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복 받은 삶' 감사"
[사람사는 이야기]‘여자 나이 환갑’ 기념전 갖는 박인숙 보성군 벌교읍장
20대 초반 공직 첫 발…40여년 '대민봉사' 외길 보람
남편 등 가족들 세상 떠난 슬픔 기독교 신앙으로 극복
내일부터 보성 갤러리re '여자나이환갑' 특별전초대
입력 : 2017. 12. 21(목) 17:58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의 기획으로 23일부터 보성군 문덕면 갤러리re 에서 마련된 ‘여자 나이 환갑’ 특별전시회에 초대된 박인숙씨가 “내가 여기 있기까지 가족들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고 믿어주었다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스물 한 살 나이에 공직에 발을 들여 어언 40여년 한 길을 걸어온 박인숙 전남 보성 벌교읍장(61).

그녀는 1957년 3월 22일(음력)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지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들을 기다리던 순천박씨 집안 아버지 박연우·어머니 이용이씨 사이의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딸만 여섯인 딸부잣집의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주로 객지에서 생활하셨다. 어머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순천박씨 집성촌이던 지곡마을에서 여섯 딸과 아주 평범한 농촌생활을 했다. 그녀의 유년시절 기억 속에는 집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농사일과 가족들 식사준비로 어머니는 부엌에서 늘 분주했다.

특히 그녀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박진규씨의 영향을 더 받았다. 생각이 깊은 분으로 기억되는 할아버지의 사랑채에는 언제나 인근 어르신들이 모여 글도 읽고 나라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벌교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광주에서 생활한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광주로 올라와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진학 준비를 하던 중 공무원 시험으로 진로를 바꿨다. 공직자였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당시 5급 공채에 합격해 벌교읍에 발령받아 공직생활의 첫발을 내딛었다.

고향에서 근무하면서 초등학교 동창 남편 김수진씨를 만나 오랜 교제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남편은 조용하고 착한 남자였다. 시집 간 벌교읍 행정마을은 친정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옆마을로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아들 둘을 낳아 무탈하게 잘 키워냈다. 지금은 두 아들 모두 결혼하고 분가해서 부산과 평택에서 살고 있다. 손자도 셋이나 태어났다.

누구나 겪는 인생 ‘희로애락’을 그녀도 거쳐 왔다. 한 여성으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공직자로서 가정과 사회생활을 동시에 꾸리며 종교생활까지 성실한 삶을 이끌어 왔다. 그래서 전형적인 ‘강인한 한국의 여성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해온 박인숙 읍장은 ‘교회에서 세례 받았을 때’를 가장 기쁜 날로 여기고 있다. 지난 2015년 벌교읍 낙성교회 권사를 취임할 정도로 믿음이 깊다. 자신이 평범한 여성의 일생을 살아오면서도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 만큼 이루고 살아온 과정에는 ‘기도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남편을 비롯해 신앙적 믿음을 함께 나누는 분들과 다녀온 성지순례 여행도 살아오면서 남은 좋은 추억이다.





광주중앙여고 재학시절 절친했던 친구들.
아들 둘 잘 키운 것도 보람이다. 1984년 스물 여덟에 큰아들 혁기를 얻었다. 이듬해 둘째 원식이 태어나 ‘부모가 되었던 일’도 일생에 큰 행복 중의 하나다. 두 아들이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어 웃음을 안겨주더니 손자 셋을 낳아 ‘딸부자집’에서 태어난 그녀에겐 ‘아들을 얻었을 때’의 기쁨을 지울 수 없다.

40년 공직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보직을 ‘고향의 행정기관장’이 되어 대미를 장식하게 된 것 또한 ‘박인숙의 성공적 인생’을 담보해 준다. 1977년 벌교읍사무소에 공무원을 시작하여 2009년에 사무관이 되었고 마침내 2016년 7월 ‘벌교읍장’으로 취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공직자로서도 귀감이 되는 반열에 올랐다.

“벌교는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한 곳이라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여성공무원으로써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며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일이 그다지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성 최초의 벌교읍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주민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기울이려 노력했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한 결과 지역민들이 수고를 알아주고 감사해하며 함깨 소통하는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렴하며 정직하고 일에서는 열정을 다하자’는 인생관에 충실한 결과로 보여진다.

1977년 사학 명문인 광주중앙여고를 졸업하고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공무원의 길을 선택한 그녀는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견주어 지금 현재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사실 공무원 초창기엔 시골 읍사무소의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자존감도 없어 공직의 길을 가게 한 아버지를 원망도 했고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사회에서의 존재감과 공무원의 위상 향상 등으로 인해 자신감을 찾아갔습니다. 대학졸업 후 대기업이나 전문직종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으나 일부는 결혼하면서 가정으로 돌아가는 예를 보면서 40년의 공직생활에 힘든 적도 많았으나 일찍 공직에 들어와 한 길을 걸어온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인생 60년이 실타래 풀리듯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쁜 일 뒤에는 그림자처럼 슬픔도 맛보아야 하는 게 사람 사는 이치 아닌가. 인생에서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갯길은 그녀에게 큰 아픔으로 남았다. 가장 가까이서 부대끼며 사랑하고 존경하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인연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그렇게 잘 따르며 좋아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은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었다. 어린 나이지만 종일 울며 아픔을 삼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남편과의 즐거웠던 한 때
또 친정 부모님을 여의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편마저 쉰 세 살의 나이로 먼저 곁을 떠날 때는 그 허망함을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떠난 이후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혼자 결정해야 할 때’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을 수도, 따질 수도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운명의 등짐을 졌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땅의 중년 여성들이 겪어가야 하는 길을 그녀도 걸어 가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박인숙 읍장은 올해 만 60세 ‘환갑’을 맞았다. 인생 100세 시대에 환갑은 이제 흘러간 관습이 되었다. 칠순도 거의 스쳐 가고 팔순잔치도 간소화 해지는 요즈음 ‘환갑’을 돌아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과거 남자들은 환갑을 동네잔치로 치렀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환갑을 새는 일이 드물었다. 남편의 환갑에 덤으로 얹혀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흐지부지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환갑’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시대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 딱 맞는 인생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에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소장 한광석)의 기획으로 오는 23일부터 29일까지 보성군 문덕면 갤러리re에서 마련된 ‘여자 나이 환갑’ 특별전시회에 초대되었다. 이 전시회에는 박인숙 읍장이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공직생활, 결혼과 가정, 자녀양육 등을 지나오며 기록한 직·간접의 자료 사진들을 한데 모았다. 그녀의 환갑잔치이자 40년 공직 퇴직 기념행사이기도 하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을 선보이는 자리로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내놓을 게 없는 평범한 인생으로 사양을 해 오던 중 인생 제1막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친가쪽 부모님 자매들, 시댁 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내 두 아들의 갓난아이 때부터 결혼해서 며느리가 생기고 손자가 태어난 걸 들춰보면서 내가 참 복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합니다. 내 나이 어느 새 환갑, 그동안 나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는 소회, 내가 여기 있기까지 가족들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고 믿어주었다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녀는 지금도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효부이다. 시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며느리를 항상 사랑으로 감싸준 고마운 분이다. 27살 때부터 함께 살아오며 두 아이를 키울 때는 전적으로 육아를 책임져 주었고, 사회 생활하는 며느리를 항상 지지해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겸손하되 기품 있고 당당하게 살고 싶은 인생관을 지키게 해준 평생 한번 만날 좋은 인연이다.

박인숙 읍장은 퇴임 후에 대해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며 “그동안 한결같이 지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가족과 동료들께 감사드리며 여러분들이 힘들 때 저도 기꺼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김옥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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