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800년대 후반까지 호남의 중심은 광주가 아닌 나주였다. 전라도는 전주의 ‘전’과 나주의 ‘나’를 의미한다.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는 관찰부가 있었던 나주에 1895년 단발령 시행에 반대하는 의병이 일어났다. 이를 피해 관찰사가 광주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896년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지금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리에 전남도청이 자리 잡게 됐다. 그렇게 광주는 도청의 이전, 근대화, 산업화 속에서 호남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100년 동안 호남의 모든 역량은 광주, 특히 동구에 집중됐다. 각종 행정기관, 금융, 교통 및 다양한 시설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광주와 호남의 상권도 충장로·금남로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호남의 중심은 광주, 광주의 중심은 동구였다. 동구는 오랜 시간 동안 호남의 중심이었다.

호남의 중심으로 빛나던 충장로·금남로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광주 사람들은 모두 무등극장, 제일극장에서 영화를 봤고 시내 거리를 누비며 데이트를 즐겼고 화니백화점, 가든백화점에서 쇼핑을 했으며 유생촌에서 돈가스를, 학생회관 뒷골목에서 상추튀김을 그리고 왕자관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역사적인 사건 또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모여 민주화를 부르짖은 곳도 금남로였고, 2002년 월드컵을 함께 응원하며 승리에 환호했던 곳도, 2016년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넘어 횃불을 들고 모였던 곳도 금남로였다. 충장로·금남로는 광주 시민의 눈물, 아픔, 기쁨, 환호 그리고 추억이 새겨져 있는 광주의 역사다.

21세기의 시작, 도심 공동화 현상과 함께 많은 시설과 사람이 동구를 떠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순간,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며 우리가 살아온 과정은 그 모습 그대로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동구는 광주 다섯 개 자치구 중에서 가장 작은 면적, 적은 인구, 변변한 산업 시설도 없지만 광주 시민이 살아온 역사라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광주의 역사와 시민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충장로·금남로 일대에서 오는 10월 2일이면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 가는 제21회 광주 추억의 충장축제가 개막한다. 올해 충장축제는 그동안 관이 주도해 온 틀을 벗고 민·관·학이 힘을 모아 거버넌스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관 주도의 지역 축제가 대부분인 국내 축제계 현실에서 좋은 시도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올해는 시민 주도 축제를 만들기 위해 시민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기획안을 모집했다. 그리고 충장 의상실 젊은이의 7080 코스튬, 충장 한땀사오 골목 투어형 체험 프로그램, 충장축제 Build up 추억으路(로) 모테부러, 예술의 거리 라이브 페인팅, 금남로 지하상가 대축제까지 총 다섯 가지 시민기획 프로그램을 선정했다. 조금 서툴 수 있는 민간의 기획에 전문가의 교육과 컨설팅을 지원해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였다. 또 조선대학교 K-컬처공연기획과의 충예기획단이 예술의 거리에서 추억·예술·놀이 테마 프로그램을 대학생의 젊은 감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퍼레이드는 동구 13개동 주민이 직접 참여해 ‘추억의 음악, 열정의 순간’이라는 주제로 준비했다. 마을 주민, 시민단체, 대학, 지자체, 예술단체 등이 한데 모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축제를 구성하고 볼거리 중심의 이벤트로 끝나는 축제가 아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축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다. 충장로·금남로에 남겨진 광주와 동구의 역사 그리고 추억은 어려웠던 시절 서로를 위로하고, 행복했던 순간 함께 기뻐하며 살아온 광주 시민 개개인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동구는 여러분의 그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왔고,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와 추억을 바탕으로 충장축제가 개막한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지치고 힘들어 젊은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마음속 한구석에 묻어 두고 잊고 살아왔다면 오는 10월 가족, 친구와 함께 현장에 나오길 바란다. 충장축제가 색다른 공연, 체험, 전시프로그램과 다채로운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즐길거리를 가지고 7080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MZ세대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가슴 벅찬 순간, 깊은 여운의 무대로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