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곧 ‘사랑’…살아갈 힘의 원동력이죠"
[사람사는이야기]광산김씨 나주 문평 김경수家
매주 팔순 노모 찾아뵙는 효심 깊은 ‘오남매’
다채로운 가족행사…어머님 댁서 ‘화합’ 다져
"모두 함께,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게 꿈"
매주 팔순 노모 찾아뵙는 효심 깊은 ‘오남매’
다채로운 가족행사…어머님 댁서 ‘화합’ 다져
"모두 함께,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게 꿈"
입력 : 2018. 02. 07(수) 18:03

광산김씨 나주 문평 김경수씨네 오 남매는 “가족은 지금껏 살아온 힘이자 앞으로 살아갈 힘”이라며 “모두 함께, 건강하게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사진은 지난해 1월1일 금정산으로 해돋이를 본 후 찍은 가족사진.
가족 공동체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가족은 살아갈 힘”이라고 말하는 우애 깊은 대가족이 있어 눈길을 끈다.
매주 주말이면, 나주시 문평면 어머님 댁으로 모이고, 김장철엔 온 가족이 힘을 보태 1년 먹을 김치를 담근다.
한 해 마지막 날이면 서로의 건강을 빌고, 새 해 첫날에는 떠오르는 해를 함께 맞는다. 매일이 명절이고, 잔칫날 같은 김공님씨(81)네 가족 이야기다.
김공님씨네는 큰 아들 김경수(60), 큰 딸 김순옥(57), 둘째 아들 김관수(54), 셋째 아들 김연수(51), 막내딸 김연옥(48) 등 총 3남 2녀의 다복한 가족이다. 모두 장성하여, 저마다 화목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 옛날 모닥모닥 모여 살던 어렸을 때의 ‘오남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주 주말엔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나주시 문평면에 자리한 어머니 댁으로 모여든다. 둘째 아들 관수씨는 “어머니 댁에 가면, 두 세 가족은 이미 와 있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이 시골집을 “모두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공간”이라 여긴다. 큰 아들 경수씨가 태어나 올해 환갑을 맞는 긴 시간을 함께 한 곳이기 때문. 기쁠 때도, 행복할 때도, 또 누구나처럼 슬플 때도, 오남매의 생(生)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어머니 댁이다.
어머니 김공님씨는 동강댁으로, 스무살에 광산김씨 나주 문평 종가로 시집을 왔다. 한 평생을 종가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 역할을 다 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오남매가 십시일반해 현재 문평면 국동리에 집을 새로 지었다. 이곳이 바로 어머니 댁이자, 오남매 화합의 공간이다.
“집이 늘 북적북적하죠. 요즘 시골이 다 그렇듯 건너 건너 이웃집들은 노인들이 홀로 계시잖아요.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이 그렇게 어머니를 부러워하신대요. 자식들이 매주 주말이면 몰려드니까요. ‘자식들 언제 오나’ 기다리실 어머니 생각하면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가족들이 모여 어떤 특별한 것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빙 둘러 앉아 ‘엄마 밥’도 먹고, 사는 얘기도 나눈다. 오남매에게 이곳은 ‘쉼의 공간’이다. 각자 삶을 살다, 시간 날 때면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건너와 몸도 마음도 편히 쉬어가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모이면 ‘일’이 생겨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파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죠. 마당으로 나와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고, 캠핑장에 온 것처럼 텐트 치고 놀기도 하죠. 송년행사며 해돋이 여행이며, 놀 거리도 다양합니다. 집에서 열리는 ‘가족음악회’도 빠질 수 없는 행사죠.”
이렇게 가족들의 우애가 깊을 수 있었던 데는 역시 자식들을 잘 키워 낸 어머니 덕이 크다. 어머니는 서른여섯에 혼자가 됐다.
당시 문평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남편 김원섭씨는 출장 중에 사고로 순직했다. 덕망이 높았던 터라, 그의 장례식은 문평면장장으로 치러졌다.
조문객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 오남매를 키웠고 시부모를 봉양했다. 종가집이어서 집안 행사가 끊이질 않았지만 어머니는 ‘종부’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었다.
그의 모범적인 삶은 ‘장한어머니상’, ‘효부상’ 등 빛나는 상으로도 남아있다. 특히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있어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말’을 함부로 않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자식들한테 한번도 ‘이 놈’, ‘저 놈’이라고 하질 않으셨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경 써서 하시는 분이었죠. 늘 온화했고 따뜻한 품으로 오남매를 껴안아 주셨으니까요. 그런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지금 우리 가족이 화목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오남매가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는 일은 어린 시절의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일이다.
