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김영헌 광주북구의회 사무국장
"광주 향토 문화 연구·자료수집은 이미 숙명"
37년 공직생활 중 향토지 3권·왜란 다룬 역사서 2권 저술
지역 명칭 유래 찾기로 최초 연구 시작…발품팔며 현장답사
‘17년 연구 집대성’ 산·봉우리 조명 ‘광주의산 출간’ 화제
입력 : 2017. 12. 06(수) 18:09
김영헌 국장이 무등산 수레바위 부근에서 직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규장각에 소장돼 있는 1872년 광주목 지도 중 무등산 부분.
1872년 나주목 지도에 표기된 용진산 어등산 복룡산
1872년 나주목 지도에 표기된 용진산 어등산 복룡산
한말 의병 주둔지이자 격전지인 ‘빙설당’
고봉 기대승 선생의 묘소
광주시 문화재자료 제14호인 호가정의 전경.
<@7><@8><@9><@10>

“광주에는 모두 몇 개의 산과 봉우리가 있을까?”

지난 달 20일 출간된 ‘광주의 산(도서출판 심미안)’에 따르면 광주의 산과 봉우리는 모두 230개(산 이름 126개·봉우리 이름 104개)에 달한다.

이 답변에 혹자는 “정확할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러나 책 저자인 김영헌 광주북구의회 사무국장(57·지방서기관)은 단호히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가 이처럼 자신감을 내비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광주의 산’이 탄생하기 까지 자그마치 9년간 자료 수집을 했고, 8년간 산과 봉우리를 직접 다니는 현장답사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에는 지역 산과 봉우리에 대한 유래와 소개부터 각 유적지, 그리고 산책로까지 김 국장이 발품을 팔며 수집·연구한 자료가 세세히 적혀있다.

즉, ‘광주의 산’에는 그의 16년간의 노력과 공력이 오롯이 녹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올해로 37년째 공직에 몸 담고 있는 그가 ‘어쩌다 지역의 산과 봉우리를 집대성 하게 됐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김 국장이 북구 주민자치과에서 주민자치담당 업무(6급·주사)를 보던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치마을 500년을 한 권의 책에 담다

평소 지역 향토문화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김 국장은 당시 유독 ‘오치’라는 지역 명칭에 이상한 끌림을 받았다고 한다.

통상 ‘~동’ 이라는 지역 명칭은 대개 한자와 한자가 결합된 합성어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북구를 이루는 27개 동 명칭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명명됐다는 게 김 국장의 설명이다.

일례로 용봉동은 반룡리(盤龍里)와 봉곡리(鳳谷里)에서 ‘용’자와 ‘봉’자를 따와 탄생된 명칭이다.

하지만 오치의 경우 그 명칭부여 방식이 알려지지 않았고 이런 점이 김 국장의 관심을 동 하게 했다.

이에 그는 공휴일과 휴일을 이용, 도서관과 헌책방을 돌며 80여권의 문헌을 조사하고 수집하는 가 하면 거리를 거닐고 산에 오르며 직접 토박이들을 만나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연구했다.

그렇게 3년을 매진한 끝에 김 국장은 구한말 광주군 오치면 지역으로서 머구 나무가 많았고 여기에 ‘머구’나 ‘머귀’의 뜻을 가진 한자 벽오동나무 오(梧)와 재·고개를 뜻하는 치(峙)가 더해져 지금의 명칭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느 정도 궁금증은 해소됐지만 김 국장은 이 같은 사실을 알려야 겠다고 생각, 그동안 수집·연구해온 자료를 토대로 260쪽 분량의 ‘광주오치’라는 책을 생애 첫 발간했다.

이 책엔 오치의 지명 유래부터 특성,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야기, 마을만들기와 주민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마을의 모든 내용이 담겨있다.

또 조선시대 청백리 이함일(1563∼1621)을 비롯해 정오도(1647∼1736), 정덕필(1725∼1800), 이용헌(1851∼1895) 등 지역 문인들의 문집과 행적도 세세히 소개하고 현존 최고(最古)건물 중 하나인 오산정과 읍취정 등 대표적인 문화유산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두 번째 저서인 ‘김덕령 평전’을 저술하게 된 소재도 찾게 된다.



◇임진왜란 최후 의병장 ‘김덕령’을 조명하다

오치에 대해 한창 조사하던 시절, 그는 우연히 임진왜란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1567~1596)’이 왜란 당시 이곳에 와 쉬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김 장군은 왜란 초기인 1592년(선조 26년) 4월 광주읍성에 들려 의병을 모집한 뒤 오치땅에 와 요기를 하는 등 잠시 쉬어갔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하면서 ‘오치의 명칭’에서 비롯된 그의 궁금증은 ‘장군이 왜 이곳에 왔을까’로까지 확장됐고, 또 다시 관련된 옛 문헌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앞서 한 편의 책을 저술했던 터라 ‘이번엔 간단한 기록 형식으로 정리할까’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료수집과 연구가 계속될 수록 장군의 억울한 죽음과 직면했고,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었기에 정사보다 전설, 야사기록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즉시 그는 왜란 당시 숱한 의병들이 쓰러져 간 경남 진주로 달려가 장군의 행적을 쫓고, 국내 사학과 교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장군에 대해 조사했다.

