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 가고 초여름이 온 듯 반팔 차림의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송화가루는 심하게 날려도 이야기꽃 피우기 좋은 계절이다. 이야기 식탁에 꼭 가봐야 할 미술 밥상을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 독특한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고 시각을 가진, 차와 정치로 차린 예술가의 미술밥상이 눈길을 끈다.



먼저 4·10 총선 때 화제를 모았던 입후보자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안티페미니스트이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창당했던 소나무당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 당시 유튜브 공간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던 권윤지 작가. 그가 ‘새벽 폭풍 속으로- 경계에 서다’라는 타이틀로 그림과 아카이브 중심의 전시를 열고 있는 것.

24일 오후 열린 작가와의 대화는 권윤지 작가를 비롯해 박구용 교수(전남대 철학과), 주홍 갤러리 생각상자 관장, 오월어머니들과 시민 그리고 소나무당원 등 50여명이 함께 한 가운데 성황리 열렸다.

권 작가는 지난 4월 총선 전후 안티페미니스트이자 소나무당 비례대표 후보, 뜻있는 대중들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던 당사자로 지난 24일 광주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권 작가는 이 자리에서 소나무당 영입 과정과 레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에 맞서며 느꼈던 예술과 정치의 상호관계에 대해 담담하게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만난 권 작가와 박구용 전남대 교수

임성택 작가의 차칙전 전경

‘작가와의 대화’ 이후 권 작가는 저서 ‘파괴할 수 없는 것’ 사인회을 열고 독자들의 캐리커쳐를 일일히 그려주는 성의를 보여 호응을 얻었다.

권 작가는 “과거에 ‘예술 읽어주는 비서관’을 꿈꿨었고, 예술의 역량을 실질적인 데에 쓰고 싶어 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해왔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인간에의 사랑과 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으로, 따뜻한 언어를 구사하며 사회에 참여하겠다는 것, 어쩜 이건 예술가가 예술적 추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결론 같다”고 말했다.

주홍 관장은 그에 대해 “선거가 끝나고 광주에 와서 한적한 민주광장을 밤늦게 함께 걸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전시에 대한 상상력을 공유하며 사진을 찍었다. 시멘트 틈에서 가느다란 꽃대가 올라와 있었다. 정치판은 거칠고 단단한 시멘트 벽같다. 스물여덟살 권 작가는 그 사이를 뚫고 올라온 작은 꽃대 같다”고 밝혔다.

전시는 24일 개막, 오는 오는 5월 12일까지 갤러리 생각상자에서 계속된다.

이어 세작(어린 잎)이 나오는 곡우지절(穀雨之節·4월20일)에 차칙(茶則) 100여 점을 선보이는 보기 드문 전시회가 마련됐다. 차칙은 차를 뜨는 숟가락, 차시(茶匙)라고도 한다.

임성택 작가의 작업 모습

임성택 작 ‘묵언Ⅰ-먹감’

저서 ‘파괴할 수 없는 것’ 사인회에 나선 권 작가.

이 전시회의 주인공은 임성택 작가. 임 작가는 우연히 순천 선암사에서 스님과 차를 마시다가 완상용 차칙을 접하고 오로지 한 길로 20여 년간 나무를 다듬고 새기는 목공예 카빙(carving·조각)을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차칙은 차를 담는 차호, 차통과 함께 다관에 차를 넣고 물을 부어 차를 내리는 행다에서 꼭 필요한 도구이다.

차의 역사를 포함해 제다과정, 차와 건강 뿐만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정돈된 자세로 차 한 잔을 내리는 행다(行茶·차를 달여서 대접하거나 마심) 행위에서 얻는 위로와 삶의 활력을 차맛과 함께 다구를 감상하며 즐겨볼 수 있는 자리로 손색이 없다.

양동호 관장은 “바쁜 현대인에게 지식으로 접하는 차의 역사, 제다과정, 차와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정돈된 자세로 차 한 잔을 내리는 행다 행위에서 얻는 위로와 삶의 활력을 차맛과 함께 다구를 관람하며 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차인의 정신를 관조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전시는 지난 20일 개막, 5월 12일까지 광주소암미술관에서 ‘햇차를 기다리며’라는 타이틀로 열린다.

이 두 전시는 차와 정치, 유유자적과 번거로움, 비움과 채움, 요란과 고요 등 조금 엇갈리는 반대적 개념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생각하면서 정체성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기 좋은 기회다. 시간을 내서 전시장 나들이를 해보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