특히 큰아들 김경수씨의 효심이 지극하다. 그는 주중이고 주말이고 어머니를 찾아뵌다. 식사를 하다 맛있는 게 있으면 “내 입맛에도 맛있으면, 어머니도 좋아하시겠다”싶어 따로 포장해 가져다 드리는 게 일상이다.
집안의 큰 형님이 올곧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니, 동생들이 기꺼이 따름은 자연스러운 일 일 터.
“큰 형님은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집안의 기둥이에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해오셨죠.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본인 대학 진학도 포기하신 분이니까요. 형님께서는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아버지 운구차를 바라보며 했답니다. 정말로 저희는 자라면서 한 번도 아버지 없는 설움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오남매는 잘 자랐다. 사회적 성공 뿐 아니라 우애 깊은 형제로 남들의 부러움을 사니, 더 값지다. 문평면에서는 “요새 이런 가족이 없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이들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는 바로 김장이다. 김장 한 달 전 쯤이면 오남매의 가족 ‘밴드’에 일정 공지가 뜬다. 온 가족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지난 겨울에도 모두 모여 500포기 김장을 했다. 오남매는 물론이고 오남매의 자녀들까지 22명이 팔을 걷어붙였다. 형님네는 간하고, 둘째는 비비고, 셋째는 담고. 수년 간 해온 덕에 분업화가 철저하다. 마당에는 1번, 2번, 3번 숫자가 써진 김치 통이 줄지어 서있다. 각 번호의 주인 또한 태어난 순서와 같다.
농사철에는 오남매의 공동 작업이 필수다. 벼 모종 심기부터, 농약 할 때, 모내기 할 때 고된 농사일도 이들에겐 즐거운 가족행사다.
“배추를 심는다, 마늘을 캔다, 이런 일들이 하나의 가족 행사가 되는 거예요. 네이버 밴드에 일정을 공유하면, 그날 모여서 공동 작업을 하죠. 그러니 어머님이 얼마나 오지겠어요.”
피붙이라 하더라도, 사람 사는 일이라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큰 소리가 나지 않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형제들끼리 다투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니, 자녀들끼리도 여간 사이가 좋은 게 아니다. 김관수씨는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사촌이란 개념이 없다”라며 웃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사촌이 아니라 진짜 친형제처럼 잘 지낸다는 말이다. 명절 때나 한 번씩 보게 되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자주 보니 어색해질 틈이 없다.
집안의 큰 어른인 경수씨가 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짝사랑은 오래 못 간다”는 말이 그것. 말처럼 누구 한 사람만 잘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오남매가 ‘모두’ 잘해야 가족이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들에겐 있다.
“가족은 사랑이에요. 지금껏 살아온 힘이고, 또 앞으로 살아갈 힘이죠. 언제나 내 편인 가족들이 있기에 두려울 게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나에겐 ‘가족들이 있으니까, 형제들이 있으니까 괜찮다’ 하는 자신감이 있죠. 가족 중 누군가가 대기업 회장이라서, 검사라서, 또 어마어마한 부자라서가 아니에요.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죠. 앞으로도 이곳에서 다 같이 건강하게, 멋있게, 나이 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나주시 문평면 어머님 댁으로 모이고, 김장철엔 온 가족이 힘을 보태 1년 먹을 김치를 담근다.
한 해 마지막 날이면 서로의 건강을 빌고, 새 해 첫날에는 떠오르는 해를 함께 맞는다. 매일이 명절이고, 잔칫날 같은 김공님씨(81)네 가족 이야기다.
김공님씨네는 큰 아들 김경수(60), 큰 딸 김순옥(57), 둘째 아들 김관수(54), 셋째 아들 김연수(51), 막내딸 김연옥(48) 등 총 3남 2녀의 다복한 가족이다. 모두 장성하여, 저마다 화목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 옛날 모닥모닥 모여 살던 어렸을 때의 ‘오남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주 주말엔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나주시 문평면에 자리한 어머니 댁으로 모여든다. 둘째 아들 관수씨는 “어머니 댁에 가면, 두 세 가족은 이미 와 있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이 시골집을 “모두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공간”이라 여긴다. 큰 아들 경수씨가 태어나 올해 환갑을 맞는 긴 시간을 함께 한 곳이기 때문. 기쁠 때도, 행복할 때도, 또 누구나처럼 슬플 때도, 오남매의 생(生)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어머니 댁이다.
어머니 김공님씨는 동강댁으로, 스무살에 광산김씨 나주 문평 종가로 시집을 왔다. 한 평생을 종가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 역할을 다 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오남매가 십시일반해 현재 문평면 국동리에 집을 새로 지었다. 이곳이 바로 어머니 댁이자, 오남매 화합의 공간이다.

