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나라에 신용협동조합이 창설된 지 5월 1일자로 64년이 됐다. 6·25전쟁으로 한국경제가 침울했던 1960년 서민들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신협 운동이 태동됐으며,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주도해 출범한 부산 성가신용조합과 장대익 신부가 주도한 서울의 가톨릭중앙신용조합은 우리나라의 신협 운동의 뿌리였다.

두 조합을 필두로 신협 운동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전국에 많은 신협이 설립되며 서민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삶의 변화에 기여해왔다. IMF 위기 때 일부 신협이 통·폐합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021년 전국에 873개 신협, 1680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고 이용자 수 1447만 명과 124조4000억 원의 자산총액을 기록해 아시아에서는 1위, 전 세계적으로는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성장과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신협의 3대 정신은 자조·자립·협동이며, 나눔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협은 조합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이익은 지역과 조합원에게 환원하는 조합과 조합원 중심의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신협은 ‘복지사회 건설’을 지상 목표로, ‘잘살기 위한 경제 운동, 사회를 밝힐 교육 운동, 더불어 사는 윤리 운동’의 3대 실천 과제를 꾸준히 전개해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는 소득 격차를 줄이고 경제적으로 약자인 서민들의 경제적 지위를 확보해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신협 운동이 최근 일부에서 퇴색되고 있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어 매우 안타깝기 짝이 없다.

몇몇 조합 이사장 선거가 엄청나게 치열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적 손실 금액이 많아 신협중앙회의 경영합리화 자금을 투입받은 경영개선조합이었던 조합의 이사장이 굳이 평의회장이나 협의회장을 맡아야 하는가? 조합 임원들이 매년 몇 번씩이나 불요불급한 국내외 연수를 가야 하는가? 적자가 발생한 조합 임원들의 억대 연봉이 합당한가? 어떤 이사장은 신협이 상임 임원들의 안식처로 전락했다는 자조적인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All for One. One for All’이라는 신협 슬로건에서 ‘One’이 이사장 및 특정 임원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지는 않은가? 작년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해 2023년 말 현재 광주·전남에 소재 90여 개 조합 중 상당수 조합이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 적자 조합의 2024년도 임원 보수가 억대라면 납득이 가는가? 이러한 양태를 지켜보고만 있는 신협중앙회는 감독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필자만의 외침이면 얼마나 좋을까?

1270만 명을 돌파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태신(실존 인물 정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반란군과 광화문 대치 작전을 돌입하면서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에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데 그게 군대냐”라는 명대사를 하는 장면이 눈에 아른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일부 조합에서 신협 정신이 퇴색되는 양태를 보이고 있고 정부의 신협에 대한 정책도 신자본주의에 입각해 은행에 준하는 감독 정책으로 지속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는 것이 신협 운동을 30년 가까이 해온 사람으로서 장태완 장군의 결기(決起) 앞에 초라해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최근에 필자를 비롯한 일부 신협 운동을 해왔던 뜻있는 사람들이 ‘신협바르게세우기운동추진본부(이하 신바세추)’를 결성해 신협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신바세추의 활동에 대해 신협가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는 기대가 기우로 끝나지 않길 소망해본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바로 잡아주고, 신협 정신을 되찾아가는 계기가 돼 신협이 경제적 약자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참다운 신협으로 거듭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