그렇게 5년 간의 조사와 연구 끝에 발간된 ‘김덕령 평전(도서출판 향지사)’을 통해 장군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과 영향을 다 각도로 분석하고 진주를 거점으로 한 의병활동과 이동로 파악, 1·2차 옥사 대의 상황 등의 역사적 사실을 사료와 증언을 통해 정사(正史)로 재조명 했다.

특히 장군의 410주기 추모제(9월 15일)를 앞두고 책이 발간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끊임없는 향토문화 연구·지역 의병장 알리기

지역 향토문화 및 의병장 알리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갔다.

지난 2008년 1월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승진해 운암2동장으로 발령받은 그는 동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일거리 찾기에 돌입했다.

주제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앞서 ‘광주 오치’라는 향토지 저술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광주 운암’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방대한 자료수집과 공직자로서 시간적 제약이 컸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이상을 택했고, 이내 운암동 관련 책과 각종 자료를 찾고 휴일이면 어김없이 거리와 산을 거닐었다.

100여 권에 이르는 고서, 문집, 단행본, 보고서 등 각종 자료와 지역 현황을 샅샅이 검토·분석하는가 하면 토박이 어르신들의 고증을 통해 운암동의 600년 역사를 정리해 나갔다.

꼬박 3년의 연구 끝에 운암 사람들의 삶터, 역사와 문화, 옛터와 지금, 사라진 풍경과 이야기 등을 348쪽 분량에 담아 ‘광주 운암’을 펴냈다.

전체적인 책의 줄기는 앞서 발간한 ‘광주 오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번엔 지역의 자랑거리 30곳을 직접 돌며 촬영한 사진 250장을 함께 수록,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와 함께 김덕령 장군에서 시작된 ‘의병장’에 대한 관심도 계속됐다.

과거엔 김덕령 장군 한 사람에게만 집중했다면 이번엔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1537~1599)을 비롯해, 그를 도와 활약한 전라도 의병들을 조명키로 한 것이다.

우선 권율 장군의 막하 장수에 대한 정리에 들어갔다.

행주대첩비, 이치대첩비, 광주차의비, 남절의록, 만취당실기 등을 토대로 연구에 나서 178명을 찾아낸 뒤 이를 다시 출신지별로 분류한 끝에 광주·전남 출신이 118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뿐 아니라 왜란 발발에서 서울 수복까지 육전에서 전쟁사까지 모두 담아 연구에 나선 지 5년만인 2012년 ‘권율과 전라도 사람들’을 펴냈다.

향토지와 지역 의병을 조명하는 연구를 2차례나 반복하고 이를 책으로 담아내면서 이런 작업은 어느새 김 국장의 숙명이 돼 버렸다.



◇17년 연구의 집대성…‘광주의 산’ 출간

‘광주의 산’ 출간은 김 국장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4권의 책을 저술해 오면서 쌓인 자료가 워낙 방대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다시 재정리할 필요성을 느껴서다.

특히 저술을 위한 연구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지역 일대의 산과 봉우리에 대한 조사도 빠짐없이 해 놓았다.

언젠가 이를 주제로 한 책을 쓰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현장조사’ 였다.

‘광주 오치’, ‘광주 운암’ 등의 경우 연구에 나설 지역과 인물이 한정됐지만 이번엔 그 범위부터 너무 넓었다.

또 책 저술을 위한 연구로 주말·휴일마다 집을 비우게 되면서 가족들의 반발도 상당했다.

때문에 그는 ‘광주운암’이 출간된 직후인 2010년부터 어김없이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 등산에 나섰다.

또 그동안은 오롯한 집중을 위해 홀로 연구에 나섰지만 이번엔 가족들과 동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장장 9년 동안 삼국사기,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읍지 등 옛 자료와 현대 지도 34권을 뒤지며 자료를 수집했고, 8년간 230개의 산과 봉우리를 찾아 다니며 지명의 유래와 지리, 마을 현황, 산책로 등을 조사한 끝에 ‘광주의 산’은 빛을 보게 됐다.

그는 발간때 마다 책 말미에 꼭 ‘향후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첨언한다.

광주오치때는 ‘오치발전 10대 과제’라며 주요 경관 보전 등을 논했고, 광주 운암에서는 문화유산 복원·계승 등 ‘밝은 미래 10가지’를 제시했다.

‘광주의 산’ 말미에도 산을 대하는 태도와 문화재 개선 방안 등 10가지의 전하는 글이 담겨있다.

이는 자신이 매진한 향토문화 연구가 행정의 각 분야에 접목되길 바라는 김 국장의 복안이다.

실제 ‘충효동 왕버들’, ‘환벽당’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지정 및 취가정과 용전들노래의 광주시 문화재 지정은 김 국장의 향토문화 연구와 행정이 접목된 결과물이다.

김영헌 국장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책을 발간한 것은 조금이나마 행정에 접목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며 “지역 향토문화 연구는 이미 삶의 일부가 됐다. 앞으로는 나무와 식물로 범위를 확대해 연구와 자료수집에 나설 계속이다”고 말했다.
송대웅 기자 sdw0918@gwangnam.co.kr
사람사는이야기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광남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