의에 올리자는 의견도 있고 정부안을 받자는 의견도 있다. 증액안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황 대변인은 “내일 예산안 통과를 목표로 여러 안을 검토하겠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해서 협상이 원활히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8일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내란 사태 책임을 묻겠다”며 대통령실 사업비, 전직 대통령 경호 관련 예산 등 추가 감액 소요를 발굴해 7000억 원을 추가 삭감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내년도 감액 예산안에서 대통령실과 연관된 예산 7000억 원을 추가로 삭감해 총 4조 8000억 원을 감액하는 안까지 대안 중의 하나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지난달 10일 677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4조 1000억 원을 삭감한 감액 예산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는데, 여기에 더해 추가 삭감 방침을 논의한 것이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결위를 통과한 안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 삭감은 안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는 국민을 상대로 한 협박”이라고 비판하면서 원내지도부가 사라져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감액 예산안을 그대로 확정하는 것을 ‘협박수단’으로 쓴다는 건, 민주당이 감액한 예산안이 잘못이라고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지난 7일 정족수 미달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폐기된 직후 밝힌 사퇴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추 원내대표 사의 표명 이후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 구성원 전원도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당내에서는 예산안 협상은 물론 각종 탄핵안과 특검법안에 대해 당의 입장을 정할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새 원내지도부 선출 여부를 놓고 계파 간 입장이 엇갈리면서 공백 상태가 길어질 전망이 우세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를 찾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지난 8일 제안한 ‘대통령 직무 정지를 위한 여야 회담’을 통해 예산안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대외신인도 유지와 경제안정을 위해 여야 합의에 의한 예산안의 조속한 확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장께서 여야협상의 물꼬를 큰 리더십으로 터 달라고 요청 드렸다”고 면담 후 기자들에게 밝혔다.

우 의장은 이에 대해 “비상계엄 사태가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려는 기도였었고 결국 그로 인해 국회에서의 예산안 논의가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며 “그런데도 예산안 처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이 마치 국회의 책임인 것처럼 기재부가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강하게 질책했다고 박태서 국회공보수석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