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부장님, 이것은 하지 않도록 규정에 못 박혀 있는데요’, ‘규정을 비켜 가는 방법을 찾든지, 규정을 바꿔야지, 뭔 잔말이 많아?’, <까라면 까>라는 지시가 내려올 때 아득하다. ‘회사에서 나가면 할 일 있어? 식구도 먹여 살려야 할 거 아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원칙 앞에 흔들린다.

‘그렇게만 해놓으면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 게’, 책임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부정에 눈감는다. 좋아할 부장님이 아른거리고,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기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법이나 규정이 있으나 마나하는 얼참(순간)이 된다.

‘저쪽에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선물을 주고 돈도 주면 달라질 거야, 잘 구슬려 봐’, <시킨 대로 해>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 까마득하다. ‘이 일만 잘 처리하면 승진할 거야, 언제까지 과장만 달고 있을래?’, 출세를 앞세우는 설득에 나도 모르게 들뜨면서 총칼(권력) 앞에 무너진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 나쁜 일을 좋게 둘러댄 말인 줄 알면서도 나쁜 일에 앞장선다. 술자리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를 침 튀기면서 말했지만, 자신이 한 짓은 돌아보지 못한다. 떼어놓은 당상(승진)에 옳음이 무뎌진다.

‘사람들이 반대만 일삼고, 관심도 별로 없습니다’, ‘이름 짜한 사람(유명인)을 불러! 교수랑 변호사랑 의사랑 연예인을 끼워 넣어야지’, <꼼수 팔이>로 바람을 일으키라고 할 때 씁쓸하다. 언론을 보면서 4대강 사업이 옳지 않다고 외쳤지만, 자신이 꼼수 생산자임은 알지 못한다. 노른자위를 지키는 일이 먼저니까.

사실, 우리 일터에서 이런 일 잦다. ‘눈 먼 돈’이라면서 먼저 챙기려고 눈을 부라리고, 공짜를 얻으려고 속셈을 부린다. 어차피 월급은 나오니까 일은 떠넘기고 공은 가로채려고 알랑방귀(아부)를 뀐다. 먹히니까.

왜 먹힐까? 잘못을 해도 스리슬쩍 넘어가거나 벌이 가벼워서는 아닐까, 갑자기 큰 부자들의 탈세가 떠오른다. 권력자 자녀의 음주운전, 유명인의 불법도박 같은 일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끔찍한 친일 행적을 했거나 독재 부역을 모질게 했어도 벌을 받지 않고 잘 살뿐 아니라 그 힘(돈, 권력, 명예)을 물려줄 수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느꼈던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옳지 않은 일(불법, 부당)을 많이 만난다. 그때는 아직 원칙과 상식이 내 마음을 휘감고 있으니까. 사회를 웬만큼 겪으면서 ‘이래도 되나?’ 하는 야릇한 느낌들이 생기지만 그냥 지나친다. 출세, 곧 돈과 권력을 쥐어야 하니까. 작은 권력이라도 잡으면 ‘이럴 수 있어’ 하면서 염치는 팽개치고, 밑절미(원칙)는 무찌른다. 자리를 지키고 물려줘야 하니까.

잘못을 알아도 ‘나도 한때’ 정의(正義)를 좇던 추억(지닐총)만 되새김질한다. 출세 앞에 눈을 감고, 돈 앞에 굽신거리며, 총칼(권력) 앞에 조아린다. 잘못인 줄 알기나 하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리고 어느덧 잘못은 몸에 익고, 몸에 배인 잘못은 잘못인 줄 모르고, 오히려 옳지 않은 일을 가르치려 든다.

누구나 완장을 차고 있다. 막무가내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슬기롭게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슬기롭게 드러나는 사람이 목대잡이(리더)일 때 우리는 웃음과 꿈을 안고 산다. 적어도 염치는 갖고 살자는 이야기다. 나 또한 얌통머리 없이 나대지는 않는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