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자신만의 색채와 조형언어로 시간을 새겨온 정 작가에게는 전시 소식이 들려오진 않던 시간 만큼 회화의 혈을 뚫은 듯한 느낌이 전해온다.
그 침묵의 시간들은 작가에게 예술적 여정이자 개인으로서의 삶을 올곧게 살아낸 여백이었을 터다. 중견 서양화가 정순이씨가 2004년에 서울 백송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뒤 20년 만에 붓을 들고 화단으로 돌아왔다. ‘시간으로의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한 개인전이 지난 4월25일 개막, 오는 5월 6일까지 광주 동구 운림동 우제길미술관에서 열린다. 출품작은 200호 1점과 100호 1점, 50호 6점 등 총 20여점.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간 천착해 온 블루톤의 색감과 조형적 이미지를 한층 더 심오하게 깊이를 파내려간 듯 싶다. 20년 만에 든 붓질이 시간을 다독이는 듯 투영한 삶의 자취들이 풀어진 독창적 표현이 눈에 들어오는 최근작들을 다수 출품했다. 그의 작업에 대한 시각은 1차적 눈에 들어오는 사물을 그대로 캔버스에 앉히기 보다는 흰색 바탕의 배경색을 덧씌움으로써 리얼리티가 갖는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회화 영역에 대한 확장성을 시도한다.
꽃과 정물에 대한 이미지는 감상자가 누구든 알아볼 수 있게 하지만 가로나 세로로 흰 여백의 기둥같은 존재가 화면을 관통한다. 뻔한 아름다운 화면에 대한 접근과 해석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만의 조형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색면 분할이나 색면 구획이라기보다는 전체 캔버스 위에 그림을 완성한 뒤 추상성을 가미하는 듯하다. 추상과 구상이 혼재하는 양상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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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이 작 ‘시간으로의 여행’ 연작 |
그는 기존 옴니버스 형식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나의 화면 위에 얹어놓고 파노라마처럼 연결해 구성한 회화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영역 확장을 시도했다. 화면 속 청색조는 손끝 뿐 아니라 머리와 가슴을 기반으로 한 사유로 작동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작들에서는 화폭에 표현된 물상들이 저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감하게 표출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저마다의 작품 속에는 작가가 걸어온 시간과 길, 예술 여정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표현의 기반인 청색조는 때로 화려한 채색을 동반한 꽃으로 빛을 발하면서도 깊고 진한 사유로 끌어올리고 있다.
정순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청색조로 그려낸 존재와 그 이면에 깔린 사유는 시간과 여행으로 압축되는 생에 대한 시선을 담아낸 것이다. 구상이면서도 추상성을 담보한 나만의 조형언어로 그림을 보는 이들과 사유와 공감을 나누고 싶었다”면서 “소박하고 단순한 이미지로 화폭을 꾸미고자 했다. 오랜만에 근작전을 여는 것이니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작품을 보며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김영순씨는 해설을 통해 “작가는 사유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어 이 맛 저 맛을 흡입한 다음 간져낸 ‘파란 알갱이’로 구상성을 붓질해 낸 것”이라며 “표현양식은 푸르른 빛의 구상이 되어 보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은 푸르름에서 건져낸 실촌적 사유 즉 추상이다”고 평했다.
정순이 작가는 조선대 미술교육과와 조선대 대학원 순수미술과를 졸업하고 광주미술협회 회장을 비롯해 광주문화예술미래위원회 위원과 제4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광주국제아트페어 집행위원장,광주·전남여성작가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와 함께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및 고문, 광주비엔날레 이사, 조선대 겸임 및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국제 여성미술교류협회 대표 및 전업작가회, 한국미술협회, 광주미술협회 등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