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갤러리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우리의 천연염색 전시장에서 봤음직한 곡선들의 아름다운 얽힘이 얼핏 떠오른다. 물론 이 작품에는 훨씬 복합한 스토리가 들어가 있고, 재료 또한 전혀 다른 지점에 놓여 있다. 천 조각 같은 재료의 수많은 곡선들이 곡예를 넘나들며 얽혀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가장 기본적 느낌일 뿐이다. 작가는 이 작품 안에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핸드폰 e심처럼 박아놓았다.

일찍이 작가는 비디오 조각 설치 회화를 아우르며 작업을 해왔다. 이번 작업에서는 특정지역이나 재료에 내재된 마찰을 심층적으로 파고들면서 어떠한 시스템이 형성되고 붕괴되며, 변형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독일 베를린공원을 산책하며 접했던 부회된 고치로 가득한 실크 거미줄이 나무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과 도심 공동체 안에서 교환되는 옷을 재료로 차용한 것이다. 문화든, 현상이든, 과학이든 그 안팎의 중첩을 예의주시했다는 것이다. 캔버스 리넨(직물)에 유화와 아크릴로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안팎의 삶의 지점 혹은 영토에 관한 문제를 고심한 것으로 읽힌다. 다만 색상에 작가의 의도가 감춰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곡선들이 연출될 수 있다면 칼라도 써보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명제를 보면 작품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터다.

명제 ‘부드러운 폐허’는 언어조합이 다분이 이질적이고 배타적이다. 어찌보면 부드럽다와 폐허는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폐허 그 자체도 문명의 산물일 터이니 수용해볼 가치가 있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