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1980년대까지 쌀을 자급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미국과의 낮은 수입 관세와 장기 계약으로 값싼 미국 쌀이 들어오면서 아이티 쌀 산업은 붕괴됐다. 농민들은 농촌을 떠났고, 식량 주권을 잃은 아이티는 수입 쌀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24년 9월 30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아이티 인구 절반에 달하는 540만여 명이 기아에 직면해 있으며, 이 중 200만 명은 식량안보단계(IPC) 4단계인 비상 상태에 있다’라고 발표했다. 식량이 왜 국가의 기간산업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농업·농촌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통계청의 ‘2023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는 99만 9000가구로 100만 가구 아래로 떨어졌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역대 최고치인 52.6%로, 농업인 절반 이상이 고령층이다. 반면 청년농은 가파르게 줄었다. 인구감소는 자연스레 상권소멸로 이어지고, 이는 또다시 인구유입의 큰 장애가 되어 인구소멸을 앞당기는 크나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다양한 기본서비스가 사라지면서 농촌은 더더욱 살기 힘들고 불편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생필품 구입은 물론 이동의 불편함으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농촌 살기를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전남도의회 소속 연구단체인 ‘농촌발전연구회’에서는 정확한 실태 파악과 대안마련을 위해 용역에 나섰다. 현재 전남지역 기초생활서비스 이용실태를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인구 3천 명 미만 읍·면 6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기초생활서비스 중 가장 취약하고 개선이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 결과 병원, 의원, 약국 등 보건 의료 서비스, 노인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사회복지 서비스, 은행, 슈퍼마켓, 음식점, 세탁소 등 소매 서비스 등이 불편하다는 순으로 나타났다.

전남 22개 시군 중 17곳이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1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없는 ‘응급의료취약지’로 분류된다. 이는 응급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쳐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한다. 또 단순한 상비약마저 구입하기 어렵다보니 농촌지역에서는 “아플까봐 걱정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또한 누구나 생활 속에서 밀접하게 필요한 미용실, 식당, 은행, 목욕탕, 세탁소, 마트 등과 같은 정주기반 서비스는 주민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농촌은 마을 단위 기초서비스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주민들은 도시까지 나가야만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차량이 없는 고령층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이상을 나가야만 일을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실정이 이러한데, 누가 농촌에서 살려고 하겠는가. 농촌 생활을 통해서는 최소한의 인간이 누려야 할 기초적인 서비스가 충족되지 못한다. 몇조원씩을 쏟아붓는 인구소멸기금을 제아무리 투입한다고 한들 정주여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불편한 농촌에서 살려고 하겠는가?

농축산식품부는 생필품 구매가 어려워 일상이 불편했던 농촌지역에‘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조 트럭을 민간에 지원해 생필품을 배달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전남도가 나서서 ‘전남형 공공기초생활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농촌마을이 대다수인 우리 전남은 농촌 기초생활시설이 더욱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수익구조가 어려운 기초생활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공형 서비스 제공은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다. 이제는 인구소멸의 대안으로 농촌에서 살더라도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최소한의 기초생활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 서비스는 이동형 마트를 기반으로 방문 검진 의료, 주택 수리, 농자재 구입 등 농촌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통합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 이 사업을 우리 전남에서 시작한다면,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선도 사례가 될 것이다.

농촌지역의 공공형 기초생활서비스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기초서비스가 제공될 때 농촌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고 국가의 균형 발전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제는 농촌 주민들도 도시민이 누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전남도가 앞장서 기초인프라 도입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