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이야기] 화제의 인물 박장용 에티오피아 축구 감독
입력 : 2016. 09. 04(일) 16:53

축구 불모지 아프리카서 ‘제2의 동티모르 기적’ 일군다
지난해 10월부터 축구 불모지서 팀 맡아 축구교실 운영 구슬땀
관련사업 펼쳐 韓·유럽 등 프로 산하 유소년팀 입단 연계 계획
광주 머물며 축구화 등 용품 협찬 착수…‘법인 결성’ 작업 박차
‘헬조선’이자 무한경쟁과 적자생존만이 난무하는 현시대는 청년들의 무덤인 시대다. 청년층이 갈데가 없다. 버젓이 대학을 나오고 다양한 스펙을 쌓았어도 오라는 데가 없다. 그래서 아픈 청년들이 넘치는 요즘이다. 꿈, 어쩌면 사치스러운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과감하게 일상을 접고 꿈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 그곳에서 유소년 축구 부흥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젊은이가 있다.
마치 동티모르 한국인 히딩크 감동실화로 큰 여운을 남겼던 영화 ‘맨발의 꿈’(2010)과 오버랩 (overlap)되는 착각에 빠진다. 오랜 독립전쟁 끝에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동티모르가 리베리노컵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우승을 이끈 감독은 바로 한국인 김신환이었다. 제2의 김신환처럼 축구 불모지에 축구의 혼을 심고 있는 전남 순천 출신 청년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북부 에티오피아(Ethiopia)에서 유소년 축구팀 ‘꼬레아’ 감독이자 코치를 맡고 있는 전남 순천 출생 박장용씨(31·광주시 남구 봉선2동)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가 아프리카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1살 때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1년 동안 가나에 다녀온 것이 인연이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주위 아는 형의 소개로 4∼5년전 결성된 현지의 유소년팀 축구지도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고심 끝에 결정,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번째 아프리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 2015년 10월 에티오피아에 들어가 꼬레아팀의 현황을 먼저 파악했다. 꼬레아팀은 17세 이하, 15세 이하, 13세 이하 등 3개의 연령층으로 나눠 축구교실이 운영 중이다.
가서 본 현실은 말이 아니었다. 변변한 축구화도, 공도, 유니폼도 풍족하지 못했다. 운동장도 별도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학교 운동장을 빌려 쓰고 있었다. 그나마 평일에는 수업이 있어 쓰질 못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3시간씩만 빌려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축구화도 그 나라에서 고무로 만든 축구화를 신고 뛰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도 안되면 맨발로 공을 찰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더욱이 그곳의 아이들이 가난과 싸우는 등 생계를 꾸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 막상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애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점은 김 감독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일을 해야 하는 등 축구에 전념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처럼 기반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로까지 나가 축구 지도자일을 하는데는 어린 시절 꿈 때문이다. 그는 원래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학창시절 축구부에 들어가려 시도했으나 빈 정원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일반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늘 마음 속에만 담아가지고 다니던 축구의 꿈을 아프리카에서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박 감독은 꿈을 위해 모든 일상의 것들을 내려놓았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간 것이 무슨 비전 있냐, 돈 되냐”며 그의 아프리카행을 말리기도 했다.
박 감독은 후회가 없다는 전언이다. 축구 선수를 하고 싶었으나 못했기 때문이다. 소신을 갖고 지금의 길을 계속 달려가려는 이유다.
그가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곳은 월라이타소도(한국의 군郡 지역과 같은 곳)다. 축구교실은 쇼네이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 두곳에서 유소년 축구교실이 박 감독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짧은 지도에도 불구하고 꼬레아팀은 월라이타소도에서 10개팀이 참여해 열린 축구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서서히 박 감독의 지도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닌 박 감독은 대학축구선수 출신인 아는 형님으로부터 기본기를 배워 그곳의 유소년들을 가르친다. 부족한 부분은 그때 그때 공부하고 연구하며 해결해 나간다.
에티오피아는 국가대표나 프로축구팀은 있으나 대학팀은 물론이고 유소년팀이 없을 정도로 축구환경이 척박하다.
또 지도해줄만한 인력도 부재하다시피 하다. 환경만 갖춰진다면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에티오피아다. 인구가 1억이 넘기 때문에 축구인재들을 얼마든지 발굴할 수 있다는 게 박감독의 시각이다.
월라이타소도의 시장이 운동장을 할 수 있는 땅을 주겠다고 제안까지 했지만 운동장을 만들 비용이 없어 반납할 수 밖에 없는 사연도 그에게는 안타까움이었다.
