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설립돼 산업화 시기 여공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광주 임동 전방·일신방직의 공장 건물과 부지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두 업체는 임동 공장의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부지 29만1천800여㎡ 용도를 공업용지에서 상업이나 주거 용지로 변경해 호텔, 업무 시설, 쇼핑 시설, 주상복합 시설, 도로, 공원 등을 조성하겠다는 제안서를 지난해 8월 광주시에 제출했다. 이후 방직공장 측은 두 차례에 걸쳐 광주시에 수정 용도변경 제안서를 제출하는 등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부지 활용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광주시는 공장 부지가 도심에 위치해 있어 도시계획과 경관, 교통, 환경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고 공장의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 보전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테스크포스(TF)팀 구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최근 전방과 일신방직 측이 부동산 개발업체에 평당 740만원 선에서 각각 3천660억여 원과 3천189억여 원 규모로 매각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주시가 매각 경위 확인에 들어갔다. 만약 매각이 현실화된다면 광주시의 개발계획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임동 방직공장이 광주시민들과 오랜 시간 숙명을 함께 해왔다는 점에서 오직 이윤극대화만 노리는 부동산 개발은 적절치 않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조광철 학예연구관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방직공장이 세워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이다. 일본기업 종연방적이 공장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했다. 종연방적(종방)은 조선시대부터 전라도 지역이 전국 최대의 목화산지였던 점에 착안, 목화솜에서 면사(무명실)을 뽑아내고 이것으로 다시 광목(廣木·무명베의 일종으로 기계 생산 시 폭을 자유자재로 넓게 직조할 수 있어 붙여짐)을 생산했다.

해방 직후 종방은 한동안 공장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공장 운영권이 기업인들에게 이관됐는데, 이 무렵부터 종방은 전남방직이란 이름으로 사용됐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공장 운영권은 김형남(숭실대 설립자), 김용주(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부친), 김한원 등 세 사람에게 불하된 뒤 1961년 공장은 다시 두 개의 법인으로 분리됐다. 김용주 지분의 공장은 ‘전남방직’이란 상호(1970년부터 전방으로 사용) 그대로, 김형남 지분의 공장은 ‘일신방직’이란 상호를 사용했다. 일신(日新)은 우리나라에 처음 목화씨를 도입한 문익점의 자이다.

임동 방직공장은 일제 강점기 수탈의 아픈 역사와 산업화기 여공들의 애환을 간직한 역사문화자산이다. 방직공장 건물 지붕은 특히 삼각형 모형이 길게 이어진 형태로 산업화 시기 전형적인 공장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독특한 건물 자체만으로도 근대 문화재로 등록할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따라서 부지 활용에 앞서 방직공장 건물을 역사·문화적 자산으로 보존·활용하는 방안을 먼저 찾아봐야 한다. 공장 건물을 근대 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하는 한편 관리가 방치된 일부 공간은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는 오래된 공장지대를 복합예술특구로 조성해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시킨 중국 북경의 ‘따산즈798 예술특구’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공장의 부지도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공장 부지는 원래 유림숲의 일부였다. 숲은 광주천과 서방천의 합류지점 전역을 뒤덮고 있을 정도로 크고 울창했다. 1700년대 광주사또를 지낸 조정만은 이 숲에서 사냥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북구 유동과 임동이란 동네 이름이 이 유림숲에서 따온 것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역사성을 살려 공장 부지 전체에 숲을 조성해 문화재와 예술공간이 숨 쉬는 시민공원으로 꾸미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엄연히 사적 재산이다. 그래서 남의 재산에 의견을 섣불리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방직공장이 숙명처럼 전라도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시간을 생각한다면 역사문화 자산으로 보전·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바람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논의의 종점에 결국 돈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문화수도라고는 하나 아시아문화전당을 제외하고는 강렬한 문화공간을 보유하지 못한 광주에게 임동 방직공장의 이전계획은 새로운 문화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회사측의 부지 매매계약 체결로 그 기회가 날아가게 생겼으니, 이를 어쩌랴.