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불며 보릿고개 넘기고, 보리타작과 모내기하느라 6월은 바쁘다. 시간은 아이러니하지만, 기가 막히게 똑똑하게 만들어졌다. 하지(夏至)를 여름 나기 잣대로 삼았다. 이때를 기준으로 옛 사람은 세 번에 걸친 복날을 만들어내고, 삼복(三伏) 더위를 이겨냈다. 소싯적 우리는 그 여름철 마루에 걸터앉아 집시랑 빗물을 바라보며 뜨거운 하지 감자를 호호 불며 소금에 찍어 껍질 벗겨가며 먹었다.

매년 양력 6월 21일이 하지(夏至)가 된다. 동지(冬至)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다. 6월 22일인 경우가 있다. 언뜻 한자 풀이로만 보면 하지 때가 극도의 더운 여름 날씨이어야 맞다. ‘극(極)에 이른다’라는 뜻의 한자 ‘지극(至極)’에서 ‘至’는 ‘끝판왕’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흔히 하지는 가장 더울 때로 일컫는다. 1년 중 이날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 반면에 밤의 길이는 가장 짧다. 그래서인지 하지 때가 여름 날씨 중 제일 더운 때로 알고 있다. 착각이다.

24절기가 만들어진 지역적 배경은 중국 화북 지방이다. 이 태양력의 달력은 넓은 중국을 포함해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역에 공유됐다. 쉽게 말해 각각의 지역에서 절기에 해당하는 기온이 반드시 서로 같다고 볼 수 없다. 계절상 완연한 봄인 양력 5월 초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立夏)’가 있다고 해서, 이때부터 여름인 것은 아니다. 하지 때가 여름 날씨의 끝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가장 더울 때가 아니라, 하지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는 여름 더위를 나누는 기준점이다. 하지 이전의 나무 그늘은 바람 불어 시원하다. 그러나 하지가 지나면 더위를 피해 쉴 그림자조차 점점 허덕인다. 여름철 건강주의 경보등인 셈이다. 먼 옛날 하지 때 태양의 가장 짧은 그림자를 찾기 위해 큰 작대기를 설치했다. 이것을 규표(圭表)라고 한다. 거의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이 도구를 노몬(gnomon)이라고 했다. 하지 점을 찾기 위한 오래전 그림 하나가 남아 있다. 지금의 웹툰 만화같이 재밌게 그려져 있다. 흠정서경도설(欽定書經圖說)의 그림에는 고대의 동서남북의 천문을 관장한 전설상의 희숙(羲叔) 형제가 규표를 설치해 하지 점을 찾고 있다.

하지가 지나면 곧바로 장마 준비에 바쁘다. 한반도 하늘 위에서 거대한 온도 차이로 인해 장마전선이 형성된다. 여름철 무슨 온도 차이겠냐 하겠지만, 겨울철의 시베리아 대륙은 따뜻한 철을 맞아 눈이 녹는다. 이 눈은 오호츠크 바다로 흘러들어와 바닷물 온도를 낮춰 차가운 고기압을 만든다. 이와 동시에 하와이 부근에 있었던 겨울철 북태평양 고기압은 여름이 되면서 서쪽으로 그 세력을 펼친다. 마침 한반도 상공에서 두 지역에서 만들어낸 고기압이 서로 부딪혀 전선을 이룬다. 이로 인해 비를 뿌린다. 장마비는 두 지역 간 세력 다툼으로 생긴 혈투의 흔적이다.

복날의 삼복(三伏) 중 초복과 중복은 하지를 기준으로 정한다. 여름의 뜨거운 기운(火)으로 금(金)을 녹이는 시절을 택해 복날로 삼았다. 천간과 지지 오행을 따지면, 천간의 경(庚) 글자가 오행 금(金)이다. 하지를 지나 세 번째 경일이 초복이고, 하지 지나 네 번째 경일은 중복이다. 무더위 허약해진 때에 복날을 정해 음식으로 보양했다. 복날 보양 고기 음식은 이렇게 전략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열치열의 이념은 복날 음식뿐만 아니다. 냉면과 칼국수가 있다. 얼음이 귀했던 시절에 시원한 냉면은 정작 여름철에 만들어 먹지 못했다. 20세기 들어와 여름철 얼음의 출현과 보관이 수월했을 때가 돼서야 여름냉면을 맛볼 수 있었다. 애초 냉면은 한반도 북쪽 추운 겨울철 음식이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대표적이다. 따끈따끈한 지금의 온모일 국수나 칼국수도 처음엔 여름철 음식이었다. 이열치열이다.

보릿고개를 이겨내기 위한 구황작물 중 하나가 감자였다. 하지쯤에 수확한다고 해서 하지 감자이다. 고구마와 함께 일반 사람들에게는 감저(甘藷)로 통칭해 불렸다. 나중에서야 감자가 됐다. 지금의 감자는 조선후기 19세기 중국에서 유입됐다고 북감자라고 했고, 둥글다고 알감자라고도 했다. 이에 반해 고구마는 18세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수확시기도 감자보다 늦은 가을철이며, 감자보다 달다고 해서 단감자라고 했다. 고구마의 어원도 일본말인 고귀위마(古貴爲麻)로 알려져 있다. 아마 마(麻)의 일종으로 알았을 것이다.

6월은 수국의 시절이다. 작은 꽃이 모여모여 군락을 이루며 이렇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지금의 수국은 거의 개량종이다. 옛날 우리 조상이 좋아했던 관상꽃이기도 하다. 옛 자료에는 자양화(紫陽花)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을 보면 자주색 한 종류였나 보다.

6월 여기저기 우리 주위 호숫가나 물웅덩이에는 이쁜 창포가 자라서 꽃을 피운다. 창포물에 머리 감던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