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미술관은 개관한 그해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무등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우선으로 내세웠다. 자연친화적 미술관을 표방한 만큼 뜻있는 무등산 등산객들로부터 지속적 관심을 받아왔다. 등산객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문향전’과 미술관 뒤 증심사와 춘설헌 녹차밭까지 있어 작품 관람은 물론, 힐링의 최적 장소 중 한곳으로 꼽혀왔다.
의재미술관이 개관한 지 20년이 흐르면서 노후화돼 광주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움으로 1년 6개월여에 걸쳐 시설 개선을 위한 공사를 시행해왔다. 이런 가운데 개관 20주년은 물론 더 나아가 의재 탄생 130주년을 되새길 기획전시와 강좌를 마련해 진행한다.
먼저 ‘문향聞香-인연의 향기를 듣다’라는 타이틀로 마련된 기획전시는 2부로 나눠 2일부터 11월28일까지 1, 2 전시실과 4전시실에서 각각 열린다.
제1부 전시에서는 의재 허백련이 특별한 의미를 담아 누군가에게 그려준 그림과 글씨 및 흔히 말하는 쌍낙관을 한 서화 작품들이 선보인다. 출품작은 35점.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시기적으로 의재 나이 32세 때인 1922년 작품에서부터 1973년 부산의 서예가 청남 오재봉에게 그려준 ‘산수화’까지 총 34점이다. 산수화를 망라해 사군자와 화조화, 글씨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으로 시기별 작품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의재의 서화는 가장 가까이로는 손자, 지금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 전남대 같은 공공기관 등에 소장돼 있다. 또 근원 구철우, 춘헌 허규, 계산 장찬홍, 숙아 최영자, 동작 김춘 등 연진회와 연진미술원으로 이어진 제자들에게 써준 호나 평생 간직할 명구들이 있다. 이 모든 작품에는 귀한 사연이 깃든 의미있는 그의 예술적 족적이 투영된 작품들이라는 설명이다. 이들 작품들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고 의재의 삶과 예술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1922년 집안 어른인 허찬 선생의 회갑연에서 그린 ‘산수화’(일민미술관 소장품)는 그의 초기 그림일 뿐 아니라 서예가 해강 김규진과 무정 정만조를 비롯한 석재 서병오, 고하 송진우, 인촌 김성수, 2·8독립선언의 주역 백관수, 서예가 소전 손재형, 송곡 안장호, 미산 허형, 소정 변관식, 허건 등의 작품과 함께 화첩으로 꾸며져 있다.
여기다 1932년 화가로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1932년에 그려준 ‘산수화’는 작지만 빼어난 작품이며, 연진회를 창립하던 1938년 연진회 창립회원인 근원 구철우에게 그려준 ‘계산소우’는 당시의 귀한 청록산수화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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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동주(吳越同舟) |
1954년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에 기증한 ‘일출이작’(日出而作)은 그가 농업학교를 세우고 농업발전에 힘썼던 당시 자주 그렸던 일종의 ‘농경도’ 중 대작(116㎝×132㎝)이며, 1960년 새해 아침 동아일보를 위해 그린 ‘오월동주’(吳越同舟)는 기관에 그려준 작품들 중 하나다. 의재는 농업기술학교를 운영한 바 있다.
이외에도 친한 친구이자 의재 그림을 도맡아 표구해줬던 완벽당 화랑의 주인 영사 최원택에게 준 ‘8폭 글씨병풍’이나 20m에 가까운 두루마리에 각 체로 쓴 서예작품 등은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와 함께 의재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어 제2부 전시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지운 김철수(1893~1986) 서예전으로 꾸며진다. 출품작은 25점. 그는 1947년 정계 은퇴 후 고향 부안에 손수 흙집을 짓고 꽃과 나무를 벗하며 살았는데 이때부터 의재 허백련, 오지호 등 지역의 예술인들과 교류를 했다. ‘지운’(遲耘)이라는 호도 ‘늦게나마 고향에 내려와 다시 밭갈이를 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의재가 지어준 것이다. 교통이 편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지운은 부안에서 광주 무등산을 수시로 찾아왔고, 그의 손에는 늘 희귀한 꽃나무가 들려 있었다. 지금도 춘설헌에서 피고 지는 매화, 영산홍 등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지운의 서예작품은 대부분 직헌 허달재가 지운으로부터 받은 것들이다. 1977년 의재 사후에도 지운은 의재의 장손자인 직헌 허달재를 자주 찾아 마치 친손자를 대하듯 했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써줬다. 소동파가 적벽부를 쓴 임술년에서 900년이 지난 1982년 임술년에 감회를 담아 쓴 ‘적벽부병풍’, 1981년 옛 친구 의재 허백련의 시 ‘국화’를 쓴 작품, ‘누실명’(陋室銘), ‘다가’(茶歌) 등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새겨봄직한 내용들이다.
전시 기간 동안 의재 상설전도 제3전시실에서 이뤄진다.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을 내고 있는 디자인하우스가 2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올라가는 코너에 의재실을 설치,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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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폭 글씨병풍’ |
이선옥 관장은 개관 20주년에 대해 “이번 전시는 개관 20주년이자 의재 선생님 탄생 130주년을 맞은 해로 의미가 있어 마련한 자리다. 의재 선생님이 누군가에 축하하며 주는 그림들을 모았다. 모두 누군가에게 덕담과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들이어서 따뜻한 느낌이 작품들이자 유명한 작품도 포함돼 있다”면서 “미술관이 20년 되면서 낡아서 그동안 리모델링을 하느라, 또 코로나 여파로 인해 1년 6개월여 동안 문을 열지 못했다. 재개관의 의미도 있고, 2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