지난 설 명절 어머님 댁에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가족들이 모여 어떤 특별한 것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빙 둘러 앉아 ‘엄마 밥’도 먹고, 사는 얘기도 나눈다. 오남매에게 이곳은 ‘쉼의 공간’이다. 각자 삶을 살다, 시간 날 때면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건너와 몸도 마음도 편히 쉬어가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모이면 ‘일’이 생겨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파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죠. 마당으로 나와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고, 캠핑장에 온 것처럼 텐트 치고 놀기도 하죠. 송년행사며 해돋이 여행이며, 놀 거리도 다양합니다. 집에서 열리는 ‘가족음악회’도 빠질 수 없는 행사죠.”
이렇게 가족들의 우애가 깊을 수 있었던 데는 역시 자식들을 잘 키워 낸 어머니 덕이 크다. 어머니는 서른여섯에 혼자가 됐다.
당시 문평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남편 김원섭씨는 출장 중에 사고로 순직했다. 덕망이 높았던 터라, 그의 장례식은 문평면장장으로 치러졌다.
조문객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 오남매를 키웠고 시부모를 봉양했다. 종가집이어서 집안 행사가 끊이질 않았지만 어머니는 ‘종부’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었다.
그의 모범적인 삶은 ‘장한어머니상’, ‘효부상’ 등 빛나는 상으로도 남아있다. 특히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있어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말’을 함부로 않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자식들한테 한번도 ‘이 놈’, ‘저 놈’이라고 하질 않으셨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경 써서 하시는 분이었죠. 늘 온화했고 따뜻한 품으로 오남매를 껴안아 주셨으니까요. 그런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지금 우리 가족이 화목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오남매가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는 일은 어린 시절의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일이다.
특히 큰아들 김경수씨의 효심이 지극하다. 그는 주중이고 주말이고 어머니를 찾아뵌다. 식사를 하다 맛있는 게 있으면 “내 입맛에도 맛있으면, 어머니도 좋아하시겠다”싶어 따로 포장해 가져다 드리는 게 일상이다.
집안의 큰 형님이 올곧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니, 동생들이 기꺼이 따름은 자연스러운 일 일 터.
“큰 형님은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집안의 기둥이에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해오셨죠.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본인 대학 진학도 포기하신 분이니까요. 형님께서는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아버지 운구차를 바라보며 했답니다. 정말로 저희는 자라면서 한 번도 아버지 없는 설움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오남매는 잘 자랐다. 사회적 성공 뿐 아니라 우애 깊은 형제로 남들의 부러움을 사니, 더 값지다. 문평면에서는 “요새 이런 가족이 없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이들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는 바로 김장이다. 김장 한 달 전 쯤이면 오남매의 가족 ‘밴드’에 일정 공지가 뜬다. 온 가족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지난 겨울에도 모두 모여 500포기 김장을 했다. 오남매는 물론이고 오남매의 자녀들까지 22명이 팔을 걷어붙였다. 형님네는 간하고, 둘째는 비비고, 셋째는 담고. 수년 간 해온 덕에 분업화가 철저하다. 마당에는 1번, 2번, 3번 숫자가 써진 김치 통이 줄지어 서있다. 각 번호의 주인 또한 태어난 순서와 같다.
농사철에는 오남매의 공동 작업이 필수다. 벼 모종 심기부터, 농약 할 때, 모내기 할 때 고된 농사일도 이들에겐 즐거운 가족행사다.
“배추를 심는다, 마늘을 캔다, 이런 일들이 하나의 가족 행사가 되는 거예요. 네이버 밴드에 일정을 공유하면, 그날 모여서 공동 작업을 하죠. 그러니 어머님이 얼마나 오지겠어요.”

어머니 팔순을 맞아 떠난 제주도 가족여행.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니, 자녀들끼리도 여간 사이가 좋은 게 아니다. 김관수씨는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사촌이란 개념이 없다”라며 웃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사촌이 아니라 진짜 친형제처럼 잘 지낸다는 말이다. 명절 때나 한 번씩 보게 되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자주 보니 어색해질 틈이 없다.
집안의 큰 어른인 경수씨가 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짝사랑은 오래 못 간다”는 말이 그것. 말처럼 누구 한 사람만 잘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오남매가 ‘모두’ 잘해야 가족이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들에겐 있다.
“가족은 사랑이에요. 지금껏 살아온 힘이고, 또 앞으로 살아갈 힘이죠. 언제나 내 편인 가족들이 있기에 두려울 게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나에겐 ‘가족들이 있으니까, 형제들이 있으니까 괜찮다’ 하는 자신감이 있죠. 가족 중 누군가가 대기업 회장이라서, 검사라서, 또 어마어마한 부자라서가 아니에요.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죠. 앞으로도 이곳에서 다 같이 건강하게, 멋있게, 나이 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