박 감독은 아직 18살이 가장 큰 애들이니까 국가대표나 프로팀으로 간 친구는 없지만 메시나 호날두처럼 유명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은 많다고 말한다.
박 감독 밑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축구는 삶의 꿈을 심어주는 한편, 의욕을 불어넣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매개로 작용한다. 희망의 증거가 축구인 셈이다.
“힘들고 어려운 때가 많지만 저는 아프리카 전지역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유소년팀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유소년축구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여전히 아프리카에는 꿈도, 장래희망도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축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실제 애들도 축구를 해보려는 의욕이 넘치구요.”
박 감독은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한국이든, 유럽이든 프로축구단에 모든 유소년팀이 있는 만큼 꼬레아 축구팀 아이들을 연결할 구상이다.
“그곳의 한 도시당 300명씩 10개 도시 유소년팀을 만들어 총 3000명 중 각각 30명씩을 뽑아 유소년 국제대회 출전을 시켜볼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실력있고 재능있는 아이들이 유소년팀에 입단하고, 선수로 진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이처럼 박 감독이 봉사자로서의 원대한 꿈을 꾸게 된 첫 단추는 가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나에 머물던 시절 말라리아에 감염됐지만 그곳 현지인의 도움으로 완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현지인은 먹을 것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자기 아이들을 줄 식량을 기꺼이 박 감독에 내줘 빨리 완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본 뒤 현실적 삶을 접고 오늘날의 이 길을 택할 수 있었다. 대개 현지인들은 1일2식을 하고, 축구팀 부원들 역시 빈민가 출신들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식량을 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직감할 수 있다.
축구 외적으로 박 감독을 어렵게 한 것은 언어다. 에티오피아는 영어와 암하릭어를 섞어 의사를 표현한다고.
또 박 감독은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으나 많이 적응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박 감독은 지난 6월19일 집이 있는 광주에 왔다. 7월과 8월 축구 용품을 협찬받는 일에서부터 그곳의 아이들이 용품 걱정하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동시에 축구봉사자도 키워낼 수 있는 근거가 될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결성을 위해서다. 그는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런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박 감독이 이번 광주 방문에서 법인을 결성하는 동시에 조기축구회 등을 돌며 헌 축구화나 공, 유니폼 등 축구용품들을 넉넉하게 확보해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박 감독은 8월15일에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간다. 한국에 잠깐 있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은 축구단 일원인 귀염둥이 아만(17)과 날쌘돌이 존(17)곁으로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축구 불모지서 팀 맡아 축구교실 운영 구슬땀
관련사업 펼쳐 韓·유럽 등 프로 산하 유소년팀 입단 연계 계획
광주 머물며 축구화 등 용품 협찬 착수…‘법인 결성’ 작업 박차
‘헬조선’이자 무한경쟁과 적자생존만이 난무하는 현시대는 청년들의 무덤인 시대다. 청년층이 갈데가 없다. 버젓이 대학을 나오고 다양한 스펙을 쌓았어도 오라는 데가 없다. 그래서 아픈 청년들이 넘치는 요즘이다. 꿈, 어쩌면 사치스러운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과감하게 일상을 접고 꿈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 그곳에서 유소년 축구 부흥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젊은이가 있다.
마치 동티모르 한국인 히딩크 감동실화로 큰 여운을 남겼던 영화 ‘맨발의 꿈’(2010)과 오버랩 (overlap)되는 착각에 빠진다. 오랜 독립전쟁 끝에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동티모르가 리베리노컵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우승을 이끈 감독은 바로 한국인 김신환이었다. 제2의 김신환처럼 축구 불모지에 축구의 혼을 심고 있는 전남 순천 출신 청년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북부 에티오피아(Ethiopia)에서 유소년 축구팀 ‘꼬레아’ 감독이자 코치를 맡고 있는 전남 순천 출생 박장용씨(31·광주시 남구 봉선2동)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가 아프리카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1살 때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1년 동안 가나에 다녀온 것이 인연이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주위 아는 형의 소개로 4∼5년전 결성된 현지의 유소년팀 축구지도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고심 끝에 결정,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번째 아프리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 2015년 10월 에티오피아에 들어가 꼬레아팀의 현황을 먼저 파악했다. 꼬레아팀은 17세 이하, 15세 이하, 13세 이하 등 3개의 연령층으로 나눠 축구교실이 운영 중이다.
