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기록에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역사 속에 잠들었던 그를 오늘로 끌어내고 전라도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순신은 아주 미화되고 또한 영웅시되고 나아가 우상화, 신격화의 위상으로까지 급진전 됐다. 이러한 광풍(?)으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남해안의 조그마한 배였던 거북선이 마치 오늘날 이지스함 격으로 미화되고 철갑선에다 잠수함으로까지 비약되는 신화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있었다. 이순신이 있었고 전라도가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순신만 신화적인 존재가 되고 그 기반이 됐던 전라도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까. 물론, 이순신은 전라도 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신화적인 업적을 이룬 바탕에는 전라도가 있었고, 장보고와 견훤 이래 전라도를 이용, 최대의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 때문에 전라도가 없었으면 이순신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이순신이 신적인 해군제독으로 된 것은 불과 7년 동안의 일이다. 육군으로서 전라도 정읍현감(종6품)을 하고 있던 이순신을 유성룡의 추천에 따라 진도군수로 명령해 종5품으로 승차시킨 후, 1591년 가리포첨사로 명령하면서 종3품(당상관)으로 승격시키고 현재의 완도 가리포진 첨사로 부임하는 것을 생략하고 전라좌수사로 명령하고 전라좌수영(여수)으로 부임한다.

이것이 육군이었던 이순신이 해군제독이 되기 위한 첫 절차였다.

불과 1년도 안되는 기간에 평범한 정읍현감이 수군을 통솔하는 제독이 되는 절차였다.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 1598년 음력 11월까지 해군제독으로서 복무한 7년이 이순신이 가진 해군경력의 전부였다.

지난 9월 10일 완도 가리포객사에서 열린 가리포수군 및 조명연합군 추념 봉도식에서 명나라 진린 장군과 이순신장군을 기리는 제사가 진행됐다.

이순신은 전라도에서 시작해 전라도 고금도 월송대에 묻힐 때까지 7년 동안 바다를 주름잡고 뱃길과 물길을 알아 고도의 전략을 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바닷가 해안에서 배를 끼고 놀아도 부족할 판에 나이 46세에 본격적으로 바다를 접하고 배를 접한다. 그리고 1년 2개월 후인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휘하 수병들을 이끌고 나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말은 아무리 확대해석을 하고 이순신의 전략전술을 높이 산다고 해도 이순신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순신 혼자만으로는 절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것도 신무기인 조총을 앞세운 왜구의 막강한 화력을 이순신 혼자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순식간에 전 국토가 왜구의 무력 앞에 초토화된 것을 봐도 자명한 사실이지 않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를 잘 만들고(배무이), 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고, 물길과 뱃길을 잘 아는 전라도의 뱃사람들이 있었고, 배를 만들 황장목과 각종 무기를 만들 자재와 군량미를 보급할 수 있는 기름진 호남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진린 장군을 기리는 학술회의가 지난 9월 10일 완도에서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역사적 필연으로 귀결되는 전라도만이 가지는 역사성이 기인한 것이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된 것이 전라도였다.

전라도의 인적자원, 곧 전라도 사람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의 측면이다.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제국을 만들 때도 전라도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성공한 것으로, 1200년 전 한·중·일을 아우르는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제국을 형성해 신라 경주를 100만명이 사는 도시로 만들 만큼 한반도 최대의 번영기를 구가했다.

또한 이순신도 거북선을 만들고 병선을 만들 때 전라도의 뱃사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 곳곳에 수군진을 설치해 전쟁을 준비했으며, 나아가 선조(宣祖) 임금도 전라도 완도를 구국의 땅이라고 완도인들의 공로를 생각해 완도 고금도에서 과거(科擧)를 실시할 것을 논의했다는 기록까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전라도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이 없었으면 거북선도 없었고 왜란의 승리도 없었으며 이순신을 우리 역사 나아가 세계사의 위대한 해상의 주인으로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진린 장군을 기리는 학술회의가 지난 9월 10일 완도에서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라는 해전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바로 이순신의 개인적인 능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능력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순신도 난중일기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다. 바다를 많이 모르는 이순신을 위해 바다를 잘 알고 바다에 익숙한 전라도 사람들이 이순신을 위해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조총과 활의 차이와 같다. 조총은 간단한 훈련만 거치면 누구라도 전력으로 전쟁에 나가 힘을 보탤 수 있지만, 활은 상당한 훈련과 숙련의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수군도 마찬가지다. 병사만 충원한다고 전력이 증강되지는 않는다. 이를 이순신은 잘 간파한 것이다.

전라좌수영의 배들이 나아가 경상도 통영과 거제 앞바다, 남해바다에서 싸웠다. 경상도 앞바다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뱃사람들과 왜구와의 전쟁터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후퇴해 전라도로 돌아왔고 또한 대규모 왜구의 전술에 밀려 전라우수영으로 그리고 조명연합사령부인 완도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진가가 가감없이 드러난 명량대첩이 벌어진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 사진은 진도쪽에서 바라본 명량의 모습.

이순신을 기리고 추앙하자는 의미를 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고 과장해 우상화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에 있었던 과거가 어찌 사실대로만 그대로 전달될 것인가. 설사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전부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왜곡해서는 안된다.

7년 동안의 왜란이 끝나고 이순신이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이순신과 같이 싸운 명나라 장수 진린을 거론하고,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 대학 강연에서 “한국의 완도군에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한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진린 장군을 함께 기리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지금 진린 장군 후손들 2000여명이 살고 있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임진왜란의 주역이었던 전라도 사람들은 사라지고 전라도 뱃사람들이 나가 싸웠던 전쟁터의 사람들이 나서서 주역이라고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면서 당파싸움의 피해자로 이순신을 만들어 친일부역한 이광수로부터 시작해 5·16군사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광적인 이순신 영웅만들기에 힘입어 ‘약무호남시무국가’는 사라지고 있다.

1598년 한반도를 유린한 왜구들을 노량에서 무찌르다가 안타깝게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완도 고금도 월송대에 83일 동안 가매장 했다가 이듬해 2월 11일 충남 아산으로 운구했다.

이순신이 전라도에서 힘을 얻어 엄청난 전과를 올린 공덕을 전라도민에게 돌리는 말인 ‘약무호남시무국가’가 새겨져 있다. 이는 전라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명문으로 해남 우수영 울돌목 명량대첩지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