가서 본 현실은 말이 아니었다. 변변한 축구화도, 공도, 유니폼도 풍족하지 못했다. 운동장도 별도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학교 운동장을 빌려 쓰고 있었다. 그나마 평일에는 수업이 있어 쓰질 못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3시간씩만 빌려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축구화도 그 나라에서 고무로 만든 축구화를 신고 뛰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도 안되면 맨발로 공을 찰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더욱이 그곳의 아이들이 가난과 싸우는 등 생계를 꾸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 막상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애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점은 김 감독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일을 해야 하는 등 축구에 전념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처럼 기반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로까지 나가 축구 지도자일을 하는데는 어린 시절 꿈 때문이다. 그는 원래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학창시절 축구부에 들어가려 시도했으나 빈 정원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일반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늘 마음 속에만 담아가지고 다니던 축구의 꿈을 아프리카에서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박 감독은 꿈을 위해 모든 일상의 것들을 내려놓았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간 것이 무슨 비전 있냐, 돈 되냐”며 그의 아프리카행을 말리기도 했다.
박 감독은 후회가 없다는 전언이다. 축구 선수를 하고 싶었으나 못했기 때문이다. 소신을 갖고 지금의 길을 계속 달려가려는 이유다.
그가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곳은 월라이타소도(한국의 군郡 지역과 같은 곳)다. 축구교실은 쇼네이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 두곳에서 유소년 축구교실이 박 감독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짧은 지도에도 불구하고 꼬레아팀은 월라이타소도에서 10개팀이 참여해 열린 축구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서서히 박 감독의 지도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닌 박 감독은 대학축구선수 출신인 아는 형님으로부터 기본기를 배워 그곳의 유소년들을 가르친다. 부족한 부분은 그때 그때 공부하고 연구하며 해결해 나간다.
에티오피아는 국가대표나 프로축구팀은 있으나 대학팀은 물론이고 유소년팀이 없을 정도로 축구환경이 척박하다.
또 지도해줄만한 인력도 부재하다시피 하다. 환경만 갖춰진다면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에티오피아다. 인구가 1억이 넘기 때문에 축구인재들을 얼마든지 발굴할 수 있다는 게 박감독의 시각이다.
월라이타소도의 시장이 운동장을 할 수 있는 땅을 주겠다고 제안까지 했지만 운동장을 만들 비용이 없어 반납할 수 밖에 없는 사연도 그에게는 안타까움이었다.
박 감독은 아직 18살이 가장 큰 애들이니까 국가대표나 프로팀으로 간 친구는 없지만 메시나 호날두처럼 유명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은 많다고 말한다.
박 감독 밑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축구는 삶의 꿈을 심어주는 한편, 의욕을 불어넣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매개로 작용한다. 희망의 증거가 축구인 셈이다.
“힘들고 어려운 때가 많지만 저는 아프리카 전지역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유소년팀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유소년축구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여전히 아프리카에는 꿈도, 장래희망도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축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실제 애들도 축구를 해보려는 의욕이 넘치구요.”
박 감독은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한국이든, 유럽이든 프로축구단에 모든 유소년팀이 있는 만큼 꼬레아 축구팀 아이들을 연결할 구상이다.
“그곳의 한 도시당 300명씩 10개 도시 유소년팀을 만들어 총 3000명 중 각각 30명씩을 뽑아 유소년 국제대회 출전을 시켜볼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실력있고 재능있는 아이들이 유소년팀에 입단하고, 선수로 진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이처럼 박 감독이 봉사자로서의 원대한 꿈을 꾸게 된 첫 단추는 가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나에 머물던 시절 말라리아에 감염됐지만 그곳 현지인의 도움으로 완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현지인은 먹을 것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자기 아이들을 줄 식량을 기꺼이 박 감독에 내줘 빨리 완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본 뒤 현실적 삶을 접고 오늘날의 이 길을 택할 수 있었다. 대개 현지인들은 1일2식을 하고, 축구팀 부원들 역시 빈민가 출신들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식량을 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직감할 수 있다.
축구 외적으로 박 감독을 어렵게 한 것은 언어다. 에티오피아는 영어와 암하릭어를 섞어 의사를 표현한다고.
또 박 감독은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으나 많이 적응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박 감독은 지난 6월19일 집이 있는 광주에 왔다. 7월과 8월 축구 용품을 협찬받는 일에서부터 그곳의 아이들이 용품 걱정하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동시에 축구봉사자도 키워낼 수 있는 근거가 될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결성을 위해서다. 그는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런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박 감독이 이번 광주 방문에서 법인을 결성하는 동시에 조기축구회 등을 돌며 헌 축구화나 공, 유니폼 등 축구용품들을 넉넉하게 확보해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박 감독은 8월15일에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간다. 한국에 잠깐 있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은 축구단 일원인 귀염둥이 아만(17)과 날쌘돌이 존(17)곁으로 달려가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